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민국의학한림원 중독연구특별위원회 위원장)
K씨는 6개월 전 교통사고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이 지속돼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는 진통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했지만 K씨의 통증은 계속됐다. 더 강한 약물을 요구한 K씨는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처방받아 사용했다. 그러자 통증도 사라졌고 기분도 좋아졌다. 이후 K씨는 펜타닐 없이는 생활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펜타닐 중독자가 돼 버렸다.
K씨처럼 의도치 않게 의료용 마약을 오ㆍ남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 수면제 졸피뎀 등을 의사에게서 합법적으로 처방받는 방식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10대 청소년들이 병원에서 가짜 증상을 호소하며 펜타닐을 처방받아 즐기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병원과 약국을 돌아다니며 약을 구입해 비싼 값에 되파는 일도 발생한다.
마약에 빠지는 이유는 쾌락 때문이다. 우리 뇌에는 보상회로가 있는데, 대부분의 마약은 이 보상회로에서 쾌락과 흥분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그러나 도파민이 많아지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파민 수용체의 수가 줄어들어, 이전과 비슷한 쾌락을 느끼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도파민을 필요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한 번 마약에 빠지면 더 많은 양의 마약을 원하게 되고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어져 중독자 길로 접어든다.
중독 대가는 크다. 중독되면 손 떨림, 초조함, 입 마름 등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펜타닐을 오ㆍ남용하면 호흡곤란, 불규칙한 호흡, 무호흡 등 호흡 억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약물에 중독되면 오랜 시간 꾸준한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 약물 중독은 개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민 보건, 나아가 경제·사회 문제다. 이를 해결하려면 사후 처벌이나 치료 이전에 약물 오ㆍ남용을 막아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3월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에서 약물을 반복 처방받는 것을 막기 위해 전체 마약류 의약품에 대해 의사가 환자 진료 시 투약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 쇼핑 방지 정보망’을 구축했다.
환자가 자신의 마약류 투약 이력을 조회하고 과다 사용이나 적정 여부를 스스로 알 수 있도록 하는 ‘내 투약 이력 조회 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정부가 약물 오ㆍ남용과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한 것은 고무적이다. 앞으로도 마약류 오ㆍ남용 예방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과 지원이 이어지길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