EU, 헝가리 '성소수자 혐오조장' 법 제정 맹비난
동성애자 룩셈부르크 총리 "금기선 넘었다" 규탄
교황청, 이탈리아 '성소수자 혐오 처벌법'에 항의
伊총리 "이탈리아는 세속국가... 종교국가 아냐"
유럽연합(EU)이 성소수자(LGBTQI) 관련 법 제정 문제로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성소수자 권리를 사실상 제한하면서 차별을 조장하는 법을 만든 헝가리는 EU 회원국들과 정면 격돌했다. 반대로 이탈리아는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추진하다 교황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념 지향에 따라 유럽 대륙이 둘, 또는 그 이상으로 쪼개지는 모습이다.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은 한 목소리로 헝가리를 통렬하게 규탄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지난 15일 헝가리 의회가 ‘반(反)동성애’ 성격이 짙은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당초 이 법은 소아성애 처벌 강화를 목적으로 발의됐으나, 집권당 주도로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성소수자 콘텐츠를 금지하는 내용까지 포함시켜 안팎의 거센 저항을 불렀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향해 “EU엔 더 이상 헝가리의 자리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며, EU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EU 공통의 가치를 따르든지, EU를 떠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부모에게 권리가 있듯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권리가 있다”며 “동성애를 소아성애와 동일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거들었다.
특히 눈길을 끈 발언자는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였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 베텔 총리는 “나는 게이가 되기로 선택한 게 아니라 이렇게 태어났다. 내 어머니도 내가 게이인 걸 싫어하지만 당신(오르반 총리)은 그걸 아예 법으로 정했다. 금기선을 넘어버린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지 아느냐”며 “소수자 낙인찍기나 다름없는 이 법이 만들어진 건 유럽 공동체에 끔찍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 이례적으로 감정적 표현까지 동원해 헝가리를 비난했다”고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 EU 17개 회원국은 성소수자 차별을 규탄하는 공동서한도 발표했다.
하지만 오르반 총리는 “법은 이미 공포됐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 “아이들을 보호하고 부모가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라는 기존 주장도 되풀이했다. 헝가리는 지난해 12월에도 동성 커플의 입양을 막고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게 법적 성별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를 두곤 내년 총선에서 반동성애를 매개로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EU도 참지 않을 것 같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 법은 명백히 성적 지향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EU는 각국의 법적 문제가 EU 전체의 이익에 영향을 줄 경우, 지원금 삭감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실제 ‘성소수자 없는 지역(LGBT Ideology Free)’을 선언한 폴란드 도시들엔 지원금을 이미 끊었다. 폴리티코유럽은 “언제 어떻게 조치를 취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헝가리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상황은 정반대다. ‘성소수자 혐오 처벌법’을 추진하던 중, 교황청 반대에 부딪혔다. 최근 교황청은 “이 법이 신앙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외교 문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마리오 드라기 총리는 23일 상원 의회에 출석해 “이탈리아는 세속국가이지 종교국가가 아니다”라며 “세속적 원칙은 국가가 종교에 무심한 게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교황청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교황청이 이탈리아 국내법 제정에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내자 ‘내정 간섭’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바티칸뉴스에 “법안을 막을 의도는 없다”고 논란을 진화하면서도,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기존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하원을 통과한 이 법은 상원에 계류 중이나,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 간 입장차가 뚜렷해 진통을 겪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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