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고 또 헐리고... 개발 광풍에 내쫓긴 노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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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고 또 헐리고... 개발 광풍에 내쫓긴 노년의 눈물

입력
2021.06.09 04:30
수정
2021.06.1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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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최대 규모' 뉴타운 들어서는 광명 르포
작고 낡은 집에 사는 세입자들은 갈 곳이 없다

<1>살 곳 없는 세입자들


편집자주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철거민 가족의 삶을 설명하는 이런 대목이 있지요. 주택 공급, 주거 환경 개선을 표방한 신도시, 뉴타운, 재개발은 가진 사람들에게는 천국입니다. 여전히 폭력적인 개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 브랜드 아파트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혹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기록합니다.


김선이(가명) 할머니가 지난해까지 살았던 광명 1동 연립주택가. 폐허가 된 이곳을 기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난 2일 다시 찾았다. '광명 뉴타운 재개발 2구역'인 이곳은 주택의 창문과 문 등을 떼어내는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홍인기 기자

인터뷰 도중 부동산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 할머니가 집을 빼게 하도록 위임한 부동산이다.

“집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얼마짜리 구하시려고요?” 계속되는 질문에 할머니는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사 결정을) 빨리 좀 해주세요”라는 마지막 독촉. 기댈 가족도, 돌아갈 고향도 없지만 할머니는 그저 “네”라고 했다.

"저기서 헐린다 해서 여기로 왔는데 또 헐린대요." 경기 광명에서 50년 넘게 살아온 김선이(가명·79) 할머니는 지난 전세살이 두 번을 재개발 철거로 인해 집을 빼야 했고, 이번에도 그렇다. 세 번째다. 10여 년 전, 농사를 지어 번 돈으로 샀던 집을 사기로 잃은 후 전세살이를 시작했고, 이제 가난한 그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살 자격이 없다고 한다.

'재개발' '뉴타운' '신도시' 사업들은 인구밀집에 신음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양질의 주택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편이 되고, 일부에겐 자자손손 금수저를 물려줄 일확천금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세입자, 농민, 상인들에게는 일종의 재난이다. 살고 있는 집이나 농지, 가게에서 쫓겨나 전쟁터에 내던져지는데도 제대로 된 지원 대책이 없다. 유주택자의 재산세 인하 여부와 같은 사안에는 정치권과 정부 모두가 매달리면서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이들은 왜 정책의 주요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일보는 한국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집'에 대한 욕망의 저편에 내팽개쳐진 삶을 창간기획 '21세기 난·쏘·공' 시리즈를 통해 짚어본다.

이주대책 없이 전셋값 치솟아... 갈 곳이 없다

온통 개발, 개발, 개발뿐인 곳. 그리고 이곳의 세입자들은 떠밀리고 떠밀리다 더는 갈 곳이 없다. 한국일보는 지난 2일 경기 광명시 광명 뉴타운 재개발 2구역 상공에 드론을 띄워 360도 방향으로 파노라마 이미지를 촬영했다. 촬영 사진을 바탕으로 합성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체형 이미지로 만들었다. 홍인기 기자

'경기도 최대 뉴타운'이 들어서는 곳, 광명은 지금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다. 지하철 7호선 철산역과 광명사거리역 인근 철산동과 광명동 일대 주택가 114만6,000㎡(약 35만 평)를 완전히 철거해 고층 브랜드 아파트를 짓는 ‘광명 뉴타운’ 공사 때문이다. 2만5,000여 가구 규모의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11개 재개발 구역에 살던 수만 명의 이주가 2016년 시작됐고, 아직도 이주가 진행 중이다.

김 할머니는 광명 뉴타운 재개발 '16구역'과 '2구역'을 거쳐 지난해 '11구역'(광명 4동)으로 떠밀려왔다. 지난 5년간 세 개의 '구역'을 전전한 것이다. 집은 갈수록 좁아지고, 낮아졌다. 지금 사는 반지하 전셋집을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15만 원에 계약할 때만 해도 이곳도 ‘구역’인 줄 몰랐다.

“여기도 헐리는 거 몰랐어. 복덕방에서도 말 안 해주고, 아무도 얘기 안 해줬어. 두어 달 살다가 알았지. 집주인한테 ‘여기 헐린다면서요?’ 했더니 ‘얼른 안 헐려요.’하더라고.”

‘11구역’은 내년 2월쯤 이주가 시작될 예정인데, 집주인은 7월에 집을 빼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서울에 사는 공무원이라고 했다. 재개발 지역이 으레 그렇듯, 외지인들이 아파트 입주권과 시세 차익을 노려 사들인 건물이었다.

“별안간 어떻게 하라고... 밤에 잠이 안 와. 복덕방에 보증금 2,000만 원 얘기하면 ‘옛날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해. 이런 지하도 (보증금이) 1억5,000만 원이래.”


