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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돌풍이 태풍 되면 윤석열·이재명 쓸려갈 수도

입력
2021.05.31 16:00
수정
2021.05.31 18:5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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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지난 30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합동연설회에서 이준석 당대표 후보가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지난 30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합동연설회에서 이준석 당대표 후보가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게임은 끝났다. 본선에서는 이준석 후보가 더 큰 차이로 이길 거다. 대선 구도까지 바꿀 수 있는 에너지다. 세상이 바뀐 걸 정치인들만 모르고 있다."

최근 만난 국민의힘 경북지역 유력 인사의 단언이다. 국민의힘 차기 대표 경선에서 불고 있는 ‘이준석 바람’이 수도권만이 아니라 보수 텃밭인 TK에서도 대세가 됐다는 얘기다. 지난 28일 발표된 예비경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 인사는 TK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을 체감했다고 한다. “본선에선 당원 투표 비중이 70%로 높아져 (이 후보가) 어렵다고 하는데,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지금은 누가 당원 표심을 통제할 수 없다. 당심이 민심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이 인사는 이 후보에게도 승부는 끝났으니, 다른 후보들을 너무 몰지 말고 좀 더 큰 비전을 얘기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물론 원내 경험이 없는 서른여섯 살 대표 탄생에 대한 당 일각의 우려는 여전하다. ‘0선’의 좌충우돌로 당이 분열돼 망할지도 모른다는 웅성거림과 걱정이 나오지만, 보수정당 사상 전인미답의 젊은 당대표에 대한 흥분도 꿈틀대고 있다. 이준석 대표 등장은 국민의힘 내부 혁신만이 아니라 내년 대선구도와 한국의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는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실제 이준석 이펙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판은 무수한 가능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안은 역동적인 실험에 들어간 것만은 분명하다.


보수도 전략적 선택... 젊은 세대와 중도층 잡기

지난달 30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합동연설회에서 이준석(왼쪽부터)·나경원·주호영·홍문표·조경태 당대표 후보가 정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합동연설회에서 이준석(왼쪽부터)·나경원·주호영·홍문표·조경태 당대표 후보가 정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꼰대' ‘태극기부대’ ‘아스팔트 우파’ 등으로 점철됐던 국민의힘 내부에서 30대 대표가 현실화한 데는 정권교체를 향한 보수 유권자들의 절박감이 반영돼 있다. 국민의힘 충청권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자체적으로 실시한 지역 당원 조사에서도 이 후보가 1위를 차지해 놀랐다”며 “60대들도 내년 정권 교체를 위해 중도층과 젊은 세대를 잡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나경원, 주호영 전 원내대표보다 이 후보가 더 유용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보수 유권자들이 정권 교체를 위해 30대를 내세우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두 번의 선거 경험을 통해서 훈련된 측면도 없지 않다. 국민의힘은 강경 보수와 손잡았던 황교안 대표 체제 시절인 2020년 4·15 총선에서 참패한 반면, 올해 4·7 재보궐선거에선 젊은 세대와 중도층의 합류로 압승을 거뒀다. 국민의힘 한 인사는 “진보 진영 유권자들이 전략적 선택에 능숙했는데, 이젠 보수 유권자들도 4·7 재보선 결과를 보면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느낀 셈이다"고 말했다.

산업화 세대와 MZ 세대 연합, 민주당엔 악몽

과거 진보 진영의 전략적 선택은 정치권을 지배하던 지역주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적 결합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충청과 손을 잡은 것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 영남 진보세력이 호남과 결합한 게 그런 형태였다.

