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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과천에서 생긴 일, 일어날 일

입력
2021.06.15 04:30
수정
2021.06.15 20:1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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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종천 과천시장이 9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공터에서 주민소환투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시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자족도시의 비전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시민들께서는 저를 믿고 힘을 실어달라"고 밝혔다. 뉴스1

김종천 과천시장이 9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공터에서 주민소환투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시장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자족도시의 비전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시민들께서는 저를 믿고 힘을 실어달라"고 밝혔다. 뉴스1

10여 년 전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부처를 출입할 때다. 동네서 과천까지 버스, 지하철 이용이 여의치 않아 주로 차를 끌고 출근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보다 빠르고 편했는데, 문제는 과천에서 서울로 되돌아오는 퇴근길이었다. 그 중에서도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 고작 4㎞ 구간의 남태령이 난코스였다. 출발 시점에 따라 귀가에 소요되는 시간 편차가 굉장히 심했다. 특정 시간대에선 10분 늦게 출발했다가 집까지 30~40분 더 걸렸다. 금요일엔 그 고갯길에서만 1시간 가까운 시간을 버려야 했다. 출입처 타사 동료들과 ‘고달픈’ 과천 생활 이야길 나누다 보면 열악한 도로망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최근 휴무일이던 어느 금요일 오랜만에 과천으로 나들이를 갔다. 강산이 한번 변했을 시간, 10년 만의 과천행이었다.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하늘을 찌르기라도 하듯 솟은 아파트 숲. 어찌나 빽빽한지 대나무 밭이 떠올랐다. 그 옆으로는 한창 새 아파트 건립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10여 년 전 12층 안팎 높이의 아파트들, 관악산 밑에 웅크리고 있던 단독 주택들은 온데간데없었다. 관악산과 청계산이 둘러싼 분지에 자릴 잡아 과일나무가 잘 자랐다는 과천(果川), 나중에 전원생활 비슷한 도시 생활을 한다면 ‘이곳에서 하리라’ 욕심 냈던, 그 아늑했던 과천이 맞나 싶었다.

실망은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이어졌다. ‘일찍 일을 마치고 출발한다면 10년 전처럼 밀리진 않겠지’라는 계산은 어림도 없었다. 그 사이 과천에 있던 정부 부처들이 세종으로 옮겨 갔음에도, 버스전용차로를 제외한 3개 차로의 남태령 길은 차량으로 가득했다. 지난해 8·4 부동산 대책 후속으로 4,000가구 규모의 주택을 과천정부청사 앞 유휴부지에 공급하겠다던 정부 발표에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는 소식을 다시 떠올린 것도 그때다. ‘공원 만든다는 이야기, 교통망 확대 이야기는 없이 집만 지어대겠다 했으니…’

10년 만에 과천을 찾은 뜨내기의 감상이 이럴진대, 그곳에 발붙이고 사는 주민들은 오죽했을까. 이런 민심을 김종천 과천시장도 모를 리 없었다. 유휴지에 천막집무실을 마련하고 반기를 들었고, 대체부지를 제안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민심은 그걸로 부족했던 모양이다. 청구권자(유권자) 15% 이상 서명이 모여 주민소환투표를 발의, 8일 시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투표는 오는 30일 진행된다.

관내에 공공(임대)아파트가 들어오는 데 대한 과천시민들의 반감 정도를 가늠할 수 없기에 김 시장이 30일 이후에도 시청사에 남을지, 집으로 갈지 예단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간 전국에서 추진된 119건의 주민소환을 보면 소환 가능성은 높지 않다. 10건만 투표가 이뤄졌고, 그 중에서 8건은 ‘개표 요건’을 충족 못해 소환이 무산됐다. 유권자 33.3% 이상 투표한 경우에만 함을 열 수 있다.

30일 어떤 장면이 펼쳐지더라도 과천은 또 한번 크게 변할 것이다. 이번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다.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에 반기를 들어 자신들이 뽑은 시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또 시장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 사이 감정의 골은 누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 10년 전 과천 생활이 떠오른 건 그 좋던 과천이 더욱 삭막해질 일만 남겨 놓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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