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가 멈추는 날이 있다. 바로 '녜피'다. 힌두교에서 따르는 사카 달력의 새해 첫 날인 녜피에는 많은 것들이 금지된다. 이동과 노동, 놀이를 할 수 없으며 불을 켜면 안 된다. 예외는 없다. 관광객들조차 숙소에서 나오지 못한다.
김해영 감독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동안의 촬영으로 화면 속에 녜피를 담아냈다. 그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진행된 채널A '지구는 엄마다'의 시사회에 참석해 이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작은 발리의 밤하늘이었다. "흑지에 설탕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죠. '와, 이건 특종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녜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하나도 없었어요."
이후 녜피에 대해 파고들었다는 김 감독은 "특종을 노렸는데 마음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지구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발리인들을 보며 부채 의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탄생한 작품이 '지구는 엄마다'다.
시사회 자리에 함께한 윤정화 채널A 편성전략본부장은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지구에서 무해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 최대한 흔적을 덜 남기고 떠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시청자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마르 하디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영상을 통해 "녜피는 발리에서 참 중요한 날이다. 그날에는 모두가 외출을 금하고 나와 신과의 관계, 인간관계,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방법으로 발리에 있는 모든 것과의 조화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지구는 엄마다' 속 발리인들의 침묵은 매일 조금씩 지구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 관광업이 주 수입원임에도 발리 사람들은 자연에게 기꺼이 하루를 내어주고 집에 머문다. 지구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일 지구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은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녜피와 관련된 다양한 볼거리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꾸민 한 편의 연극이 펼쳐진다. 발리인들은 개성 강한 춤을 추고, 오고오고(가장 나쁜 귀신들의 행렬)를 태운다. 하늘에 펼쳐진 은하수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모든 것들은 천천히 영상을 수놓는다. 내레이터를 맡은 문숙의 목소리는 잔잔함을 더한다. 느린 흐림으로 전개되기에 발리와 자연의 아름다움, 삶의 터전인 지구의 의미에 대해 편안하게 음미해볼 수 있다.
불 대신 별이 반짝이는 발리의 모습은 오는 26일과 다음 달 3일 오후 9시 50분 채널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날 방송되는 1부 '녜피'는 집단 제례와 아궁산 등을, 2부 '이부쿠'는 신년 첫 축제와 기도 등을 다룬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