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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강경화 시부·손혜원 父는 어떻게 '유공자'가 됐나

입력
2021.06.07 12:00
수정
2021.06.07 17:2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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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우리들의 일그러진 보훈정책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이해찬(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19년 4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 정책세미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19년 4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 정책세미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간 적 없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짜 5·18 민주유공자' 아닌가."

몇 해 전부터 보수 진영이 이 전 대표를 공격하는 논리입니다. 실제 그는 1980년 5월 18일 서울에 있었습니다. 그 역시 2019년 2월 기자간담회에서 "사실 저는 1980년까지 단 한 번도 광주에 가본 적이 없다"며 "당시 광주의 고립을 깨기 위해 서울이나 다른 데서 시위했던 그룹이 나중에 유공자로 분류됐는데 저도 그런 케이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10년 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고, 나중에 5·18 유공자가 됐습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행정부 장악을 위해 1980년 5월 17일 일부 지역에 적용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5·17 조치'를 단행하면서 재야 인사 수백 명을 체포하고 수배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광주 전남대 학생들이 5월 18일 시위를 시작하자, 신군부는 무장군인 투입을 위한 명분으로 그 배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하고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을 조작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이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돼 옥살이를 한 겁니다.

1988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광주특위청문회에서 이해찬 의원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들고 증인들을 추궁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8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광주특위청문회에서 이해찬 의원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들고 증인들을 추궁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시 신군부 핵심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한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며, 대상자는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한’ 관련자로 정했습니다. 5·17 조치와 5·18 민주화운동을 불가분한 사건으로 인정한 거죠. 이 법에 따라 이 전 대표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에 따른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5·18 당시 희생자와 부상자 그리고 관련자를 유공자로 인정하는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유공자가 됐습니다. 정부가 '5·18 유공자 개념'을 폭넓게 인정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518 유공자인 김영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4월 민주당의 '민주화 운동 예우법' 추진에 "동지들의 위선에 분노를 느낀다"며 518 민주화운동 증서와 명패를 보훈처에 반납했다. 사진은 김 의원이 2016년 1월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고영권 기자

518 유공자인 김영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4월 민주당의 '민주화 운동 예우법' 추진에 "동지들의 위선에 분노를 느낀다"며 518 민주화운동 증서와 명패를 보훈처에 반납했다. 사진은 김 의원이 2016년 1월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고영권 기자


민주당 '민주화 운동 예우법' 논란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못지 않게 민주화에 기여한 6월 항쟁과 유신독재 반대 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의 일명 '민주화 운동 예우법'이 대표적이지요. 민주화 유공자와 가족에게 학비 면제, 취업 지원, 의료 지원, 주택 구입, 임차 대부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유죄 판결, 해직, 퇴학 처분을 받은 사람까지로 대상을 넓히면서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우원식 의원도 유사한 법안(사망·부상·실종자에 한함)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당시 국회예산정책처는 법안 통과 시 향후 5년간 58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180석을 확보한 범여권의 자신감 때문인지 올 초 같은 당 설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화 운동 예우법에는 우 의원 발의 당시보다 3배가 넘는 의원 73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악화하면서 법안을 철회합니다.

형평성 차원에서 볼 때 이들의 주장은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5·18은 되는데 6월 항쟁은 안 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화에 기여한 이들을 하나 둘씩 유공자로 인정하다보면 이른바 '2016년 촛불집회'까지 보훈 영역에 편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국정농단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니까요. 이 대목에서 짚어봐야 할 점은 6월 항쟁 관련자가 유공자가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아니라 민주화 유공자들이 보훈 영역에 포함된 '과정'입니다.

2009년 10월 2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미국 병사의 시신이 미 델라웨어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경례를 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2009년 10월 2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미국 병사의 시신이 미 델라웨어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경례를 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보훈의 뿌리는 ‘호국’… 민주화 운동은 ‘보상’의 영역