반면 보수 측의 전략적 선택은 세대 연합이란 게 특징이다. 이 후보는 부모 고향이 대구지만, TK보다는 MZ 세대(1980~2000년 출생) 정체성을 보여주는 주자다. 요컨대 6070의 산업화 세대와 2030의 MZ 세대 간 결합인 셈이다. 지역주의보다 세대 변수가 더 중요해진 상황에 대응하는 보수의 절묘한 한 수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준석 후보가 MZ 세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은 꼬리를 물고 있다. 이 후보가 주로 2030 남성들의 불만을 대변하면서 이 세대의 젠더 갈등을 이용한다는 혐의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당대표 경선기간 이 후보의 인기가 치솟은 데 반해 국민의힘의 당 지지율이 큰 변화가 없는 것도 이준석 바람의 파괴력에 물음표를 남기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젊은 세대들도 아직은 지켜보는 국면인데, 이 후보가 실제 대표가 되면 보수정당의 혁신이란 이슈가 젠더 논란을 압도할 수 있다”며 “당 지지율도 큰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산업화 세대와 MZ 세대의 연합은 더불어민주당엔 악몽이다. 이해찬 전 대표가 2018년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내세운 지 불과 2년여 만에 민주화 세대를 대변하는 민주당이 윗세대와 아랫세대 양쪽으로부터 포위되는 처지로 몰릴 수 있다. 민주당 인사들이 어느 때보다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을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 주체로 등장한 디지털 세대, 보수와 진보로 구획할 수 없어

국민의힘 당 대표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한 이준석 후보가 지난 28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리는 대구 야구장을 찾아 야구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당 대표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한 이준석 후보가 지난 28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리는 대구 야구장을 찾아 야구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하지만 2030세대와의 연합을 꿈꾸는 보수진영도 어쩌면 달콤한 몽상에 빠진 것일지 모른다. MZ 세대가 보수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토양과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세대 간 유기적 결합이 극히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민 정치평론가는 “이준석 바람은 디지털 세대가 새로운 정치 주체로 등장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디지털 문화와 거리가 먼 보수층이 이들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준석 바람은 디지털 세대가 독자적인 세력으로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신호로서 세대 연합이 아니라 오히려 기성 세대와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가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은 것은 SNS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젠더 문제를 포함해 정치인들이 회피하기 쉬운 여러 이슈에 대해 가감 없이 자기 생각을 피력하면서 갈등을 덮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많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후보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화법 대신 여러 이슈에 대해 자기 언어를 갖고 대응하는 게 장점”이라며 “이 후보의 등장이 정치 스타일 자체를 바꿔 정치권 전체에 압박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치 문법과 세대 교체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극심한 진통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Z 세대를 기존 보수나 진보의 잣대로 구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보수 정체성을 놓고 당내 갈등이 빚어질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더군다나 산업화 세대가 순순히 MZ 세대에게 정치 주도권을 내놓을 리도 만무하다. 이 후보가 대표가 된 후 기성 세대와 적당히 타협하거나 얼굴마담 역할만 한다면 이준석 이펙트는 결국 일시적인 막간극에 그칠 수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국민의힘 내부에 진정한 세대교체를 위한 세력이 형성돼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미지 변신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도 마냥 반가워할 수 없다...대선 구도도 유동성 커질 듯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인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뉴시스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인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뉴시스

이준석 이펙트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내년 대선 구도에 미칠 영향이다. 30대 당 대표 등장은 야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윤 전 총장이 마냥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이 30대 당대표 등장 이후 역동적인 쇄신으로 정국의 중심에 서게 되면 당 밖 인사에 대한 관심도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의 부상 자체가 야권에 대선 주자가 없고 국민의힘이 무력했던 상황과 무관치 않았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인사는 “대선판이 윤 전 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간 양강 구도로 전개됐지만, 이준석 바람에 두 사람 모두 구시대적 인물로 쓸려갈 수 있다”며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짜인 대선 구도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측은 이준석 이펙트가 ‘노무현 신화’에 버금가는 정치혁명을 몰고 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는 MZ 세대가 1987년 이후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주도권 다툼을 벌였던 지난 30여 년의 한국 정치판 자체를 뒤집는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 이준석 후보는 이를 감당할 역량을 갖고 있을까. 아직은 누구도 섣불리 답하기 어렵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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