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출신 김도기 역?
권력 풍자 이면 사적 복수 비판도
?"뜨거운 반응, 더 사회적 목소리 내야겠다는 생각"?
?신해철 노래로 독백하며 꿈 키워
'20~30이야기 단편' 으로 감독 데뷔
육군사관학교 출신 특전사 대위인 김도기는 휴가를 나왔다 '날벼락'을 맞았다. 집에 갔더니 부엌에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식탁엔 어머니가 아들 휴가 나온다고 끓여둔 된장찌개에서 김이 나고 있었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슬픔에 빠진 김도기는 경찰의 현장검증에서 범인이 어머니를 찌르던 모습을 흉내내며 웃는 모습에 분노한다. 범인은 사이코패스였다.
그런 김도기는 자신처럼 억울하게 피해자가 된 약자를 대신해 '복수 대행'을 시작한다. 공권력이 지켜주지 못한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복수극에 시청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시청률이 0%대까지 추락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다른 지상파 드라마와 달리 '모범택시'는 시청률 15%로 쾌속질주하며 지난 29일 종방했다. 검·경에 대한 불신은 드라마 열풍의 불쏘시개가 됐다. '모범택시'는 애초 방송가의 큰 기대작은 아니었다.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만든 박준우 PD가 연출을 맡은 데다, 드라마 내용이 폭력적이라 '19금' 딱지를 달고 방송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면서 시청자들에게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어 촬영하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시청자분들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에서 억압당하는 약자들 대신 누군가가 가해자를 처벌해 대리만족했던 거 같아요. 그 뜨거운 반응을 지켜보며 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불의가 있다면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고요."
31일 화상으로 만난 이제훈은 '모범택시'를 둘러싼 호응에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화상 인터뷰 플랫폼에 극중 이름인 김도기로 입장했다. 옷도 드라마 속 무지개운수의 무지개 문양이 오른쪽에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드라마의 복수는 무지개운수란 택시회사를 통해 이뤄진다. 이 회사 직원들은 명함에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 드립니다'란 문구를 적어 피해자를 돕는다. '모범택시'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성년자 성폭행범 조도철 사건과 장애인 젓갈 공장 노예 사건 등은 조두순 사건과 신안 염전노예 사건을 떠올린다. 이제훈은 "젓갈 공장 에피소드가 가장 통쾌했다"며 "약자인 장애인을 착취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을 김도기가 나서 단죄하는 모습이 속 시원했다"고 말했다.
화제였던 만큼 우려도 컸다.
무지개운수 직원들은 이미 복역하고 나온 이들을 다시 잡아 사설 감옥에 넣고, 법망을 벗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적 복수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이제훈은 "복수 대행이란 소재를 결코 가볍게 접근할 수 없었고, 피해자의 억울함과 울분을 해결해준다는 무게감으로 부담이 컸다"며 "이야기를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걱정 많았는데 '이런 일들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될 거라 믿었다"고 했다.
순정만화 속 유약한 주인공 같던 이제훈은 '모범택시'에 없다.
그는 능청스러운 교생으로, 허술한 회사원으로 분해 여러 복수를 대행한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복수 에피소드에선 조선족으로 나와 연변 사투리도 구수하게 쓴다. 이제훈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박정민이 맡았던 캐릭터(트렌스젠더)를 언젠가는 하고 싶다"며 웃었다. 이제훈과 박정민은 영화 '파수꾼'(2010)에 함께 출연해 친분이 두텁다.
이제훈은 2007년 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으로 데뷔했다. 데뷔 초 무명시절, 그는 가수 신해철의 노래로 오디션을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영화 '고지전'(2011)전까지 매번 오디션을 봤거든요. 그때까지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내레이션으로 독백을 하는 연기를 자주 했어요. 신해철 팬이거든요. 중학생 때 '일상으로의 초대'를 들었는데 충격이었어요. 그 이후로 콘서트도 많이 갔고요."
이제훈은 이달 '모범택시'와 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로 흥행 연타를 쳤다. 그런 그는 양경모 감독, 김유경 대표와 함께 제작사 하드컷을 최근 차렸다. 이제훈은 올겨울 감독으로 변신한다. 연출에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언프레임드'를 12월 OTT 플랫폼 왓챠에 공개한다. 배우 박정민, 최희서, 손석구가 각각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맡는 프로젝트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살고 있고, 무엇에 빠져 사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돈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썼어요. 시나리오 작업과 캐스팅은 마무리 단계고요. (박)정민이는 초등학교 반장선거을 소재로 한 단편을 만들었는데, 제 작품도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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