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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 담당자서 방짜유기 전승자로… 가업 잇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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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 담당자서 방짜유기 전승자로… 가업 잇게 된 사연

입력
2021.06.07 17:04
수정
2021.06.07 19: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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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장 보유자 이봉주 선생 손자 이지호씨

방짜유기 전승자인 이지호씨가 지난 2일 '3대 방짜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퇴계로 한국의집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손에 든 것은 아버지가 만든 요강, 뒤로 보이는 것은 이씨가 만든 방짜유기 조명이다. 배우한 기자

방짜유기 전승자인 이지호씨가 지난 2일 '3대 방짜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퇴계로 한국의집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손에 든 것은 아버지가 만든 요강, 뒤로 보이는 것은 이씨가 만든 방짜유기 조명이다. 배우한 기자

“전통 공예라곤 하지만 공장에서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땀이 나고 힘든 일인데도, 그런 일을 하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였어요.”

지난 2일 ‘3代 방짜전’이 열리고 있는 전통문화공간 한국의집에서 만난 이지호(35)씨는 서른이 되어서야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명예보유자인 이봉주 선생을 할아버지로, 이형근 유기장을 아버지로 둔 방짜유기(구리와 주석을 특정 비율로 섞어 불에 달군 후 두드려 만든 기물) 전승자다.

남들은 어렸을 때부터 ‘너는 커서 할 일이 있어서 좋겠다’고 말해왔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고, 외국어 능력을 우대하는 은행에 들어갔다. 대출 업무를 도맡아 해오던 중, 과감히 관뒀다. 입사 4년 차였던 시점이다. “아무래도 방짜유기 만드는 일을 하면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아요.” 이씨는 뒤늦게 가업을 잇게 된 게 집안 어른들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고 했다. 적어도 방짜유기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진심 어린 분들이었다.

방짜유기는 본디 요강, 대야로 많이 만들어지고 사용됐지만, 쓰임이 줄어 요즘은 그릇으로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최근엔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조명, 화분,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형근 유기장이 만든 요강, 놋동이, 물동이, 대야 등에 식물을 담아둔 모습. 배우한 기자

방짜유기는 본디 요강, 대야로 많이 만들어지고 사용됐지만, 쓰임이 줄어 요즘은 그릇으로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최근엔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조명, 화분,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형근 유기장이 만든 요강, 놋동이, 물동이, 대야 등에 식물을 담아둔 모습. 배우한 기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가정을 꾸린 터라 걱정이 앞섰다. 은행만큼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아니었다. 부담감도 컸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만큼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다. 가뜩이나 뜨거운 것을 가까이 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그의 부모님이 가업을 잇기로 한 이씨의 결정에 선뜻 기뻐하지 못한 이유다. 실제 이씨의 할아버지인 이봉주 선생은 방짜유기 작업을 하다 한쪽 눈을 잃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통을 알지 못하고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고 확신했다. “전통을 잇는 걸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때마침 가업이어서 자주 봐 왔기에 뛰어들게 됐어요.”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가업을 잇기 위해 방짜유기 전승자가 된 6년차 이지호씨가 2일 3대 방짜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퇴계로 한국의집에서 전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일 앞은 국내 1호 방짜유기장으로 불리는 그의 할아버지 이봉주 선생이 만든 함지, 가운데는 그의 아버지인 이형근 유기장이 만든 놋상, 가장 뒤로는 이씨가 놋쇠를 두드릴 때 나는 자국인 단조를 활용해 만든 식기. 배우한 기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가업을 잇기 위해 방짜유기 전승자가 된 6년차 이지호씨가 2일 3대 방짜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퇴계로 한국의집에서 전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일 앞은 국내 1호 방짜유기장으로 불리는 그의 할아버지 이봉주 선생이 만든 함지, 가운데는 그의 아버지인 이형근 유기장이 만든 놋상, 가장 뒤로는 이씨가 놋쇠를 두드릴 때 나는 자국인 단조를 활용해 만든 식기. 배우한 기자


아버지 공방으로 출근해 기술을 배우고, 대학원에 진학해 금속공예를 공부하는 등 가업을 제대로 잇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 그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뜨거운 상태에서 때려야 형태가 만들어지거든요. 여기에 여러 개의 작은 기술들이 녹아 있는데, 온전히 습득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요. 최소 10~20년은 해야 방짜유기를 만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왼쪽부터 이형근 유기장, 유기장 명예보유자 이봉주, 전승자 이지호씨.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왼쪽부터 이형근 유기장, 유기장 명예보유자 이봉주, 전승자 이지호씨.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오래도록 같이 일할 팀원을 구하는 일도 남은 과제다. 방짜유기는 여러 명이 팀이 되어 작업을 해야 하나의 기물을 만들 수 있는 작업인 까닭이다. “지금 계신 분들은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어요.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려면 젊은 분들이 함께 해줘야 하는데, 같이 일할 분을 모시기가 쉽지 않네요. 육체 노동이라 힘들긴 하지만, 주5일, 칼퇴, 정년 보장해드립니다. 정년이 넘어 그만두신다고 해도 붙잡을지 몰라요. 같이 한번 전통을 이어나가 보시겠어요?”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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