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산모기의 공격이 매서웠습니다. 모기가 뚫지 못하도록 두꺼운 겨울 바지에 고어텍스 점퍼까지 입었더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마스크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자꾸 헛기침이 나왔지만, 그 소리에 놀라 도망갈까, 호흡까지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마치 폭죽이 터지듯 어둠 속에서 황홀한 빛의 군무가 시작됐습니다. 몸길이 고작 12~18㎜의 반딧불이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 형광색 불을 밝히며 숲속 여기저기를 날아다닙니다.
이상기온과 무분별한 개발, 인공조명의 등장으로 인해 반딧불이의 개체수는 급격히 줄어 왔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멸종에 이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갈수록 보기 어려워지는 반딧불이의 군무는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기록해 보고 싶은 장면일 것입니다.
하지만, 반딧불이를 만나는 일부터 쉽지 않습니다. 국내 반딧불이의 주 서식지로는 충북 옥천, 전북 무주, 제주로 알려져 있는데, 늘어나는 탐방객 때문에 개체수가 줄거나 서식지 보호를 위해 아예 통제된 곳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적인 서식 환경을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 더구나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시기는 여름철 석 달 정도에 불과하니 서둘러야 했죠.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심도'라는 섬을 찾아냈습니다. 장승포와 지세포에서 운항하는 여객선이 하루 다섯 편씩, 비교적 자주 있는 편이지만 섬 내부의 경사가 가파르고 도로가 없어 걸어야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이 같은 환경이 반딧불이의 서식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당연하겠죠.
지난 21일 어둠이 깔릴 무렵 모기기피제로 온몸을 무장한 뒤 설레는 마음으로 반딧불이를 만나러 나섰습니다. 공기의 변화에 민감한 반딧불이는 기온이 21도 아래로 떨어지거나 비가 오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관측하기 어려운 게 반딧불이입니다. 운 좋게도, 이날 밤은 무덥고 바람 한 점 없었습니다.
저녁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눈에 익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 한두 마리가 조심스럽게 날기 시작했습니다. 행여 도망이라도 갈까,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고정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이 시작됐습니다. 어느 순간, 조금씩 늘기 시작한 반딧불이 무리가 꽁무니마다 밝힌 빛을 연신 깜빡이며 카메라 앞에서 군무를 추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죠.
빛을 밝히며 나는 반딧불이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는 몇 가지 팁이 있습니다. 우선 카메라의 '인터벌 촬영(긴 시간 동안 일정 간격으로 반복 촬영)' 모드를 활용해야 합니다. 조그맣고 약한 불빛을 충분히 담아낼 만큼의 노출값으로 오랜 시간 여러 장을 촬영한 뒤 사진 리터치 앱을 이용해 한 장으로 붙입니다. 렌즈의 초점을 의도적으로 범위 밖으로 두는 '보케(Bokeh)' 기법도 표현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이날의 촬영은 약 30초 간격으로 2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지심도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으로도 불렸습니다. 실제로 섬을 한 바퀴 돌아보니, 동백나무 군락이 아담한 섬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반딧불이의 서식지가 지심도에 오래도록 보존된다면 '반딧불이 섬'으로 불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물론, 서식지를 체계적으로 보존할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하겠죠.
여름의 시작에서 만난 반딧불이야, 반가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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