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내 준고령자 비중이 커질수록 임금 부담이 커지니 기업은 정규직 신규 채용을 꺼리게 되죠. 그러니 청년 일자리가 줄어듭니다. 조직 안에서도 실제 일을 할 젊은 직원은 몇 없는데, 일은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임금은 2~3배씩 더 받는 상사들이 있단 말이죠. 경영진에게도 그렇겠지만, 요즘 MZ세대(밀레니엄세대+Z세대ㆍ1980~2000년대 출생)에게도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죠."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정승국(63)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학계에서 정 교수는 이미 오랜 기간 '직무급제 전도사'로 유명했다. 오랜 전도사가 갑자기 주목받은 건 차기 대선 유력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났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그 덕에 직무급제에 따라붙던 '가능하겠느냐'는 꼬리표가 '혹시?'로 바뀌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이중구조'를 꼽는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중소기업 비정규직' 사이에 너무 큰 격차가 있다는 얘기다. '특권화된 강성 노조'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나온다.
정 교수도 이런 분석에 동의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얘기할 때 비정규직 비율, 정규직 전환율, 임금 격차 이 세 가지를 봅니다. 우리나라는 이 세 가지 모두가 굉장한 악성이에요."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전체 근로자 중 호봉제 혜택을 보는 이들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속하는 20% 정도입니다. 비슷한 일을 해도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비정규직 형태인 80%의 근로자는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만 받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정 교수는 다른 통계를 꺼내들었다. "한국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근속 1년 미만 신입사원의 초임'과 '30년 근속자의 임금 수준'이 3.11배 높은 것으로 나와요. 연공제가 엄격하다는 이웃 일본 2.37배보다도 높은 수준인 거죠." 이런 부담을 져야 하는 기업은 결국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린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일자리의 '양'도 줄어드는데, '질'도 하락하는 셈이다.
입사한 뒤에도 문제다. 젊은 세대들 눈에는 일은 거의 안 하면서 고연봉을 챙기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하라지만, 우리의 임금 체계는 사실상 '동일 입사 연도 동일 임금'이에요. 젊은 세대들 입장에선 하는 일은 비슷한데 임금 차이는 크니 반발할 수밖에 없지요."
남녀 간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한 해법도 직무급제가 될 수 있다. 그는 "연공적 임금체계 자체가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둔다'거나 '여성이 적합한 서비스 직종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남녀 직종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라도 직무 성격에 따라 임금을 주면 성별로 인한 임금 격차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이상'이라면 다음은 '현실'이다.
직무급제에는 "노동자들 내 세대 갈등, 직무 간 갈등 등 '노노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란 우려가 따라붙는다. 실제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직무급제를 한답시고 청소, 경비 등 업무에 대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정해 노동계가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우려는 "30년 근무한 뒤 전체적으로 결산해보면 결국 전체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애 총임금 감소론'이다. 한마디로 '비용 절감을 위한 회사의 꽃놀이패'가 되리란 우려다.
그렇기에 정 교수는 충분한 설명과 단계적 도입을 강조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들 사례를 보면 교육, 설명회 등을 통해 직무급제를 충분히 설명하는데 엄청난 공을 들였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고요. 정 낯설다면 가령 '과장급 이상'이나 '특정 직군'에 먼저 도입해서 '이게 결코 불리한 게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이다'라는 걸 납득시켜줄 필요도 있습니다." 생애 총임금이 결국 감소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초임이 높다면 오히려 생애 총임금은 전체적으로 더 증가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여러 장점 덕에 직무급제는 많은 이들이 거론했으나 흐지부지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 교수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 화두는 불평등입니다. 거기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있습니다. 대선을 계기로 이 문제가 주목받고, 해결책이 나와야 합니다. 공공부문은 정부가 앞장서고, 민간부문은 노사발전재단을 통해 컨설팅을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진행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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