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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정상의 신경전

입력
2021.06.17 18:00
수정
2021.06.17 18:13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 회담장에서 한 보안 요원이 취재진을 향해 한 발 뒤로 물러날 것을 안내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토니 블링컨(왼쪽)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 러시아 외무장관이 배석했다. 뉴시스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 회담장에서 한 보안 요원이 취재진을 향해 한 발 뒤로 물러날 것을 안내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토니 블링컨(왼쪽)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 러시아 외무장관이 배석했다. 뉴시스

미·러 정상회담은 늘 각본에 없는 드라마다. 밀고 밀리는 신경전과 말싸움이 더 화제이고 종종 회담 성패까지 좌우한다. 1961년 미소정상회담에서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초프)의 협박성 발언에 기겁한 존 F 케네디는 유약한 지도자로 비쳤다. 그를 만만히 본 흐루쇼프는 이듬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몰고 갔다. 16일 제네바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회담도 예외는 아니다.

□ 정상회담의 지각생이던 푸틴이 의외로 15분 먼저 나타났다. 늘 30분 이상 늦어 상대국 정상의 기를 초반에 꺾는 게 그의 이상한 특기였다. 푸틴이 회담장에 먼저 나온 건 바이든의 강경한 입장이 통한 결과로 보인다. 바이든은 푸틴을 ‘살인자’ ‘영혼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푸틴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조차 싫어한 바이든은 공동회견이 아닌 따로 개별회견을 택했다. 3년 전 헬싱키 회담 때는 트럼프도 ‘맞불 지각’으로 대응, 회담이 70분이나 늦게 시작됐다. 그런 트럼프도 푸틴에게 공동회견으로 변명 기회만 제공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 20년 넘게 집권 중인 푸틴의 노련함은 이번에도 단연 주목을 받았다. ‘바이든과 신뢰, 행복감이 늘어났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했다. “인생에 행복은 없다. 지평선에는 신기루만이 있다. 그것을 소중히 여겨라.” 톨스토이는 추운 밤 자신을 찾아온 23세의 문청(文靑) 이반 부닌에게 인생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며 이런 지혜를 전했다. 오역으로 더 관심을 모은 푸틴의 말은 ‘신뢰는 없지만 신기루는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의미했다.

□ 미·러 관계는 냉전 이후 최악 상태다. 미국이 선거 개입, 인권 유린, 크림반도 병합 문제로 수십 건의 경제 제재를 취했고 양국 대사들은 소환돼 있다. 러시아 언론이 이번 회담을 ‘슈퍼파워의 악수’라고 타전하자 미 SNS에선 ‘캐나다보다 못한 경제력’ ‘아직도 냉전시대로 착각한다’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졌다. 미국에서 푸틴 신뢰도는 81%가 부정적이고, 러시아에서 최대 적은 미국(66%)일 만큼 여론은 외교보다도 악화돼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회담은 이견을 나열하는 데 그쳤지만 서로 넘어오지 말라는 레드라인을 확인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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