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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화선에 불을 붙이다"

입력
2021.06.2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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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가브릴로 프린치프와 유고연방의 비극

팔레스타인 작가 조 사코가 그림으로 기록한 보스니아 내전 이야기 '안전지대 고라즈데'. yes24.com

팔레스타인 작가 조 사코가 그림으로 기록한 보스니아 내전 이야기 '안전지대 고라즈데'. yes24.com


2차 대전 나치 살인전문가들조차 소름 돋게 했다는 집단 살육이 나치 치하 발칸반도에서 자행됐다. 반유고슬라비아 분리주의 집단인 '우스타샤'를 앞세워 세운 나치 괴뢰정부인 '크로아티아독립국' 유사 나치들이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 등을 상대로 자행한 '인종청소'였다. 독일 출신으로 영국에서 문학을 가르치다 만년에 작가로 데뷔한 W.G.제발트는 대표작 '토성의 고리'에서 그들이 학살에 사용한 도구들을 소개했다. "톱과 군도, 도끼와 망치, 목을 자르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졸링엔에서 특별히 제작한, 고정된 칼과 함께 팔 아래에 묶도록 고안된 가죽 소맷동, (...그들을) 한데 몰아놓고 까마귀나 까치처럼 한 줄 한 줄 교수형에 처한 일종의 원시적 횡렬교수대(...)" 톱으로 세르비아인의 목을 자르는 장면, 잘린 머리의 반쯤 벌어진 입에 담배를 물려 놓고 찍은 사진들. 나치를 업고 "가톨릭 정신으로 무장한 채" 자행한 그 대학살로 종전까지 약 4년간(1941~1945) 70만여 명이 희생됐다.

전후 소비에트 체제의 유고슬라비아연방으로 억눌려 있던 그들의 민족주의는 1980년 티토 사후 집권한 세르비아계(정교회) 밀로셰비치의 노골적인 세르비아주의로 난폭하게 부활했다. 보스니아 무슬림과 우스타샤 학살의 주범인 크로아티아계가 탄압의 주된 타깃이었다. 그 해묵은 원한들이,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의 잇단 분리독립 선언이었고, 저 끔찍한 유고슬라비아 전쟁(1991~2001)이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식민지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가 제국 황제 계승자였던 프란츠 대공 부부를 암살했고, 제국의 대세르비아 선전포고로 1,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차 대전이 시작됐다. 당시 19세 청년(당시 기준 미성년)이던 프린치프는 사형을 면해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전쟁이 한창이던 1918년 4월, 결핵으로 옥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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