김선이(가명) 할머니가 지난해까지 살았던 광명 1동 전셋집. 지금은 철거가 진행 중이다. 안방 천장이 누수됐지만 집주인은 곧 철거될 집이라며 고쳐주지도 않았다. 개발 구역에 세입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다. 홍인기 기자

철거 지역이 아니라도 집값 급등에 이미 광명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전세 월세가 다 오르니까 어르신들이 ‘지금 가진 돈으로는 갈 곳이 없다’는 하소연을 정말 많이 했어요. 결국 집 못 구해서 연고도 없는 시골로 간 분들도 많아요.” 노인복지관 관계자의 말이다.

광명 집값이 들썩인 건 5, 6년 전 부터다. 뉴타운에다 철산주공 아파트 재건축이 본격화되며 몰린 투기 수요와 이주를 시작한 구역 원주민들의 실거주 수요가 맞물리며 치솟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5년(2016년 5월~2021년 5월)간 광명 전체 주택의 매매가는 42% 올랐고, 전세가는 19% 올랐다. 같은 기간 경기도 전체의 매매가(21%)와 전세가(8%) 상승률보다 2배나 높다. 부동산정보업체 경제만랩 조사에선 광명시의 지난해 아파트 3.3㎡당 평균 전세가격 상승률이 39.7%로 전국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택시기사들도 집 얘기만 꺼내면 “광명 집값은 미쳤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통계정보에서 확인한 광명시(초록색)와 경기도(보라색)의 주택 전세가격지수. 전세 가격 변동 흐름을 보여주는 이 지수는 5년 전엔 광명시가 경기도보다 낮았지만, 2018년부터는 광명시 전세가격이 경기도 전체 평균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남보라 기자


11개 구역 동시 다발 철거... 예견된 참사

지난 2일 드론으로 촬영한 광명 뉴타운 재개발 2구역. 일부는 완전히 철거됐고, 주변 주택들도 철거가 진행 중이다. 홍인기 기자

“한쪽 헐어서 짓고 들어가고 또 헐고 짓고 들어가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죄다 허니까 집이 없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조근조근 말하던 김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초에 경기도가 2009년 계획, 고시한 광명 뉴타운 사업은 23개 구역을 3단계로 나눠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12개 구역은 지정이 해제됐고, 남은 11개 구역은 2016년부터 거의 동시다발로 개발이 시작됐다. 8개 구역은 현재 이주 및 공사가 진행 중이고, 나머지 3개 구역도 내년 안에 이주가 시작된다.

원주민들이 모두 내쫓기는 ‘대이주’는 예견된 참사다. “순차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광명시에 여러 번 건의했지만 광명시는 재개발 조합의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다 승인해줬어요. 그래서 한꺼번에 공사가 진행된 거죠.” 광명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허정호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개발 비용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뉴타운 같은 민간 개발에 순환 정비가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뉴타운은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대규모 사업이지만 지자체는 계획만 할뿐, 집주인으로 구성된 조합이 주도하는 민간 개발이다. 광명시 관계자는 “민간이 재개발을 시행하다보니 시가 세입자에 대한 대책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광명시청 홈페이지의 '광명 뉴타운 사업' 페이지에 "광명시의 역할은 뉴타운 계획 수립까지"라고 적혀 있다. 계획만 수립할 뿐 수만 명 시민들의 이주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는 광명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광명시청 홈페이지 캡처


광명 노인들의 '꿈의 집'... 생각하면 눈물만

“임대 아파트 하나 얻었으면... 소원이 없겠어...” 아파트 얘기를 할 때마다 김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가 말하는 아파트는 광명 노인들의 ‘꿈의 집’, 하안동 13단지 영구임대 아파트다. 김 할머니 같은 의료급여 수급자는 전용면적 26.37㎡(약 8평) 아파트를 보증금 240여만 원에 월 4만8,000원만 내면 평생 살 수 있다. 하지만 거주자가 사망하거나 이사를 가야만 빈자리가 생긴다. 입주는 하늘의 별 따기. 여전히 입주 대기자가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 대기자를 선정하는 ‘예비입주자 모집 공고’가 나야 대기자 신청이라도 해볼 수 있지만 2019년을 마지막으로 공고조차 없고, 언제 공고가 날지 기약도 없다.

김 할머니는 동주민센터에서 경기도시공사(GH)의 ‘전세 임대주택’도 신청했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탈락했고, 올해 신청한 건 이달 중순에나 지원 대상자가 발표된다. 전세 보증금의 95%를 지원받는(5%만 본인 부담) 이 임대주택도 인기가 많아 대상자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인터뷰 보름 후 김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하늘이 도왔어. 부천이 전세가 싸다고 해서 가려고 했는데, 광명 5동 사는 친구가 ‘평생 광명에서 산 사람이 어딜 가냐’면서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어. 지금이랑 같은 돈 내고 살라고 하더라고.”

