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AFE 폐막 공연 안은미 안무가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무대 위 할머니들의 막춤에 엄숙했던 객석에선 박수로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따라가는 객석의 박수처럼 무용 공연장엔 흥이 넘쳤다. 대중가요 콘서트도 아닌데 현대무용 공연장에서 공연 도중 박수 세례는 드문 일이다. 화려하고 과도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리듬에 몸을 맡긴 할머니 무용수들의 표정은 짐짓 진지했다.
13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국제현대무용제(MODAFE)'의 폐막공연은 안은미 안무가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였다. '삶에 대한, 땅과 몸에 서린 우리의 정서에 대한, 한국의 여인들에 대한, 격렬한 통증과 치유와 긍정의 환희를 담고 있다'(김방옥 연극평론가)는 평가대로, 공연은 20세기를 온몸으로 버텨낸 할머니들의 몸짓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했다.
공연에는 생전 춤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할머니 10명이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별도의 안무 연습은 없었다. 젊은 무용수들이 짝을 지어 할머니들을 이끌긴 했지만, 전적으로 주체적인 춤이었다. 할머니 무용수들은 '울릉도 트위스트'와 '낭만에 대하여' 등 가요는 물론, 현대적인 전자음악 등 장르를 막론하고 춤을 소화해 냈다. 적극적인 팔동작과 손짓,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웨이브 등 할머니 고유의 춤사위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이들의 몸짓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며 무대 위에서 젊은 무용수들에게 계승됐다.
할머니들의 복장도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들이었다. 강렬한 원색 양말과 '몸뻬바지' 등이 등장했다. 무대 위 조명을 받은 '몸뻬바지'는 발레리나의 튀튀만큼 역동적이면서 우아했다. 이날 공연에 동원된 의상들은 실제로 재래시장 좌판에서 사온 것들이다. 할머니들이 한평생 분신처럼 입었던 전투복들이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2011년 국내 초연됐다. 2010년 안 안무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길과 풍경과 사람을 따라 전국을 일주하며" 만난 길 위의 할머니들이 즉흥적으로 췄던 춤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공연 사이사이에는 안무가가 만난 할머니들의 춤 영상이 무성영화처럼 무대 뒤 화면에 펼쳐졌다. 영상 속 할머니들은 밭에서, 시장에서, 가게에서, 경로당에서, 길 위에서 춤을 췄다. 안 안무가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를 거쳐 지금은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할머니들의 인생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프로젝트"라며 "언젠가 전 세계 다양한 세대의 할머니들 몸짓을 기록한 '몸 박물관'을 세워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무용단의 대표이자 프랑스 파리의 유서 깊은 극장 '테아트르 드 라 빌'의 상주아티스트로서 안 안무가는 해외에서도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활발히 선보여 왔다. 동양적인 안무와 의상에 세련된 연출이 더해지며 해외 호평을 받은 작품이지만 정작 국내 공연은 다섯 차례에 그쳤다.
코로나19 탓에 이 공연의 백미가 반감된 것도 아쉽다. 원래 커튼콜 이후 관객까지 무대 위로 올라와 할머니들과 춤을 추는 '이머시브(immersiveㆍ관객참여형) 공연'이다. 안 안무가는 "평소라면 무대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객석 호응이 높은 편인데 방역 문제 때문에 아쉽게 막을 내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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