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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딱충' 나쁜 말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미디어 읽기 가르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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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딱충' 나쁜 말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미디어 읽기 가르쳐요"

입력
2021.06.16 17:21
수정
2021.06.17 16:5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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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왜 그렇게 진지충이에요?”

결정장애가 나쁜 말인 이유를 설명하던 충북 청주시 가경중학교의 사서교사 정경진씨에게 학생이 되물었다. 우리끼리 재미로 하는 말인데 뭐가 문제일까? 천진한 얼굴에 불만과 호기심이 떠오른다. 정씨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장애’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표현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지 않다. 무엇인가 모자라거나 잘못된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왜 그래? 너 장애 있냐?” “여기 장애인 있네, 장애네.”

정경진 사서교사가 15일 충북 청주시 가경중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정경진씨 제공

정경진 사서교사가 15일 충북 청주시 가경중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정경진씨 제공

장님이나 절름발이처럼 장애인을 직접 모욕하는 표현이 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요즘,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혐오표현을 배웠을까? 교육현장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주범으로 꼽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가 오랫동안 문을 닫으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쏟아지는 온갖 혐오표현과 아이디어를 무비판적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아이들이 미디어를 올바로 소비할 수 있도록 독해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씨는 14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디어 이용을 막을 수 없다면, 그들 스스로 해롭고 이로운 정보를 구분하고 소비하도록 독해력을 길러주자”고 강조했다. 동료 사서교사들과 함께 지난달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교재를 출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와 웹툰부터 뮤직비디오와 뉴스에 이르기까지 10가지 미디어를 읽는 법을 혐오표현, 다문화, 직업 등 10가지 소재로 풀어냈다. 수업 진행법부터 아이들에게 나눠줄 참고자료까지 담았다. 다른 교사들을 위한 길잡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에서는 정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법을 가르친다. 혐오표현 수업의 경우, 영상과 만화를 보여주고 아이들 스스로 혐오표현을 찾아내도록 진행했다. 이후 혐오표현의 대체어를 함께 만들어가는 식이다. 뉴스 독해법을 가르친 수업에서는 같은 내용을 제목만 바꿔서 올리는 '어뷰징' 기사들을 보여주면서 뉴스에도 상업적 의도가 섞인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정씨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원격수업은 초기에는 선생님들이 일방적으로 녹화한 영상이나 자료를 틀어주는 방식이었다”라면서 “질문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영상의 내용을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미디어 읽는 법을 가르치는 교재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떤 정보를 접하든 어려움 없이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는 이야기다.

가경중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는 혐오표현을 찾아내 대체어를 만들어 보고 있다. 정경진씨 제공

가경중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는 혐오표현을 찾아내 대체어를 만들어 보고 있다. 정경진씨 제공

미디어 독해법은 성인에게도 어려운 개념이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한다면 충분히 교육이 가능하다. 장애가 장애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개념인 만큼, 결정장애와 같은 말장난은 그들에게 고통을 준다고 설명하기보다는 “너는 급식충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니?”라고 되묻는 식이다. 정씨는 “틀딱충이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다는 아이에게 부모님이 밖에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수업 이후에 아이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씨는 당장 눈에 띄는 차이가 나타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면서 ‘저런 표현이 괜찮을까’ ‘저 소품의 의미는 뭘까’ ‘누가 왜 이런 콘텐츠를 만들었을까’ 한번쯤 떠올리기만 해도 큰 성과라는 설명이다. 정씨는 “애들은 애들”이라면서 웃었다.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 가르쳐주는 거예요. 말하기 전에 그 표현을 한번쯤 생각해주기를 기대했고, 그 정도는 충분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가경중학교 학생들이 만든 혐오표현 사용을 경계하는 포스터. 정경진씨 제공

가경중학교 학생들이 만든 혐오표현 사용을 경계하는 포스터. 정경진씨 제공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김미옥 김선미 박인혜 손민영 심하나 윤희순 정경진 지음ㆍ학교도서관저널 발행ㆍ240쪽ㆍ1만6,000원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김미옥 김선미 박인혜 손민영 심하나 윤희순 정경진 지음ㆍ학교도서관저널 발행ㆍ240쪽ㆍ1만6,000원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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