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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이상고온·잦은 비에 2년째 흉작… 꿀단지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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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이상고온·잦은 비에 2년째 흉작… 꿀단지가 사라진다

입력
2021.06.08 04:00
수정
2021.06.08 06:5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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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활동 전 꽃 피었다 일찍 지고
비까지 자주 내려 꿀벌 활동 방해
올 수확량 평년의 20~30% 수준
온난화로 기상이변 증가 전망 속
채산성 안 맞아 꿀벌 처분 잇달아
농가, 정부 차원 지원 대책 촉구

국민의힘 주호영 당대표 후보와 이춘석 국회사무총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옥상에서 열린 국회양봉장 꿀뜨기 체험행사에 참여해 꿀을 수확하고 있다. 수확한 꿀은 환경 담당 직원 등 공무직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왼쪽부터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춘석 국회사무총장, 안상규 꿀벌연구소장. 배우한 기자

국민의힘 주호영 당대표 후보와 이춘석 국회사무총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옥상에서 열린 국회양봉장 꿀뜨기 체험행사에 참여해 꿀을 수확하고 있다. 수확한 꿀은 환경 담당 직원 등 공무직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왼쪽부터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춘석 국회사무총장, 안상규 꿀벌연구소장. 배우한 기자

"지난달 중순 (경북)칠곡 지역에 아까시꽃이 다 지는 바람에 벌통에 꿀이 한참 덜 찼습니다. 그래서 벌통을 트럭에 싣고 예천으로 북상해 1주일이나 뒀는데, 글쎄, 꿀이 되레 줄었어요. 옮긴 곳에도 꿀이 없다 보니 꿀벌이 그간 저장해둔 꿀을 먹어치운 겁니다. (이동)경비만 날렸어요."(이상열 칠곡꿀잼농장 대표)

꿀단지가 사라지고 있다. 2년 연속 벌꿀이 대흉작인 탓이다. 봄철 수확기의 이상 고온과 잦은 강우가 주요인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이 양봉업계까지 덮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이은 흉작으로 양봉 농가의 무더기 파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업계는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벌꿀 수확량, 평년 20~30%로 곤두박질

7일 양봉업계에 따르면 올해 벌꿀 수확량은 평년의 20~30%에 불과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사상 최악이었던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연간 벌꿀 생산량(추산)은 흉년이던 2018년 3만1,000톤에서 2019년 8만5,000톤으로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가 지난해 1만 톤으로 급락했다. 올해 역시 1만5,000톤을 넘기기 어려울 거란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이는 꿀벌이 꽃에서 직접 딴 천연꿀과, 겨울이나 장마철 등에 먹이로 준 설탕물로 꿀벌이 생산한 사양꿀을 합친 수치다. 사양꿀은 천연꿀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린다.

일부 농가는 이동 양봉을 나섰다가 채산이 안 맞아 현지에서 꿀벌을 처분하기도 한다. 경북 영천군의 한 양봉 농가는 지난달 충북으로 갔다가 꿀벌을 현지 양봉업자에게 헐값에 넘기고 빈 몸으로 복귀했다. 이동 양봉은 보통 1톤 트럭에 30군 정도의 벌통을 싣고 야간에 이동하는데, 편도 운임이 25만~30만 원 정도다. 이 농민은 복귀할 운임을 마련하지 못해 벌통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기후로 양봉업계 직격탄

지난해에 이은 벌꿀 흉작은 1차적으로 유난스러운 날씨 탓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3월은 지역에 따라 최고 기온이 기상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꽃이 일찍 폈다. 꿀벌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도 전에 꽃이 핀 셈이다. 예년 같으면 5월 5, 6일부터 아까시꿀 채밀(벌통에서 꿀을 뜸)을 시작하는 경북 칠곡 지역은 올해 이 시기가 5일가량 빨리 찾아왔다.

설상가상 올해 봄철 최저 기온도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꽃이 일찍 피었을뿐더러 일찍 떨어지기까지 한 것이다. 일부 지역은 4월에도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5월 들어서도 아침 최저 기온(6일 기준)이 경북 구미시 5.2도, 안동시 3.7도, 충북 제천시 1.4도 등 봄답지 않은 저온을 기록했다.

잦은 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강수량이 측정되지 않은 날까지 포함해 5월 강수일수는 경남 거제 15일, 경북 구미 19일, 경북 안동 20일, 충북 제천 17일, 강원 인제 17일 등으로 한 달의 절반 이상 비가 내렸다. 대구에 거주하는 김모(50)씨는 “해마다 4월 말쯤이면 집에서 수백m 떨어진 공원 아까시나무 군락지에서 꽃향기가 1주일 이상 진동하는데, 올해는 꽃이 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비는 수확량뿐 아니라 품질도 떨어뜨렸다. 양봉 농가에 따르면 올해는 수분 함량 18%가 넘는 ‘물꿀’이 많아 추가 비용을 들여 농축하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 꿀 수분 함량이 30%를 넘어 수분 측정기가 오류를 일으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양봉업계는 이런 기상이변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거라고 내다본다. 20~30년 전만 해도 남해안에서 민통선까지 아까시나무 개화 시기가 30일가량 차이가 나서 이동 양봉을 통해 채밀량을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차이가 2주 남짓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권원태 APCC(APEC 기후센터) 원장은 "지역별 개화 시기가 점차 줄어들어 한꺼번에 개화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지역을 이동하며 채밀하는 일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파산 위기 몰린 양봉농가 "정부 차원 대책을"

역대급 흉작이 거듭되면서 양봉 농가 상당수가 파산하거나 농사를 접게 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흉작으로 올해는 대출을 받아 양봉을 준비한 경우가 많은데, 올해도 흉작이어서 대출금 상환을 못하고 양봉을 접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벌꿀 작황 감소가 기상변화 등과 연관돼 있어 농가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먼저 벌이 꿀을 채취할 수 있는 밀원식물의 다양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잡목 취급을 받고 있는 아까시나무 숲을 새로 조성해야 한다"며 "또 꿀은 없고 보기에만 좋은 이팝나무보다는 아까시나무보다 몇 배 많은 꿀을 분비하는 헛개나무 등을 많이 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산 꿀의 브랜드 가치를 키워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열씨는 “우리나라 밤꿀이나 헛개나무꿀은 뉴질랜드 마누카꿀 이상으로 유용한 성분이 많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수분용 꿀벌 사육, 로열젤리 생산 등 벌꿀 관련 생산품목을 다양화하자는 제언도 나온다. 이만영 국립농업과학원 잠사양봉소재과장은 "농작물 시장에서 꿀벌의 경제적 가치는 연 5조9,0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국가적으로 양봉 농가 육성과 보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 정광진 기자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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