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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수임료 300만원도 깨졌다... 나홀로 소송, 리걸테크, 인원 증가 삼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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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수임료 300만원도 깨졌다... 나홀로 소송, 리걸테크, 인원 증가 삼중고

입력
2021.06.16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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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매년 증가해 3만명 돌파
민사 10건 중 7건 변호사 없이
'가격 경쟁' 리컬테크 시장도 꿈틀
"수임료 최저선 또 무너질까 걱정"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내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한 건물의 안내간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내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한 건물의 안내간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9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상대와 설전을 벌이던 30대 여성 A씨는 상대방이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신상과 외모를 비하하는 표현이 담긴 글이 여러 차례 게시된 것을 확인했다. 해당 글에 다른 사람들까지 댓글을 달며 비아냥에 합세하자, A씨는 최초 글을 올린 상대방을 모욕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로 고소했다. 벌금 100만 원의 약식기소 결정이 내려졌지만, A씨는 피해가 적지 않다고 판단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에도 나서기로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알아본 변호사 수임료는 대체로 300만 원 선이었다. 100만 원 정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A씨 입장에선 수임료 부담은 만만치 않았다. A씨는 고심 끝에 '나홀로 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전자소송 홈페이지를 통해 상대방 이름과 주소를 확인하기 위한 사실조회 과정을 거쳤고, 검색을 통해 파악한 정보로 직접 소장을 접수하고 인지료를 결제한 뒤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최근 3만 명을 돌파했지만, 사건 당사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율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특히 민사 본안 소송의 경우 A씨 사례처럼 10건 중 7건이 변호사 없는 '나홀로 소송'이며, 최근엔 정보통신(IT)기술과 법률을 접목한 '리걸테크(legaltech)' 시장까지 확대되면서 변호사 업계는 전례 없는 가격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암묵적으로 유지돼 오던 최저수임료 '330만 원(부가세 포함)'이 200만 원대로 떨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변호사 급증에도 '나홀로 소송' 줄지 않아

국내 변호사 수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국내 변호사 수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15일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1년 1만 명대 수준이던 국내 변호사 수는 2015년 2만 명을 넘어선 뒤 지난해에는 3만1,757명까지 늘었다. 10년도 안 돼 2.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법조계에선 향후 5년 안에 4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변호사가 급증했음에도 변호사에 도움을 요청하는 법률 수요는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집계한 지난해 민사 본안 1심 사건 총 91만2,971건 가운데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은 '나홀로 소송' 비율은 71.2%(65만408건)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5년 70.4%, 2017년 75.7%, 2019년 71.4% 등 매년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변호사 수가 5년 전에 비해 50% 이상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변호사 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다. 민사보다 까다로운 형사사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1심 형사 재판의 '나홀로 소송' 피고인 비율은 2015년 45.7%, 2017년 47.3%, 2019년 44.6%에 이어 지난해 44.1%에 그쳐 큰 변화가 없다.

소액사건·약식기소 많다고 하지만...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내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안내 간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내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안내 간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홀로 소송' 비율이 줄어들지 않는 주된 이유는 소송금액이 3,000만 원 이하인 소액사건(민사) 및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검찰의 약식기소처분(형사)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나홀로 소송' 정보를 세세하게 제공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송 후기들이 공유되면서 사건 당사자들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서초동 법률사무소 소속의 한 변호사는 "온라인에서 소송 정보를 미리 보고 준비한 뒤, 상담을 통해 자신이 파악한 내용이 맞는지 최종 확인만 하고 선임은 하지 않는 의뢰인이 상당히 늘었다"고 토로했다. 변호사 입장에선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얌체족'이 크게 증가한 셈이다.

여기에 온라인 기반 법률서비스 플랫폼들이 공격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점도 변호사들에겐 '양날의 칼'로 다가오고 있다. 법률 수요자와의 접촉면이 넓어져 선임률은 높아지겠지만,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수임료와 상담료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플랫폼 업체는 △2만 원에 15분 상담 △무료 게시판 상담 등을 고객 유인책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나홀로 소송'만 늘어날 뿐 변호사들에게 도움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변호사들은 이런 추세가 가속화할 경우 '심리적 마지노선'인 수임료 300만 원이 무너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지역 변호사의 경우 아무리 간단한 사건이라도 최소 330만 원의 수임료는 받는 게 관행이었지만, 변호사 수에 비해 법률 수요가 늘지 않으면서 200만 원대의 '초저가 영업'을 하는 변호사도 등장하고 있다. 서초동에서 5년간 활동해온 40대 변호사는 "요즘엔 손꼽히는 대형 로펌조차 수임료 수백만 원대의 '동네 소송'에 뛰어드는 판국이라, 젊은 변호사들은 아예 착수금을 받지 않고 사건부터 맡을 정도"라며 "수도권 외 지역에서 통용되던 변호사 최저수임료 200만 원선이 서울에서도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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