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타위위안국제공항, 착륙료가 가장 저렴한 공항
베트남의 학생 신분인 황칸화(27세)가 미국을 여행할 때 환승 공항지에 대한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비행기 값을 최대한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환승 시간이 빠르고 편의시설이 좋거나 음식과 문화가 맞으면 금상첨화지만, 싼값으로 여행할 수 있는 항공사가 최고다.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가 기착하는 환승지가 최선이다. 이러저러한 조건을 고려하면, 칸화가 선택할 항공사는 티켓 가격이 가장 저렴한 대만 국적의 에바항공이나 중국항공의 비행기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환승지는 타이베이의 타이위안국제공항이 될 확률이 가장 크다.
세계 유수의 항공사들은 비행기 값을 낮춰 승객을 확보하려고 한다. 전쟁이나 다름없아. 인건비를 줄이거나, 기내 서비스를 최소화 하거나, 비행기의 이착륙 비용을 낮추는 것이 항공사들의 고지 선점 작전들이다. 타이위안공항을 이용하는 비행기가 여타 동아시아 허브공항의 그것보다 비행기 값이 저렴한 이유는 파격적인 착륙료 인하에서 찾을 수 있다. G2 국가로 부상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전략에 따라, 대만은 16개 약소국가와만 국교를 수립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초라하고, 중국의 고강도 압박정책으로 독립국 지위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의 최우선 생존 전략은 자주국의 지위 확보다. 타이위안공항을 동아시아 최대 허브공항으로 육성하는 것도 그 전략의 일환이다.
대만 정부는 타이위안공항에 취항하는 비행기의 착륙료를 지속적으로 낮춰왔다. 중형기인 B777급[승객 265명] 여객기의 타이위안공항의 착륙료는 183만 원이다. 경쟁 공항인 상하이 푸동국제공항, 홍콩 첵랍콕국제공항의 착륙료는 212만 원, 315만 원으로, 각각 16%, 72%나 비싸다. 인천국제공항과 나리타국제공항 또한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인천공항은 착륙료가 303만 원, 나리타공항은 546만 원이나 되어, 무려 66%, 198%나 더 높다. 칸화는 비행기 값을 비교한 뒤, 대한항공이나 전일본공수(All Nippon Airways)를 이용해 인천공항과 나리타공항에서 환승하려는 꿈을 접었다. 베트남인의 미국 여행에 관한 한 타오위안공항은 절대 강자다.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 세계적인 찬사와 이후 거듭된 실패
허브공항의 위상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공항은 타오위안공항만이 아니다. 세계의 허브공항을 지향하는 공항들이라면 환승 시간과 공항의 편의시설, 착륙료 인하 등 전방위적으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선도국가인 한국과 일본 또한 자국의 대표 공항을 세계적인 허브공항으로 만드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 인천공항과 일본 나리타공항·간사이공항의 대형 여객기 B747[좌석 330개]의 착륙료를 비교해 보자. 인천공항의 착륙료는 341만 원이고, 나리타공항은 692만 원, 간사이공항은 800만 원이다. 나리타공항의 착륙료는 인천공항보다 103%, 간사이공항은 135%나 높다.
대한항공과 전일본공수의 비행기 편수, 기내 서비스가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인천공항을 허브공항으로 하는 대한항공 여객기 값이 나리타공항과 간사이공항을 허브공항으로 하는 전일본공수의 그것보다 쌀 수밖에 없다. 싼 티켓 값은 여행객의 이용 빈도를 증가시킨다. 2019년 현재 인천공항을 이용한 여객 인원은 7,100만 명, 나리타공항은 4,500만 명. 간사이공항은 3,200만 명이다. 동아시아의 명실상부한 허브공항의 고지를 인천공항이 선점해 가는 분위기다. 인천공항이 일본을 대표하는 두 공항의 추격을 따돌리고 동아시아 최대 허브공항이 된 조건이 바로 공항의 저렴한 운영 경비와 착륙료이다.
인천공항과 나리타공항·간사이공항의 착륙료는 어디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해상공항이라는 점에서 닮은 꼴인 간사이공항과 인천공항을 비교해 보자. 일본 서부 오사카 만에 위치한 간사이공항은 오사카, 고베, 교토가 위치한 간사이(關西) 지방의 관문 공항으로, 1989년에 건설하여 5년만인 1994년에 개항했다. 기존의 오사카공항이 내륙에 위치하여 24시간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약점을 해결하고자 육지에서 5km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건설한 해상공항이다. 1987년 설계 당시 건설 비용이 많이 들고 지반 침하 우려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묵살한 다소 무모한 시도였다.
