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급 회식 후 부하 격려차 3차 회식 참석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 대화도 업무 관련?
"회사 모임 참석 후 사고 당해 업무상 재해"
2018년 12월 27일, 회사 송년회를 3차까지 마치고 귀가하던 두 아이의 아버지 A(당시 47세)씨는 집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정 무렵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다, 뒤에서 달려오던 마을버스를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A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외상성 쇼크 등으로 숨을 거뒀다.
A씨 부인은 “남편이 회식 후 귀가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니 업무상 재해(산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신청했다.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의 경우 산재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단은 유족의 신청을 거부했다. “A씨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3차 회식은 회사 공식 모임이 아닌 사적 친목 모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 중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면서 유족급여 등에 대한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유족은 이에 법원을 찾았다. “공단의 부지급 결정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법원은 사고 전날 A씨 행적부터 살폈다. A씨가 참석했던 '3차 회식'이 회사 모임인지, 아니면 사적인 친목 모임인지 여부를 따져보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업팀 부장이었던 A씨는 그날 회사 부문장이 주관한 부장·차장급 송년회에 참석했다. 1차는 회사 근처 중식당에서, 2차는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2차가 한창이던 때 A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술집에서 마케팅팀 근무 당시 함께 일했던 대리·사원급의 부하, 동료 직원들이 마침 송년회를 하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오후 10시 무렵 2차 회식을 마치고, A씨는 영업팀 직속 부하인 B씨와 함께 옛 동료들을 보러 자리를 옮겼다. A씨에게는 ‘3차’였던 이 자리에서 그들은 회사 생활과 업무환경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고, 회식비는 1·2차 회식과 마찬가지로 B씨가 갖고 있던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법원은 21일 이 같은 전후 사정을 비춰볼 때 ‘3차 회식’은 업무 관련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종환)는 “A씨는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3차 회식 참석자들 상급자이자, 회사 중간 관리자로서 하급 직원들을 격려할 목적으로 3차 회식에 참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리에서 나눴던 회사 관련 이야기, 결제 수단이었던 회사 법인 카드 등을 보더라도 사적 친목 모임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게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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