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방명록'으로 돌아 본 손 글씨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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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방명록'으로 돌아 본 손 글씨 상실의 시대

입력
2021.06.20 09:30
수정
2021.06.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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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방명록 손글씨 화제
"컴퓨터·스마트폰 익숙한 전형적인 MZ세대 필체"
美 필기체 수업, 초등학교 의무교육서 제외돼
사라지는 손글씨, 필사(筆寫)로 진화하기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0선·30대'로 제1야당의 수장으로 선출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의 손글씨도 화제가 됐다. 1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에 남긴 필체 때문이다.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권, 국민들의 시선이 이곳에 꽂혔다.

공책과 연필보다 컴퓨터·태블릿PC·스마트폰에 더 익숙한 "전형적인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필적"이라는 여론이 뒤따랐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한 기준이라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소환됐고, 이는 MZ세대의 무구를 비꼰 '꼰대 문화'로 비판됐다.

손글씨 하나가 불러온 파장은 대단했다. 글씨체 하나로 세대 간 의견이 갈리거나, 이념 간 해석이 달라졌다.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정보기술(IT) 사회의 도래에 필체를 잊고 살았던 우리의 무관심이 머쓱해서일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실시된 원격수업도 학생들에게 디지털 장치에 더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시점에는 손글씨와 작별하는 날도 마주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건 이 대표의 필체는 사라져가는 손글씨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는 거다. '키보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필기의 상실 시대를 환기시켰다.

"죽어가는 분야, 필기체...아이들이 서명은 할 수 있어야"

3월 미국 팝스타 비욘세가 동료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선물한 꽃다발과 손편지. 비욘세의 동글동글한 필체가 인상적이다. 스위프트 SNS 캡처

"테일러, 그래미상 축하해요. 항상 응원해줘서 감사해요. 당신과 당신 가족에게 사랑을 보내요. B"

3월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동료 가수 비욘세가 보낸 꽃다발과 손편지였다. 제63회 그래미어워즈에서 스위프트는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고, 비욘세도 '베스트 R&B 퍼포먼스' 등 4개의 트로피는 거머쥐었다. 두 사람은 서로 축하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정작 언론이 주목한 건 비욘세의 필체였다. 미 언론들은 "스위프트 덕분에 비욘세의 멋진 필체를 엿볼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비욘세의 동글동글한 손글씨에 매료된 듯 보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스타의 필체에 반가움을 표시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손글씨는 사라지는 영역이다. 특히 필기체는 "죽어가는 분야"라고 할 정도로 미국 교육에서 등한시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지역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필기체가 다시 등장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메인주(州)의 한 작은 학교에서 필기체가 부활해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드랜드 마을의 통합학교(초등학교)에서는 전국 유치원생부터 공·사립학교 8학년까지 참여할 수 있는 '전국 필기체 대회'에서 두 명의 학생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 주인공은 이 학교 3학년인 앨리슨 그레이스 세인트 피터와 7학년인 크리스천 베르거스다. 세인트 피터는 3학년 중 전국 챔피언이 됐고, 자폐증을 앓고 있는 베르거스는 특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심사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미국 메인주(州)의 우드랜드 통합학교 7학년에 재학중인 크리스천 베르거스가 쓴 필기체. 뉴욕타임스 캡처

필기체 수업이 사라지는 미국에서 이 같은 성적은 눈에 띌만하다. 사실 미국은 2010년 학년별로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사항을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인 '커먼 코어(Common Core)' 표준에서 필기체 교육을 초등학교 의무 교육에서 제외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지만 메인주를 비롯해 텍사스·오하이오·일리노이주에선 필기체 교육 과정을 초등학교에 다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우드랜드 통합학교에서는 1학년 때부터 필기체 수업을 하고 있다.

크리스천의 어머니 사샤 모리셋은 아들의 수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모리셋은 "크리스천의 수상은 자폐아를 둔 부모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며 아들이 상을 받은 이후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전했다.

그는 "필기체 학습을 통해 아들의 기억력이 놀랍다는 것과 사물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철자를 보고 머릿속에 그려넣은 뒤 멋진 글씨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앨리슨의 어머니이자 이 학교 교사인 캐리 세인트 피터도 "미 전역의 학생들이 문서에 서명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다"며 "필기체로 된 역사적 문서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필기체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했다.

손글씨, 뇌 기능과 연결돼 있지만 "소멸은 불가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해 지난해부터 원격수업이 진행됐다. 연합뉴스

유럽에서 진보적인 학교 교육 방법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핀란드도 필기 교육과 작별을 고했다. 2014년 커리큘럼 개정으로 인해 필기 교육 가이드라인을 대폭 수정했다. 수기가 아닌 인쇄 및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교육 방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핀란드 교육청은 이러한 변화에 교사나 학생, 학부모들의 불만은 없다고 말한다. 필기하는 학습이 더 이상 많은 교실에서 이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거의 모든 텍스트를 컴퓨터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타이핑 기술이 더 중요해졌다"며 "오래된 손글씨는 나중에 읽기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학생들에 있어 간과할 수 없다. 뇌 기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연구 결과들 때문이다.

실제로 미 워싱턴대의 연구에 따르면 손과 키보드로 글을 쓰는 동안 서로 다른 뇌 기능 활동을 보였다.

