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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영국, 폴란드… 문학으로 만나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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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영국, 폴란드… 문학으로 만나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삶

입력
2021.06.18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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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9년 6월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5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기준인 10만 명을 돌파했다. 이튿날엔 범여권 의원들이 ‘평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2007년 처음 발의된 후 14년간 국회를 표류하던 차별금지법 논의에 본격적인 탄력이 붙었다.

이런 시기, 최근 잇따라 번역 출간된 해외 퀴어 소설 세 권을 함께 읽는 일은 문학을 경유해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점쳐보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른다. 각각 불가리아, 영국, 폴란드를 배경으로 남자 동성애자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 소설의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모두 다르지만 배타적인 시선과 차별의 역사는 어느 작품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사랑의 본질은 결코 성별과 정체성의 차이에 좌지우지되지 않음 역시 알 수 있다. 마침 6월은 성소수자 인권의 달이다. 퀴어 문학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가스 그린웰 ‘너에게 속한 것’

'너에게 속한 것' 가스 그린웰 지음 강동혁 지음 문학동네 발행. 324쪽. 1만4,800원

'너에게 속한 것' 가스 그린웰 지음 강동혁 지음 문학동네 발행. 324쪽. 1만4,800원


지난달 출간된 ‘너에게 속한 것’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가스 그린웰의 작품이다. 그린웰은 2016년 출간된 이 책으로 브리티시 북 어워드 올해의 데뷔작 상을 수상했다. 미국 작가가 쓴 작품이지만 소설의 배경은 불가리아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미국인 주인공이 그곳에서 만난 매력적인 인물 ‘미트코’와 한 시절 가진 애증의 관계를 섬세한 필치로 그렸다. 실제 소피아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작가 본인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나’와 미트코는 금전 거래를 전제로 한 성관계를 통해 처음 만난다. 자유롭지만 동시에 위험한 삶을 사는 미트코로 인해 둘의 관계에는 욕구와 연민, 증오와 애정 등 갖은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런가 하면 ‘나’에게는 골수 공화당 지지자이자 동성애자 혐오자인 아버지로부터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 여기에 질병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도 떨치기 어렵다. 동성애를 둘러싼 수치심과 거부의 역사,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과 후회의 기억이 한데 어울린 작품이다.


앨런 홀링허스트 ‘수영장 도서관’

'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창비 발행. 504쪽. 1만6,800원

'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창비 발행. 504쪽. 1만6,800원


마찬가지로 지난달 출간된 앨런 홀링허스트의 ‘수영장 도서관’은 세 권 중 가장 친숙하게 다가올 작품이다. 2004년 부커상 수상작인 ‘아름다움의 선’을 통해 한차례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수영장 도서관’은 홀링허스트의 데뷔작으로, 에이즈의 유행으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극도로 악화됐던 1988년 영국 현지에서 출간됐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적나라한 성애와 생활을 다룬 이 작품으로 서머싯몸상, 스톤월 도서상, E.M포스터상 등 굴지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는 B급 하위문화의 한 장르로 인식되던 퀴어소설을 주류 문학계 안으로 끌어온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소설은 1983년 영국의 상류층이자 동성애자인 20대 윌리엄이 마찬가지로 귀족이자 동성애자인 80대 찰스를 알게 되면서 맞닥뜨리는 사건과 이로 인한 깨달음을 다룬다. 20세기 영국 사회의 동성애를 둘러싼 인식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한편,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영국 왕실에서 따온 점에서 알 수 있듯 서구중심주의를 향한 풍자를 담고 있다. 동성애자로서 박해를 겪지만 동시에 계급적·인종적 특권층으로서 기만적인 행동을 보이는 인물들을 통해 복합적인 문학적 맥락을 획득한다.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푸른숲 발행. 288쪽. 1만5,000원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푸른숲 발행. 288쪽. 1만5,000원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세 작품 중 가장 근작이다. 2019년 ‘가디언’과 ‘데일리메일’ 등이 선정한 주요 책 리스트 중 한 권으로, 폴란드계 작가인 토마시 예드로프스키의 데뷔작이다.

“오늘 아침 폴란드 사회주의 공화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라디오 뉴스로 시작하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은 1980년대 사회주의 체제하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다. 대학교의 여름 농촌활동에서 만난 두 청년 루드비크와 야누시가 정치 사회적 억압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열망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보호받는 동시에 구속없이 산다는 것은”이라는 소설 속 ‘자유’는 두 가지 자유를 의미한다. 사회주의 체제 바깥의 자유, 그리고 동성애를 향한 사회적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다. 국내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동구권 유럽의 역사와 그곳 동성애자들의 삶을 한번에 만날 수 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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