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는 싸고 빠르게" 안전불감증 여전… 2년 전 '잠원동 참사'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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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는 싸고 빠르게" 안전불감증 여전… 2년 전 '잠원동 참사' 판박이

입력
2021.06.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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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시간 적게 들여 건물 없애면 끝" 인식 팽배
재하청와 무자격업체 동원 등 위법행위 만연
해체계획서 검토·허가 기관도 전문지식 부족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지상 5층짜리 건물이 붕괴해 인근 도로에 정차된 버스를 덮치면서 탑승객 9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당일 오전 해당 건물에 대한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장면. 광주경찰청 제공

2019년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인근 도로 쪽으로 붕괴하며 사상자 4명을 낸 지 2년 만에 광주 동구에서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수반한 '닮은꼴 참사'가 재발하면서 철거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현장에선 하자 발생 시 추가 비용이 드는 건축과 달리, 철거는 결과물을 남기지 않아 '싸고 빠르게 진행할수록 좋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증언한다. 잠원동 사건 이후 철거 작업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됐지만, 막상 현실은 제도 취지와 부합하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년 만에 되풀이된 '철거 참사'

임택 광주 동구청장이 10일 오후 광주 동구청 회의실에서 열린 17명 사상자 발생 학동4구역 붕괴 사고 건물 해체 관련 브리핑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광주=뉴스1 대표 이미지

10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벌어진 이번 참사는 여러모로 2년 전 서울 잠원동 사고를 닮았다. 2019년 7월 4일 잠원동에서 철거 공사 중이던 건물(지상 5층·지하 1층)이 붕괴하면서 30톤가량의 잔해물이 인근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들을 덮쳐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는 약혼자와 함께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20대 예비신부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똑같은 층고의 철거 건물이 도로에 정차한 버스를 덮쳐 9명이 죽고 8명이 부상한 이번 광주 사건과 비슷하다.

서울시가 같은 해 건축물 해체공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마련하면서 잠원동 사고의 원인으로 △잭서포트(지지대) 보강 미흡 △해체계획서 미준수를 지목했다. 법원 역시 지난해 철거업체 관리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작업계획서를 무시하고 철거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해 피해자를 발생시켰다"고 밝혔다.

"부수는 일이라 돈·시간 안 들여"

업계 종사자들은 건축물 철거 과정에서 안전은 등한시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건설 작업은 결과물(건물)이 남기 때문에 하자 보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 절차를 준수하지만, 철거는 그럴 유인이 적다는 것이다. 조성구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해체는 본공사 전에 하는 행위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도 않고, 담당업체 또한 생산이 아닌 해체 과정에 돈이나 시간을 충분히 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사기한에 쫓기다 보면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도 등장한다. 1차 하청업체가 다른 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건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현장에선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건축계 관계자는 "바쁘게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다 보면 암암리에 재하도급을 주고 일처리를 맡기는 경우도 많다"면서 "자격 유무를 잘 따지지 않다 보니 무자격업체가 동원되기도 하고, 관련 서류도 작성하지 않아 나중에 알기도 어렵다"고 했다. 광주 붕괴 현장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한솔기업과 철거공사 하도급 계약을 맺었을 뿐, 재하도급을 준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건축 안전제도 실효성 높여야"

정몽규 HDC 회장이 10일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동구 학동 건물 붕괴 사고와 관련 대시민 사과를 하고 있다. 광주=뉴스1

건축물 안전 문제가 거듭되자 지난해 건축물관리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건축주는 안전관리 계획 등을 담은 해체계획서를 공사 허가권자인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승인받아야 한다. 또 허가 신청에 앞서 해체계획서를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자 △기술사사무소 개설등록자 △안전진단전문기관으로부터 검토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철거를 맡은 업체가 안전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해체계획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부회장은 "해체계획서에는 철거단계별 구조 안전을 검토하는 항목이 포함돼 있지만 이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계획서 검토기관도 관련 내용을 잘 모르니 보완을 요청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허가를 담당하는 지자체도 전문지식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8월 보고서에서 "건축물 안전사고로 인명 피해가 계속 발생해 지자체의 관리 감독이 시급하나, 공무원 순환보직 및 신규 공무원 부재 등으로 담당 공무원이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에 건축부터 철거까지 기술적 부분을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지역건축안전센터를 두도록 하는 보완책도 있지만, 최근까지 센터 설치가 필수가 아니었던 탓에 현재 서울 세종 강원에만 있다. 센터 관계자는 보고서에서 "센터 설치가 임의 규정인 탓에 확대 설치가 힘들다"며 "당장 건축물 붕괴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어느 지자체장이 관심을 갖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관련법 개정으로 2022년부터 인구 50만 명 이상 지자체엔 센터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사고를 막기엔 늦은 조치가 됐다.

안홍섭 건설안전학회장은 "건축물관리법 시행 등 강화된 제도 마련에도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제도 이행력이나 책임 소재 규정 등 실효성을 높일 추가적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일섭 연구건축구조 대표도 "제도가 실효성을 지니려면 허가권자가 압박과 책임을 느껴야 한다"며 "제도뿐만 아니라 이를 준수할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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