이 연구에 참여한 윌리엄 클렘 텍사스A&M대 신경과학 교수는 "과학자들은 필기체 학습이 인지 발달을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면서 "뇌 영상 연구에서는 필기하는 것은 키보드를 사용할 때 참여하지 않는 뇌 영역을 활성화한다"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 동영상 캡처

카린 제임스·로라 엥겔하르트 인디애나대 교수는 미취학 아동에게 필기 경험이 두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취학 전 아동들에게 손으로 쓰거나, 키보드로 입력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글자를 익히도록 했다.

이후 자기공명영상(MRI) 스캐너에 누운 아이들에게 손과 키보드로 익힌 글자들을 보여줬다. 그 결과 아이들이 손으로 연습한 글자를 봤을 때와 키보드로 연습한 글자를 봤을 때 뇌 반응이 달랐다.

키보드로 익힌 글자를 봤을 때 작동하지 않았던 뇌의 일부가, 손으로 익힌 글자를 봤을 때 활성화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은 필기 경험이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완전히 익히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필기하는 일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필기의 역사와 불확실한 미래(The History and Uncertain Future of Handwriting)'의 저자 앤 트루벡은 "필기의 소멸은 불가피하다"면서 "아직 타자기가 있는 것처럼 필기체도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취미와 힐링으로 진화한 손글씨...'필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종이와 펜만 있어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됩니다."

50대 중소기업 대표 한모씨는 벌써 3년째 노트와 펜을 끼고 산다. 여느 경영자들처럼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이 늘 가까이 있지만 '키보드 시대'를 격렬하게 밀어내고 있다고 한다.

일부러 노트에 펜을 꾹꾹 눌러 글자를 적는다. 그의 취미생활이기 때문이다. 한씨는 성경책을 시작으로 '탈무드', 윤동주 시집 등 20여 권의 책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었다. 사전적 의미로 베끼어 쓴다는, 필사(筆寫)가 바로 그의 취미다.

한씨의 손은 한시도 쉬지 않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회사건 집이건 가리지 않고 손을 움직이고 있다. 단 10분의 짬만 있어도 노트와 펜을 꺼낸다. 그는 현재 회사에선 시집을, 집에서는 소설책을 필사 중이다.

키보드 시대는 손글씨를 사망케 했다. 필사는 손글씨의 부활이다. 한씨처럼 취미생활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미라클모닝'의 필수 코스로 등장하는 등 손글씨가 필사로 진화하는 듯 보인다.

대학생 유정아(26·가명)씨도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미라클모닝족'이다. 그에게 필사는 마음을 다잡아주는,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작업이다. 유씨는 "매일 새벽 20분씩 필사를 하는데, 그 시간 만큼은 '불멍(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 하듯 온갖 잡생각을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필사는 고전적인 독서법으로 긴 역사를 지녔다. '모비딕(1851)'의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수도 없이 필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200번 넘게 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가들의 필사는 좋은 글쓰기를 위한 욕망이었다. 윤동주 시인도 백석 시집을 필사한 것으로 전해지며,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오늘도 일곱 자루의 연필을 해치웠다. 필사하시라.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필사는 정신수양을 위한 역할로 발전했다. 글씨체를 교정하거나 문장 구조·표현을 익혀 글쓰기에 도움을 받으려는 목적보다 커졌다.

'필사의 기초(2016)'의 저자 조경국은 "필사의 매력 중 첫 번째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 시간 동안은 나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것에서 독립할 수 있다"고 책에 썼다.

손글씨의 미래...준비 운동이 필요할지도

게티이미지뱅크

앞으로 제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필기를 위해서 준비 운동을 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쓰기에 영향을 미치는 학습 장애인 '필기 불능증(dysgraphia)' 아동들을 위한 교정 훈련을 보면, 손으로 글자를 쓰는 일이 얼마나 신중하고 어려운 작업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미국에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사람과 치료 전문가들을 지원하는 다중 채널 플랫폼 애디튜드(ADDitude)는 "글쓰기를 위해서는 코어 근육과 팔, 어깨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필기는 자세 안정성과 운동 기술의 기초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자세 근육을 활성화하면 코어, 상체, 전반적인 신체 강도 및 안정성이 향상된다고 한다. 애디튜드는 "필라테스, 요가, 수영, 승마 등은 자세 근육을 활성화시켜 바른 자세로 앉을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고 조언한다.

어깨와 팔, 손의 힘을 키워주는 운동도 중요하다. 한자리에 앉아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어깨와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해선 놀이를 통한 운동이 좋다. 애디튜드에 따르면 공이 앞뒤로 추진되는 2인용 장난감인 '줌 볼 플레이'나 정글짐, 미끄럼틀 등 놀이터에서 올라탈 수 있는 놀이기구, 역도 같은 무게감 있는 기구를 들어 올리는 운동이 안성맞춤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손의 힘과 지구력을 위한 시도도 무시할 수 없다. 점토나 찰흙을 이용해 손의 힘을 길러주고, 작은 구슬 꿰기 같은 놀이는 지구력과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필기구는 크기가 작을수록 좋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짧은 연필이나 크레파스, 분필 등 손으로 잡기 쉬운 작은 물건의 사용을 권한다. 이들 물건에 색테이프나 고무줄을 이용해 손가락 끝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표시해두면 더욱 효과적이다.

형광등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글씨를 쓰는데 초점을 방해할 수 있어서다. 대신 따뜻한 LED조명, 백열등 또는 확산된 자연광으로 바꾸면 글쓰기가 훨씬 수월하다.

애디튜드는 "글쓰기는 단지 종이에 연필을 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신경 근육, 운동, 인지, 지각 그리고 언어 능력의 조합"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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