수심이 20미터나 되는 깊은 수역에 인공섬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바위와 4만8천 개의 8각 콘크리트 블록을 투입하여 바다 벽을 쌓아야만 했다. 그 안쪽에 2천1백만 톤의 흙을 채워 30m가량 지반을 올렸다. 인공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4㎞ 길이의 연락교(連絡橋)도 건설했다. 간사이공항은 바다 벽 축조에만 11조 원이 들어가는 등 전체 공사 비용이 30조 원이나 소요됐다. 일본 최대·최고의 토목공사로 알려졌다. 개항 이듬해인 1995년, 6천4백 명의 사망자를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진앙지에서 불과 20㎞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슬라이딩 조인트 공법을 채택한 덕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98년 3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인명적 손실을 입힌 태풍 제브(Zeb) 때도 공항은 큰 피해가 없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성과에 힘입어 간사이공항은 2001년 '세계 10대 건축물'에 선정되었고, 미국 ‘토목공학회’는 ‘세기의 기념비상’을 수여했다.
간사이공항에 보낸 세계의 찬사와 환희는 여기까지였다. 350~500톤에 달하는 거대 중력의 대형기가 연이어 이착륙하면서 지반 침하가 일어나, 개항 당시보다 지반이 8미터나 낮아졌다. 공항은 매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지반 정비에 나섰다. 2018년 9월 태풍 제비가 강타했을 때는 활주로 대부분이 침수했고, 강풍에 떠밀려온 유조선이 연락교에 부딪쳐 다리가 끊겼다. 공항 터미널 영업은 15일 뒤인 9월 1일에야 재개했고, 연락교는 7개월만인 2019년 4월이 되어서야 재개통했다.
지반 침하로 인한 거액의 개보수 비용이 매년 투입되는 상황에서 공항 운영 경비가 오를 수밖에 없고, 급기야 간사이공항은 비행기 착륙료가 가장 비싼 공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대형 여객기인 B747 기준으로 간사이공항의 착륙료는 800만 원이다. 같은 기종의 인천공항 착륙료는 341만 원, 홍콩 첵랍콕공항은 423만 원, 일본 나리타공항은 692만 원이다. 나리타공항보다는 16%, 첵랍콕공항보다는 89%, 그리고 인천공항보다는 무려 135%나 더 비싸다. 비행기 값을 최소화하려는 항공사들이 간사이공항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2019년 간사이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3,200만 명으로, 김해공항보다 1,000만 명 정도가 더 많을 뿐이다.
인천국제공항,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세계적 허브공항
인천공항은 1990년 6월 서해 앞바다 영종도 일대에 국제공항을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11년만인 2001년 3월 개항했다. 인천공항은 여러모로 간사이공항을 닮았다. 동북아시아의 허브공항을 지향한다는 점, 서해안 섬을 이용한 해상공항이라는 점, 북인천과 영종도를 잇는 4.4㎞ 길이 영종대교를 건설했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사실상 간사이공항은 인천공항의 롤모델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공항의 운명은 달라졌고, 위상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2019년 현재 간사이공항이 3.5㎞ 대형 활주로 두 개를 구축하고 연간 3,200만 명의 승객을 실어나르는 데 만족한 반면, 인천공항은 대형 활주로 3개[4.0㎞ 1개, 3.7㎞ 2개]에 연간 승객 7,100만 명이 이용하는 세계적 허브공항이 되었다. 여행객 및 물동량 처리 규모에서 인천공항은 간사이공항의 두 배 이상이다.
해상공항을 지향하는 두 공항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공항이 들어선 바다의 지형과 수심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다. 간사이공항은 수심 20미터 심해에 인공섬을 축조하는 바람에 건축비가 30조 원이나 들었다. 인공섬인 탓에 거대 중력의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반이 지속적으로 침하하여 공항 유지 비용도 적지 않게 들었다. 반면 인천공항은 수심 1~2미터의 서해에 위치한 데다가 영종도와 용유도를 매립한 부지에 축조한 탓에 총공사비용이 5조6천억원에 불과했다. 간사이공항 공사 비용의 19% 수준이었다. 두 섬을 메우고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한 탓에 지반 침하 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천공항은 간사이공항보다 착륙료를 무려 57%나 절감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조건에서 우위를 점한 인천공항은 개항 1년만에 이용 승객이 3천만 명에 도달하여, 단번에 동북아시아 최대 허브공항의 자리를 꿰찼다. 대형 활주로[4.0㎞]를 하나 더 추가한 2단계 공사가 완료된 2008년에는 이용 승객이 4,5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인천공항은 2024년까지 4단계 공사를 완료하여, 대형 활주로 4개를 구축하고 승객 1억 명이 이용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공항을 꿈꾼다. 4단계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소요될 건설비 총액은 17조8천억 원이다. 간사이공항의 1단계 공사 비용(30조원)의 59%에 불과한 수치다.
약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강해지는 데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인천공항은 강해지는 나름의 이유를 확보하면서 승승장구한 반면, 간사이공항은 갖가지 이유로 점점 더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과 가덕도신공항의 모델은 간사이공항인가, 인천공항인가? 불길하게도 가덕도신공항은 간사이공항의 전철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구신공항의 활로가 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대구신공항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공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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