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 손' 논란의 핵심은 '괘씸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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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 손' 논란의 핵심은 '괘씸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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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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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남성들의 군비경쟁 '코드피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스 홀바인 주니어의 1537작인 헨리 8세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여기 한 남성의 초상화가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16세기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 헨리 8세는 이혼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하고 두 아내를 참수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영국에 절대 왕정을 성립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 소동을 통해 국내 귀족 세력, 의회, 신학자, 법률가를 길들였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 수도원을 해산하고 토지를 몰수하여 왕실 재정을 살찌웠다. 당시는 종교가 곧 정치요, 외교였던 시대다. 영국은 이때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독립하였기에 대륙의 종교전쟁에 직접 휘말리지 않고 내실 있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이 초상화에서 절대 군주 헨리 8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그림에는 왕관이나 왕홀 등 왕을 상징하는 소품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권력과 위엄이 느껴진다. 기마상도 갑옷 차림도 아니고 큰 칼을 들고 있지도 않는데 전사 우두머리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유는 자세와 의상에 있다. 그는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을 허리춤에 대고 관람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슈퍼맨 등 히어로 영화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파워 포즈’다.

윤기 흐르는 모피와 섬세한 자수, 여러 개의 반지와 굵은 목걸이는 그의 지위와 재력을 드러낸다. 오른손에는 장갑을 쥐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던질 듯 팔을 굽혀 긴장하고 있다. 장갑을 던진다는 것은 선전포고와 결투 신청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두툼하게 패딩을 넣어 부풀린 어깨와 강조된 다리 근육은 그의 공격적 남성성을 과장한다. 그런데 그의 양손과 단검 사이에는 부풀린 것이 하나 더 있다. 복식사에서는 이를 ‘코드피스’라고 부른다.

성기 보호하는 주머니, 코드피스

코드피스(codpiec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샅에 차는 주머니

2. 고간 주머니

3. 음경

‘코드(cod)’ 자체가 주머니 혹은 음낭이고, ‘피스(piece)’는 조각이니 당연하다. 코드피스는 남자의 바지 앞부분의 삼각형 덮개 천을 말한다.

서양 중세 남성들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타이츠같이 생긴 바지를 입었다. 이를 ‘호스(hose)’라고 부른다. 호스는 지금의 레깅스와 달리 양쪽 다리가 분리되어 있어서 끈이나 단추로 고정해야 했다. 가운데 터진 부분은 긴 외투나 튜닉을 입었기에 자연스레 가려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짧은 외투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남성들은 천을 덧대어 성기를 보호하는 한편 노출되지 않게 했다.

이런 기본적 기능에 충실한 코드피스는 피터르 브뤼헐 시니어가 1566년에 그린 '웨딩 댄스'에서 볼 수 있다. 어느 시대나 패셔니스타들은 있는 법. 점잖은 어른들은 질색을 했건만, 젊은이들은 배색을 달리한 코드피스로 멋을 부리고 시선을 끌기도 했다. 프란코 제피렐리 감독의 1968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를 잘 고증해서 제작했다. 영화 속 청년들의 복장에 주목하자. 호스와 다른 색으로 재단해서 만든 코드피스와 묶음끈을 잔뜩 볼 수 있다.

피터르 브뤼헐 시니어의 1566년 작 '웨딩 댄스'. 위키피디아


1968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착용하고 있는 코드피스. 영화 캡쳐

15~16세기를 지나면서 코드피스는 점점 더 크고 화려해졌다. 패드를 대어 딱딱하게 만든 코드피스 안에 솜이나 알곡 등을 넣어 부풀렸다. 큰 것은 어린아이 머리 크기까지나 되었다. 코드피스는 주머니 역할도 했다. 돈, 보석이나 열쇠 같은 귀중품은 물론, 오렌지를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상층 계급 남성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를 놓거나 보석으로 장식한 커다란 코드피스를 착용하여 권력을 과시했다. 가문의 상속자가 될 남자 아이는 7세 무렵부터 화려하고 큰 코드피스를 착용하여 지위에 맞는 처신법을 일찌감치 배우게 했다.

학자들이 초상화, 대금 영수증, 재단 패턴 자료 등을 통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코드피스는 1540년대에 크기와 장식 면에서 최고 절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스 홀바인 주니어가 헨리 8세의 초상화를 그린 시기는 1537년이었다. 그러다 1590년대 없어지기 시작해 17세기 초가 되면 거의 사라진다. 현대에는 주로 록 뮤지션의 무대의상이나 운동선수를 위한 보호장비로 사용되고 있다.