통상 보훈은 '호국'의 개념입니다. 국가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한 이들에 대한 예우지요. '민족 독립', '국가 수호'를 기본 가치로 합니다. 일제 만행에 항거했던 독립운동가, 6·25 전쟁, 월남전 등에 참전한 이들을 기리는 것이지요. 외세 침략에 맞서 전쟁을 930번 넘게 치르면서도 '자주독립국가'의 정체성을 지켰던 우리나라에서 보훈의 가치는 더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공자가 사망하면 3대 후손까지 매달 보훈 급여를 지급하고 취업, 교육, 의료, 주택 구입 등에서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입니다.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미국의 보훈제도가 가장 발전한 것도, 오랜 기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스위스나 덴마크에 보훈제도가 없는 것도 모두 '호국'이 보훈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나라도 민주 혁명, 시국사건, 민란 등 지도층의 불의에 맞선 내전 성격의 사건을 보훈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국가의 명백한 잘못에 대한 '보상' 영역이기 때문이죠. 이들의 공적을 기리며 추모하는 것과 보훈 대상에 편입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저지른 만행과 폭력에 피해자는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제 5·18 희생자 등 관련자는 1990년 관련법 제정으로 일시불로 보상금을 받았고 명예도 회복했습니다. 이 때문에 5·18 유공자들은 다른 '국가 유공자'들과 달리 연금을 받지 않습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당일 아침, 박정희(왼쪽) 소장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당일 아침, 박정희(왼쪽) 소장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때 ‘4·19’를 유공자로… 첫 단추 잘못 끼워져

그렇다면 5·18은 어떻게 보훈의 영역으로 들어왔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보훈정책의 기틀이 잡힌 건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군사원호 보상법'을 제정하면서입니다. 무력 집권에 따른 민심 수습을 위해 그는 이듬해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 의거 사망자와 부상자 총 267명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했습니다. '국가 보상'의 영역을 '보훈'의 영역에 넣은 것이죠. 4·19 의거 관련자들은 당시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민주 발전'이 보훈의 가치에 추가되면서 혼란이 시작됐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4·19와 형평성을 이유로 5·18 희생자도 유공자로 예우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관련 입법이 줄을 이었습니다.

물론 반대도 거셌습니다. 6·25 참전 유공자, 유족 및 상이군경 단체들은 △5·18 관련자들은 특별법에 의해 보상과 명예를 회복했고 그 일시적 보상은 국가수호 유공자들에 비해 많으며 △민족 독립과 국가 수호를 위한 희생 외에 다른 경우가 보훈의 영역에 추가되면 국가 유공자 개념의 혼란을 초래하고 △외부 적에 대항해 총을 드는 것과 공동체 내 무자비한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총을 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5·18 관련자들이 국회와 정부에 진출하면서 2001년 관련법은 국회를 통과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27일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신임 국무위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 대통령, 이낙연 총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27일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신임 국무위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 대통령, 이낙연 총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연합뉴스


文 정부 출범 후 유공자가 된 사람들

'국민 통합'을 추구하는 보훈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분열'의 상징이 된 것은 정권 유불리에 따라 보훈제도를 활용해온 역사 때문입니다. 자기 진영을 최대한 많이 유공자로 편입해 혜택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닙니다.

민주당에 몸담았던 손혜원 전 무소속 의원의 부친 고(故) 손용우씨는 1982~2007년 6차례나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탈락했지만 현 정권 출범 1년 만에 유공자가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외교부 수장인 강경화 전 장관의 시아버지 고(故) 이기을 전 연세대 명예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1983년 자격미달로 신청이 좌절됐지만 지난해 11월 인정을 받았습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월 20일 오전 국회 정론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월 20일 오전 국회 정론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2018년 6월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보훈위원회 회의에서 △명백한 독립운동 사실 확인 시 최소 수형 기준(3개월 이상) 완화 △사회주의 활동 경력이 있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독립유공자는 포상이 가능한 쪽으로 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입니다. 보훈 정책의 기준이 바뀌고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사안이지만 정부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 법 개정이 아닌 보훈처 내규를 바꾸는 손쉬운 방법을 택합니다. 야권은 '보훈 농단'이라며 반발했습니다. 후손의 권세가 유공자 여부를 좌우한다며 '권력형 특혜'라는 말까지 나왔지요.

강 전 장관의 시아버지인 이 전 교수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중앙고보 독서회에 가담해 옥고를 치렀습니다. 일제가 금서로 지정한 책을 읽으며 독립 정신을 토론했다는 이유입니다. 다만 구금 기간은 50일에 그쳤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엄밀히 법적 처벌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최소 수형 3개월' 기준이 사라지면서 지난해 4월 재신청했고 그해 11월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으며 유족들은 매월 78만 원의 연금을 받고 있습니다.

