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물어 죽이고 인명 피해도 발생
올레길 등에 출몰해 주민·관광객 위협
지난해 포획 911건 등 매년 10% 증가
제주도, 전국 첫 실태조사…?대책 준비
지난달 2일 오후 제주 서귀포 안덕면 주민 A(52)씨는 여느 때처럼 반려견 미미를 데리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가 봉변을 당했다. 갑자기 나타난 개가 미미의 목덜미와 귀를 물어뜯고, 말리던 A씨의 왼쪽 발목도 물었다. 들개였다. A씨는 인대에 깊은 상처를 입고 지금도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그간 제주에서 들개가 닭이나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 소식은 간간이 들었는데, 내가 이렇게 당하고 보니 나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귀포시는 덫을 설치해 사고 닷새 만에 문제의 들개를 잡았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포획 당시 오래된 목줄을 하고 있었다. 주인한테 버림받은 유기견이 야생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들개 주의보가 발령됐다. 유기견이 사람까지 공격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름과 한라산 둘레길, 올레길은 물론 골프장까지 비상이 걸렸다. 해외여행 길이 막힌 틈을 타 ‘관광 1번지’의 명예회복에 공들이고 있는 제주도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1일 제주도와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2상황실에 접수된 위험동물 신고건수는 1,179건에 이른다. 들개의 습격으로 제주시 지역에서 닭 120마리와 젖소 송아지 5마리, 한우 4마리, 망아지 1마리가 폐사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가축 피해가 매년 반복돼 골칫거리인데, 최근엔 들개와 유기견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며 “작년에만 100여 명이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사람을 공격하는 들개의 정체에 대해, 농촌에서 목줄 없이 키우던 개가 야생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출현했거나 버림받은 반려견이 야생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도 관계자는 “굶주린 개들이 가축을 사냥하면서 본능과 야성을 회복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2018년에는 들개 떼가 노루를 직접 사냥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현재 제주지역 들개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119가 출동해 포획한 들개는 2018년 650마리, 2019년 748마리, 지난해 911마리 등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들개 피해와 신고는 야외 활동이 빈번한 시기와 겹친다. 특히 제주 한라산 둘레길과 올레길, 중산간에 위치한 오름과 들판, 심지어 골프장까지 들개가 출몰해 관광객과 도민을 위협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한라산 둘레길은 해발 600∼800m 지대에 조성된 숲길로, 인적이 드물고 숲이 우거져 들개와 마주치면 도움을 요청하기도 마땅치 않아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실제 한 관광객은 제주도 홈페이지에 “제주 곳곳에서 목줄 없는 큰 개를 자주 목격한다. 무서워서 여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들개가 가축은 물론 주민과 관광객에게까지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자, 제주도는 지난달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들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야생화한 들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유해 야생동물로 간주해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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