절대왕정 시기 코드피스는 군비경쟁이었다

복식사에서 코드피스만큼이나 노골적으로 남성성을 드러낸 아이템은 드물다. 당대에도 지나치게 거대하게 만든 코드피스를 비판한 사람들은 많다. 왜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민망한 유행이 생긴 것일까? 어떤 학자들은 1494년 이탈리아 전쟁 이후 급속히 퍼진 매독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코드피스를 치료용 약초를 채우는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중세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해가던 근대 초기의 변화에 주목한다. 당시의 왕과 귀족들은 복식의 부피를 과장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지위를 과시하고 권력을 드러냈다. 남성들은 실제 크기보다 과장한 코드피스를 착용하여 가족, 나아가 국가의 지배자로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표현했다.

그러므로 절대왕정 시기 각국의 남성 군주들이 화려하고 큰 코드피스를 제작한 것은 일종의 군비 경쟁이었다. 그들에게는 크고 늘 솟아 있는 성기가 중요했다. 이분법적 성차별에 기반한 남성의 원시적인 힘, 즉 발기력의 영원한 과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복에는 주머니가 제대로 달려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의상에 부착된 주머니는 음낭이자 음경 주머니인 코드피스로, 남성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겉옷의 맵시를 살리기 위해서라거나, 여성에게 주머니에 넣을 재산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성기' 비웃는다고 화내는 이유는

5월 31일, 편의점 GS25의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가 징계를 받고 마케팅팀장은 보직 해임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벤트 포스터 속 소시지를 잡는 손가락 모양이 남성을 혐오하는 단체가 상징마크로 사용하는 동작과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편의점 업체 GS25 디자이너가 지난달 9일 블라인드에 올린 해명글과 문제가 된 이벤트 홍보 포스터. 집게손가락 모양의 이미지가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이미지가 쓰였다며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31일 GS리테일은 "해당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는 징계를 받았다"고 밝혔다. 온라인 커뮤니티·GS리테일 제공


의아하다. 기업이며 공공기관이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하는 것일까? 작은 성기를 비웃는 손 모양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쳐도, 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나 혐오 범죄를 당한 것이 있는가? 성기가 작다고 살해당하거나 취업에서 부당대우를 겪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에서 불리하지도 않다.

작은 성기를 가진 남성들도 유전자를 계속해서 남겨 왔기에 한국 남성들의 평균 사이즈가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커다란 코드피스가 유행하던 16세기도 아닌데 이렇게나 성기 크기에 집착하는 남성들이 많을 줄이야. 도대체 이들은 왜 분노하는 것일까?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1533년 작 '개와 함께 있는 카를5세'. 위키피디아

다른 초상화를 보자.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1533년에 그린 '개와 함께 있는 카를 5세'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5세는 지금의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지배했다. 가톨릭의 수호자로서 절제되고 엄격한 성격의 그 역시 화려한 코드피스를 착용했다.

그는 손의 위치와 사냥개를 통해 관람자의 시선이 자신의 거대한 권력에 머무르게 했다. 도상학에서 그림 속의 개는 정절, 충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보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황제의 코드피스를 대하고 그의 커다란 권력에 감탄하여 촉촉한 눈빛으로 주군을 우러러보는 충성스러운 개.

말이 좀 과격하지만,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진 역할이 바로 이 개와 같은 역할이었다. 남성들 사이에서 크기를 논하는 것은 자신들끼리 서열 확인이니까 가능하지만, 여성은 감히 남성의 크기를 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극상이고 괘씸죄다. 이등 인간인 여성에게는 남성의 성기, 권력을 우러러보고 복종하는 역할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메갈 손 논란’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어 어원론 시간에 남성 성기와 여성 유방을 의미하는 일음절 고유어는 '곶'과 마찬가지로 모두 외부로 튀어나온 형상을 의미한다고 배운 적이 있다. 성별 이분법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남성 성기와 여성 유방이 더 튀어나올수록 더 남성적이고 더 여성적이라고 착각한다. 왜 남성 성기와 여성 유방은 더 튀어나오고 커야만 할까? 그래야 눈에 쉽게 띄어 차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차별 사회에서는 남성도 피해자가 된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입각한 억압, 폭력, 착취를 종식하는 운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 페미니스트들은 크건 작건 성기를 놓고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분노한 남성들이여, 의미도 없고 실체도 없는 손 모양에 그만 집착하고, 지금부터라도 페미니스트가 되자. 만약 분노의 방향을 정확히 하여 성기 크기로 우열을 가리는 기존 남성문화에 대항한다면, 함께하겠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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