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철거 요구 수업 거부한 교수들
대학가 제국주의 논쟁 사회 전체로
남겨야 할 역사인가 청산해야 할 과오인가…. 영국에서 제국주의 유산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격화했다. 한 대학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초상화·19세기 제국주의자 동상 철거 문제가 사회 전체 화두로 번지면서다. 지난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로 촉발된 보수와 진보 간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이날 교수 150여 명이 옥스퍼드대 소속 오리엘 컬리지 강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학부 입학 면접이나 세미나, 콘퍼런스 등 재량 활동에도 불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지난달 컬리지 측이 학생회와 이사회의 세실 로즈 동상 철거 결정을 거부한 데 따른 항의성 조치다. 영국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케이프의 총리를 지낸 세실 로즈의 동상은 제국주의 역사를 미화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이날 교수들은 성명에서 "식민주의를 미화하는 동상에 대한 오리엘의 고집스러운 애착을 보면서 우리는 재량적 업무와 선의의 협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대됐다. 보수당 교육선택위원회 위원장인 로버트 할폰은 옥스퍼드대 부총장에게 "(수업을 거부한 교수들에게) 그들의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팀 로턴 전 교육장관도 "학술적 협박"이라며 "무고한 학생들이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보수세력의 거센 반발은 전날 있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초상화 철거 사건의 영향도 컸다. 옥스퍼드대에서 가장 부유하고 전통 있는 대학인 모들린 칼리지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의 휴게실에서 여왕 초상화를 내렸다. 1952년 여왕 즉위 기념사진을 토대로 그려진 이 초상화가 식민주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고 중립적 공간인 휴게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보수 측은 이를 영국 왕실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의 문제로 비화했다. 개빈 윌리엄슨 영국 교육부 장관이 나서서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각종 보수 매체들이 비판 기사를 쏟아내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영국에서 가장 최근 문화전쟁을 촉발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특히 한 대학원생 휴게실의 여왕 초상화 철거가 이렇게까지 큰 사회적 파급력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BLM 운동 이후 영국 전역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자 동상 철거 운동 등 사회 변화와도 연결된다. 일련의 사건으로 역사 문제에 한층 민감해진 보수층을 이번 철거 논란이 크게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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