할머니의 네 번째 전셋집은 재개발 구역은 아니지만 또 철거가 예정된 곳이다. 5, 6년 후 도로가 개통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거기 헐리면 또 어디로 갈지는... 몰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살다 죽을까 싶어"

철산 3동 박희석(가명) 할아버지의 단칸방. 작고 낡았지만 그가 몇 년만에 다시 정착해 살았던 이 전셋집은 내년에 헐린다. 남보라 기자

한 번만 쫓겨나는 사람은 드물다. 재개발 구역은 그 도시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도시 주거의 최하부에 위치한 이들은 자꾸 더 낮은 곳으로 밀려난다. 김 할머니 집에서 약 1km 떨어진 곳, 철산 3동에 사는 박희석(가명·78) 할아버지는 두 번째 이주를 앞두고 있다. 서울 신촌에서 슈퍼마켓, 식당 등을 운영했던 그는 20년 전 사업 실패와 사기 등을 겪으며 광명 소하동 무허가 판자촌에 세 들어 살게 됐다. 하지만 2016년 광명과 서울 강남을 잇는 강남순환도로 공사가 시작되며 동네가 철거됐다.

“다른 주민들은 다 이사 나가고 나만 살았어. 갈 곳이 없어서. 학교 경비로 일했는데 밤샘 근무하고 오니까 살림 다 빼내고 집을 다 뜯어버렸어... 이사 비용도 못 받고 그냥 쫓겨났지.”

이듬해 학교 경비 용역업체가 바뀌며 일자리까지 잃은 그는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 월세 25만 원짜리 광명3동 연립주택에 살았다. 월세 부담에 지난해 전세 2,500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왔는데 여기도 내년엔 비워줘야 한다. 이곳은 ‘재개발 12구역’. 지하철 7호선 철산역에서 직선거리로 100m 거리인 초역세권, 번화한 상가 바로 뒷골목 주택가인 이곳에도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선다.

“우리 같은 사람은 새로 생기는 아파트는 꿈도 못 꾸고… 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 건데. 아무도 없는 시골에나 가서 살까 싶어. 아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살다가 죽을까 싶어.”

척추 협착증으로 배와 등을 다 덮는 플라스틱 허리 보호대를 찬 그가 힘겹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임대아파트는 신청해놓았냐는 질문에 손을 내저었다. “안 해봤어. 우리 같은 사람이 되겠어?”

"죽는 것도 어렵고… 사는 것도 어려워"

지하철 7호선 철산역 인근 번화가의 뒷골목에는 쪽방촌이 있다. 이곳 주민들은 전세 500만 원에 방 한 칸을 얻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며 산다. 홍인기 기자

박 할아버지의 집에서 2분 정도 걸어가면 연립주택들 사이에서 갑자기 쪽방거리가 나타난다. 이 무허가 판자촌엔 신길선(가명·89) 할머니가 산다. 온갖 약봉지, TV, 옷, 그릇 등으로 단칸방 벽면이 빼곡히 채워진 방. 사람 한 명 누울 공간만 겨우 남는 그곳을 전세 500만 원에 얻어 10년 넘게 살았다. 방에 앉자마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건 방문 옆 왼쪽 벽면에 붙여진 하얀 종이. 같은 성을 가진 네 사람의 큼지막한 이름 옆엔 (아들) (딸) (손자) (손녀)라고 각각 적혀 있었고, 이름마다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가 있었다.

“나 혼자 있으니까... 혹시나 갑자기 병원 가게 된다거나, 자다가 나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잖아. 그럼 저리로 연락하라고...”

60대 노인인 자녀들도 같이 살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신 할머니 역시 아무 대책이 없었다. “나갈 데도 모르고, 몰라요.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저 여기서 머물러서 사는 동안 있는 거예요. 갈 곳이 없으니까 막막하죠. 죽는 것도 어렵네요. 사는 것도 어렵고…”

신 할머니 같은 재개발 구역 내 세입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조차 없다. 광명시 관계자는 “2009년에 사업 계획할 때 23개 구역의 거주자를 조사한 이후로는 조사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초 계획이었던 23개 구역의 거주자는 약 11만 명, 그중 절반(약 5만5,000명)이 세입자였다. 지정 구역 중 절반이 해제됐으니 현재 재개발 구역 내 세입자는 약 2만~3만 명 정도로 추산 가능하다.

하지만 재개발은 광명시 전체 전셋값 폭등과 이주로 이어졌기 때문에 개발 '구역 밖' 사람들도 똑같은 처지다. 뉴타운이 완공된 후에도 원주민이 계속 같은 지역에서 사는 비율을 뜻하는 ‘재정착률’은 보통 20~30% 정도다. 70~80%는 주택이 공급되고, 주거환경이 정비돼도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할머니는 20분 정도 이어진 인터뷰도 힘겨워할 만큼 기력이 쇠해보였다. 좀 쉬시라고, 그의 쪽방 문을 나서자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고가의 브랜드 아파트가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철산 3동 쪽방촌에 있는 신 할머니의 쪽방 문을 열고 나서면 지난 3월 입주를 시작한 철산센트럴푸르지오 아파트가 바로 보인다. 남보라 기자

◆21세기 난·쏘·공 : 글 싣는 순서

<1>살 곳 없는 세입자들

<2>생계 잃은 농민들

<3>내몰리는 상인들

<4>한국식 폭력적 개발 언제까지

▶21세기 난·쏘·공 기획기사 전체를 보시려면 아래 이미지 속 링크를 눌러주세요.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아래 주소를 복사한 후 인터넷 창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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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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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난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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