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진도' 170마리, 미국행 비행기 오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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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진도' 170마리, 미국행 비행기 오르던 날 

입력
2021.06.10 11:00
수정
2021.06.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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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인천국제공항 제2화물터미널에서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 170마리가 비행탑승을 준비하고 있다. 고은경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2시 인천국제공항 제2화물터미널. 바닥에는 170개의 크고 작은 이동장(크레이트)이 놓여 있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미국으로 보내는 한국 개들이다. 10여 명의 공항 검역관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개들의 내장칩을 일일이 확인했다. 대부분 순조로웠지만 사납거나 사람에게 겁이 많은 개들의 경우 활동가나 봉사자가 나섰다. 개들은 다음날 오전 8시 카타르 도하, 룩셈부르크를 거쳐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을 준비 중이었다. 무려 20시간이 넘는 긴 비행이다.

해외로 간 개는 2,300마리… 대규모 출국은 처음

김나라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 매니저가 지난달 25일 인천국제공항 제2화물터미널에서 미국 비행을 앞둔 개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HSI가 2015년 1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폐쇄한 개농장은 17곳. HSI는 개농장에서 식용으로 기르던 개들을 구조해 지난 5년간 2,300마리 이상을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보냈다. 하지만 170마리에 달하는 규모로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나라 HSI 캠페인 매니저는 "개농장주를 설득해 농장 폐쇄를 결정한 다음 해외 활동가들이 입국해 농장 폐쇄와 개들의 구조를 돕고, 수일에 걸쳐 몇마리씩 해외로 보내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활동가들의 입국이 불가능해졌고, 비행편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화물칸 일부를 빌리는 방식을 선택해 한꺼번에 개들을 보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170마리 개, 어디서 왔나

김나라 HSI 매니저가 '두부'를 안아보고 있다. 두부는 잘 키워달라는 메모와 함께 버려졌다 구조됐지만 또 다시 신종 펫숍에 버려졌고 결국 개농장에서 발견됐다. 고은경 기자

이번에 출국한 170마리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먼저 지난해 5월과 같은 해 11월 충남 홍성군과 서산시 해미면 식용개 농장에서 HSI가 구조한 개 80마리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과 캐나다 정부가 입국 가능한 반려견의 연령을 각각 6개월, 8개월 이상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당시 연령이 낮아 출국하지 못했던 개들이다.

국내 다른 동물보호단체와 공동으로 구조한 개들도 출국길에 올랐다. HSI는 지난해 11월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경기 김포시 고촌읍 내 국유지에서 적발된 불법 개 사육장에서 구조한 개 110마리 가운데 40마리의 입양처를 해외에서 찾아주기로 했다. 이곳은 방치된 개들이 굶주림으로 인해 다른 개의 사체를 먹은 흔적까지 발견됐다.

이찬종 소장이 미국으로 떠나는 '장미'를 살펴보고 있다. 이 소장은 김포 개농장에서 구조한 장미를 미국에 갈 때까지 임시보호해왔다. 고은경 기자

이날 출국현장에는 동물프로그램 'TV 동물농장'으로 알려진 이찬종 이삭애견훈련소 소장도 모습을 보였다. 이 소장은 김포 개농장 구조에 참여해 농장에 있던 '장미'와 '꽃님이'를 임시보호해왔다. 그는 "철창 속 한 개가 다른 개의 발을 먹으려 하고 있었다"며 "가본 개농장 중 최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라이프, 용인시동물보호협회, 코리안K9레스큐와 용인의 한 식용견 농장에서 안락사 위기에서 구조한 50마리도 출국대상에 포함됐다.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철거명령이 내려지자 농장주들이 시설을 방치하고 떠나면서 개들은 발이 쑥쑥 빠지는 '뜬장'에서 물도 마시지 못한 채 갇혀 있어야 했다.

구조자들 "슬픈 마음 크지만 잘살았으면"

김진영씨가 지난 3년 동안 돌봐온 개들을 배웅하고 있다. 김씨 부부는 전남 담양에서 개를 구조해 돌봐왔다. 고은경 기자

이번 출국 행렬엔 단체가 아닌 개인이 구조한 개들도 포함됐다. 전남 장성군에서 구조된 '베니', '벤코', '파치'다. 장성군에서 원어민교사로 근무했던 영국인 이비드 버터워스씨와 김진영씨 부부는 지난 3년 동안 음식쓰레기를 먹으며 식용으로 길러지던 개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사비를 들여 돌봐왔다. 버터워스씨 부부는 이미 대형견을 기르고 있는 상황이라, 이들을 입양할 수 없었지만 밥 세 끼를 꼬박 챙기고 중성화수술을 해주며 기약없는 날들을 보내다 HSI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들은 출국 전 개들을 살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김씨는 "이렇게까지 개들을 해외로 보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면서도 "미국에 가서 정말 잘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힘들게 구조한 개들이 좋은 가족을 만날 일만 남았으니 기쁘다"면서도 "이렇게 많은 개를 해외로 보내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착잡하다"고 전했다. 이어 "개농장 대부분의 개들은 진도 믹스(잡종견)다"라며 "진돗개들이 한편으로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지만 그 이외 진도 믹스들은 식용견으로 팔려가고 유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개들이 해외로 가는 이유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 중 몸무게가 40㎏이 넘는 경우도 많다. 고은경 기자

개들이 해외로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에선 입양처를 찾을 수 없어서다. 특히 40㎏이 넘는 덩치에 식용개로 길러지며 사람과 접촉해보지 않은 개들은 더더욱 입양 가족을 만나기 어렵다.

HSI는 사회성이 없거나 공격성이 있는 개들의 경우 훈련을 통해 입양처를 찾아준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도사견을 포함, '코리안 진도'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소형견만을 좋아하는 국내와 달리 중∙대형견을 입양하는 가정도 많다. 또 강아지 공장(펫숍)이 금지된 곳도 많아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게 보편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식용으로 길러지다 구조된 개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이 많아서다. 김나라 HSI매니저는 "국내에서는 작고 귀여워도 믹스견이라는 이유로 입양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소형견, 성격 좋은 진도믹스들은 곧바로 입양을 간다고 봐도 될 정도다"라고 전했다.

미국에 도착한 170마리의 운명은

지난달 27일 170마리의 개들이 무사히 미국 워싱턴DC 인근 댈러스 공항에 도착했다. HSI 제공


HSI 활동가가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댈러스 공항에 도착한 크리켓을 쓰다듬고 있다. HSI 제공

170마리는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댈러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들은 HSI가 메릴랜드주 워싱턴카운티의 헤이거스타운에 마련한 임시 보호소에서 행동평가를 거치고 있다. 훈련이 필요한 경우에는 보호소에서 훈련을 받게 되고 그럴 필요가 없는 개들은 HSI의 400여 개 연계 보호소를 통해 입양이 추진된다. 일부는 캐나다로 가 새 가족을 찾을 예정이다. 김 매니저는 "국내 반려문화도 바뀌어 앞으로 개농장에서 구조한 개들 중 더 많은 수가 국내에서 평생 가족을 찾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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