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하지 않는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22, 23일 김부겸 국무총리의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스타일은 이같이 요약된다. 부동산 가격 폭등, 탈원전 정책 등 현 정부의 민감한 현안을 겨냥한 야당 공세를 부드럽게 받아 넘기면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적극 사과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김 총리는 23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사과하라'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정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상처입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방법이 있다면 정책을 훔쳐오고 싶은 심정" "제 능력 부족에 탄식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소탈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의 공세에도 사실 관계를 따지며 논박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국민의힘이 '노무현 정부는 원자력 발전을 지원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세계적 추세도 점점 원전 의존도를 줄여가는 것 같다"고 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손실보상제를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선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에 보상하면 몇 억 원씩 될 텐데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대응했다.
청년세대에서 '빚투코인(빚을 내 가상화폐에 투자한다는 뜻)' 광풍이 불었다는 지적에도 "부모세대로서 가슴이 아프다. 자식들이 고통 속에 있는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해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답했다. 김 총리의 솔직한 답변에 오히려 질의를 한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저도 책임이 있다"고 동조하기도 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수장으로 36세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것에 대해선 "기성세대인 저희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청년세대들의 무서운 경고"라고 분석했다.
임기 말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지원을 위해 국회 대정부질문을 여야 간 진영싸움이 아닌 '국민 통합' 무대로 삼아야 한다는 김 총리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 김 총리는 전날 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총리의 태도는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의 공세를 제압하던 이낙연, 정세균 전 총리와 대조적이다. 정권 말 야당과 각을 세우는 것은 국정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김 총리의 인식이다.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김 총리 입장에서도 야당과 각을 세워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뽐낼 이유가 없다.
모든 현안에서 낮은 자세를 취한 것만은 아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비판적인 태도를 분명히 했다. 김 전 총리는 전날 "두 자리가 가져야 될 고도의 도덕성과 중립성을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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