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단체 "단순한 접근, 재발 방지 대책 아냐"
'사고견의 특성 파악, 관리하는 시스템' 도입 주장
모호한 관리 주체 등 동물 정책의 맹점 집약돼
지난달 22일 남양주시에서 발생한 개물림 사고에 대해 강형욱 훈련사가 "사고를 일으킨 개를 안락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개를 안락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동물권 단체는 그러나 이번 사고를 "학대와 방치로 인해 고통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최약자 동물에 의해 성실히 살던 한 가정의 일원이 피해를 입은 사고"(카라)로 규정하며 "안락사가 근본 대책은 아니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강 훈련사는 지난달 31일 자신이 출연하는 KBS2 '개는 훌륭하다' 방송 말미에 남양주 개물림 사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강 훈련사는 "훈련사로서는 '(사고를 일으킨 개가) 훈련으로 교화될 수 있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제가 책임 있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개를 만들면(교육시키면) 안락사시킬 것이라고 강하게 표현할 것 같다"며 안락사를 언급했다.
그는 "동물단체에서는 안락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셔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안락사해야 한다"며 "절대, 절대 지자체에서 사람의 반응을 보고 심판하거나 생각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지자체는)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고, 그 결정에 따라 앞으로 우리는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절대 우리의 비위를 맞추거나 언론의 비위를 맞춰서 판단하면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강형욱 발언에 온라인에선 안락사 주장에 힘 실려
강 훈련사의 발언이 알려지며 1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고를 일으킨 개는 안락사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 스포츠 커뮤니티에서는 "사람을 문 개는 안락사를 시키고 나서 차후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맞다"며 "동물권 단체의 주장은 인권을 내세우며 범죄자를 방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댓글이 약 500명의 동의를 받았다.
훈련사로서의 위상과 발언의 파급력으로 말미암아 강 훈련사의 발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스포츠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안락사 언급을 '소신 발언'으로 규정하며, "강 훈련사가 롱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같은 커뮤니티의 다른 이용자는 "강 훈련사는 동물보다는 사람이 우선임을 강조하고 다녔다"며 그의 과거 발언을 되새기기도 했다.
동물권 단체 "사고를 일으킨 개를 관리하는 시스템 먼저"
동물권 단체는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사고를 일으킨 개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개물림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카라는 그동안 개물림 사고를 일으킨 개체에 대한 기질평가제도를 도입해 개물림 사고견의 경우 관리대상견으로 포섭해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고 말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도 "사고를 낸 개를 죽이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며 "동물자유연대는 사고를 낸 개의 특질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체계를 우선적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협의를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사고 이력이 있는 개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사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생명의 희생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 팀장은 "개물림 사고를 일으킨 개를 안락사시키는 규정이 있는 해외에서도 무분별하게 안락사하지 않는다"며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두 번 이상의 사고를 발생시켰거나 사람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힌 개의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안락사를 결정하기 전 그 개가 투견처럼 공격을 위해 특수한 훈련을 받은 개체인지, 사고 상황에서 피해자가 개를 자극한 일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고, 견주·피해자·주민 등 여러 주체가 모여 안락사가 합당한지, 교정의 가능성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며 한국에 동물권 관련 칼럼을 기고하는 함수정 동물행동학 박사 역시 지난해 쓴 칼럼에서 "독일 헤센주도 사고를 일으킨 개를 안락사하는 규정이 있지만 신중한 과정을 거친다"며 "2008년부터 2017년 사이 사고를 낸 개를 안락사시킨 경우는 매년 3건을 넘지 않는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함 박사는 또 "헤센주에서는 매년 300건의 개물림 사고가 발생하는데 이 중 약 10%만이 위험견으로 지정한 견종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특정 종을 맹견으로 지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사고를 일으킨 '개체'를 관리하고 재사회화하는 것이 핵심임을 시사한다.
"이번 사고에 우리 동물 정책의 맹점 집약돼"
한편, 동물권 단체들은 이번 사고가 우리 동물 정책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카라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방송에 보도된 (사고를 일으킨) 개는 많이 말랐고 목줄 부위가 조여져 진물과 피가 확인됐다. 어릴 때 채워진 목줄이 커 가면서 파고들어 심각한 고통을 겪던 것일 수 있다"며 "이번 비극이 개들에게 가해진 일상화된 방치와 학대의 결과임을 주목해야 하며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를 일으킨 개가 누군가 키우다 유기됐거나, 마당에서 방치 사육되다 유실된 개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카라는 또 인근에 개농장(식용견을 뜬장에 밀집 사육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황상 사고를 일으킨 개가 개농장에서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활동가는 "개농장에서 개들을 방치 사육하고, 음식쓰레기를 급여했지만 개들이 거의 먹지 않아 굶고 있었다"며 "이런 환경에 노출된 개들의 심리적, 신체적 상황을 볼 때 사고견과 개농장의 관계, 개의 행동 원인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양주시는 사건과 관련 있을 수도 있는 개농장의 철거를 방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라는 이날 "지난달 29일 현장을 재방문했을 때 개 40마리와 뜬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며 "남양주시에 문의한 결과 '남양주시장이 온다고 하니 그 전에 자진 철거한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동물자유연대 정 팀장은 아직도 견주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려견뿐만 아니라 개농장 개 등 모든 개를 대상으로 동물등록을 시행해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반려견만 의무 등록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
특히 들개 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키우는 개들에 대한 동물등록, 중성화, 관리 교육 등의 정책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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