2019년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의원 부친 유공자 선정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한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이 증인선서를 거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19년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의원 부친 유공자 선정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한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이 증인선서를 거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손 전 의원 부친의 경우엔 기준이 바뀌기 4개월 전 2018년 2월 재심사를 신청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피우진 당시 보훈처장과 보훈처 간부가 손 전 의원을 면담하면서 교감이 이루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죠. 면담에서 손 전 의원은 부친이 1940년 일제 패전을 선전하다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지만 이후 사회주의 경력으로 유공자 심사에서 수차례 탈락한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이에 피 전 처장은 보훈처에 재심사를 지시했고 손씨는 바뀐 규정의 혜택을 받은 '1호 유공자'가 됐습니다. 기준이 바뀐다는 소식을 남보다 먼저 알았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2018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을 받은 손 전 의원의 모친은 매달 164만 원의 연금을 받습니다.

손 전 의원은 유공자 가족이 됐지만, 당시 보훈처는 쑥대밭이 됐습니다. 손 전 의원 부친 유공자 선정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보훈처를 압수수색했고 면담에 참여한 보훈처 국장은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정작 손 전 의원과 피 전 처장은 한 차례 소환 없이 무혐의 처분됐습니다.

잠수함 승조원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침대 크기는 길이 180㎝, 폭 75㎝, 높이 50㎝에 불과해 몸이 큰 승조원은 구부려서 자야 한다. 승조원 수에 비해 침대 개수가 부족해 3명이 2개의 침대를 교대로 쓰고 있다고 했다. 해군 제공

잠수함 승조원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침대 크기는 길이 180㎝, 폭 75㎝, 높이 50㎝에 불과해 몸이 큰 승조원은 구부려서 자야 한다. 승조원 수에 비해 침대 개수가 부족해 3명이 2개의 침대를 교대로 쓰고 있다고 했다. 해군 제공


고작 1,000원 올린 잠수함 수당… 제2연평해전의 비극

정권 주변의 실력자들이 밥그릇을 챙기는 동안, 정작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제대로 이뤄져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례로 창문도 없이 한 번 작전에 투입되면 3, 4주 외부와 소통이 단절되는 해군 잠수함 승조원들의 하루 수당은 1만 원입니다. 교도소 독방보다 좁은 공간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 심혈관질환 등 발병 위험이 높죠. 열악한 근무 여건으로 최근 10년 동안 절반 이상의 승조원(유출률 52.3%)들이 바다를 떠났습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잠수함 승조원 수당을 1만 원에서 3만 원으로 인상을 추진했지만 예산당국의 벽에 고작 1,000원 올리는 데 그쳤습니다.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간 외 수당이 대폭 깎였습니다. 한 번 출항하면 통상 2주 넘게 훈련에 투입되는 해군 특성상 매번 모자라는 수당을 육군의 남는 예산을 끌어와 써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육군의 코로나19 방역 지원이 늘면서 해군에 넘겨줄 예산이 없었던 거지요. 나라 지키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2002년 6월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제2연평해전 희생군인 합동분향소.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6월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제2연평해전 희생군인 합동분향소.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6월 29일 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해군 참수리 357호가 침몰해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친 '제2연평해전의 비극'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희생 자체도 '비극'이었지만 그들에 대한 예우는 더 비참했습니다. 당시 월드컵에 취한 국민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고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 결승전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서울공항에서 5분 거리의 국군수도병원 영결식장에 들르지 않았습니다.

침몰 53일 만에 인양된 참수리 357호 내부를 청소한 것도 생존 장병들이었습니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배 안에서 전사한 동료의 군복을 발견해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국가는 이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족이 국가에서 받은 보상금은 1인당 3,000만~5,600만 원에 불과합니다. 특별법 제정으로 추가보상금이 지급된 건 16년이 지난 2018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일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현충탑에 헌화 및 분향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일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현충탑에 헌화 및 분향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보훈제도,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예우나 지원이 국민의 짐이 되고 있다.”

5·18 유공자인 김영환 전 의원은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의 '민주 유공자 예우법' 추진에 본인과 아내의 5·18 민주화운동 증서와 명패를 보훈처에 반납하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동지들의 위선에 분노를 느낀다"며 "민주화 운동 과정에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다. 우리가 보상을 받으려고 운동을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어제는 제66회 현충일이었습니다. 60년 이상 오락가락하며 좌우 진영 간 갈등의 최전선이었던 우리의 보훈제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재정비할 때입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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