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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두번 울리는 가해자 동정론

입력
2021.06.18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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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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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주장을 변호인이 대신하는 형사재판에서 마지막 재판일은 가해자가 직접 나서 자신을 방어하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다. 피고인 최후진술이 진행되고 상황에 따라 피고인신문이 이뤄지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이때 양형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개인사를 쏟아낸다. 한 인간을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한 주변 환경이 당사자에게 호의적이었을 리 없다.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고립된 자아에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가해자의 불우한 가족사는 유리한 양형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정상참작은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데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법이, 다시 말해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동정심을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형사사건이 성범죄이다.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세간의 동정심은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호의적인 성장환경을 누리지 못한 불우함에 대한 동정심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순간의 충동적 실수’로 평생 쌓아온 사회적 성취를 파탄 낸 ‘불운’에 대한 아쉬움에 가깝다.

필자가 피해자 변호사로 참여한 한 성폭력 사건 군사재판의 경우를 보자. 피고인은 명문대생으로 수년간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러 명의 여성을 상대로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피고인신문과 최후진술로 3시간 동안 피고인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또다시 “학교도 그만두었는데 전역하면 어떤 직업을 가질 계획인가요?”라며 가해자에게 추가적인 발언 기회를 제공했다. 이미 피고인 스스로 향후 계획을 소명한 후였기에 재범가능성 판단을 위한 질문으로 보기 어려웠고,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다니면서 행정고시 1차 합격까지 한 피고인 장래가 해당 사건으로 어두워진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말투였다.

물론 재판부가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개인사에 대한 동정을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 책임론과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에 대한 동정심이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의 성취를 파탄 낸 불운’에 있다 보니, 범행은 한순간의 실수로 사소화되고 그런 ‘우연’의 원인제공자로 피해자가 지목되기 쉽다. 반문이나 반론을 가장한 2차 가해가 넘쳐난다. 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이 공유되지 못한 사회에서 가해자의 ‘불운’을 동정하고 피해자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익히 경험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

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은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력에 대한 공포가 전부가 아니다. 성범죄는 불균형한 사회적 권력관계에 기초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사회를 상대로 강고한 잠재적 가해자와 마주한다는 심리적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을 온전히 인식하려면 이런 피해자의 사회적 상황에 감정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성범죄 가해자 동정론은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성차별 구조의 기득권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자들의 시대착오적 탄식이다.

2차 가해는 가해자 동정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얼마 전 성추행 피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중사 사건에서 보듯, 피해자가 피해를 드러내는 순간 가해가 시작되는 부조리를 멈추려면 성범죄 대응과 가해자 단죄는 철저히 피해자 중심주의에 기초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가해자의 서사에 대한 주목과 동정을 멈추고 피해자에 대한 공감의 노력을 시도하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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