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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 잡코인 100개가 물 흐려도... "휘두를 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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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 잡코인 100개가 물 흐려도... "휘두를 칼이 없다"

입력
2021.06.01 04:30
6면
0 0

[무법지대 코인판, 이대로는 안된다]
<하>까다로운 상장 코인베이스와 달리
'근본 없는' 잡코인 막을 근거 없어
시세조종, 부실 공시 처벌도 '깜깜'
"시장 인정한 뒤 규제 재정비해야"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라운지 전광판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라운지 전광판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 세계에서 가장 위태롭지만 가장 느슨한 나라." 가상화폐 광풍의 중심에 서 있는 국내 상황을 두고 한 코인 거래소의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하루 거래 규모가 수십조 원을 넘나들지만, 코인 상장부터 거래, 투자자 보호에 이르기까지 어느 과정 하나 법의 통제를 받는 곳이 없다는 현실을 비꼰 말이다. 이런 현실은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최근 본격적인 가상화폐 규제에 나서고 있는 것과도 대조된다.

코인 광풍에 손 놓고 있다는 비판에 정부는 최근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특금법)을 손봐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부실 코인 상장 방지책이나 시장에서 이뤄지는 시세조종 등 이른바 '작전세력'이 벌이는 광범위한 불공정 행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체불명 검은 코인, 검증은 없었다

1일 코인업계에 따르면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는 58개의 코인만 상장돼 거래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대형 거래소인 업비트(178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플라이에선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12개만 거래된다. 미국과 일본에서 가상화폐를 상장하려면 금융당국의 사전 심사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코인 업계 관계자는 "정체가 불분명한 코인은 상장 자체가 불가능해 이들 거래소에 상장되는 것 자체가 투자자들 사이 '호재'로 작용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코인 상장 과정에 엄격한 기준이 없어 부실한 가상화폐가 우후죽순 생겼다고 비판한다. 임명환 한국블록체인연구교육원장은 "상장 수수료를 챙기려는 일부 거래소와 투자금을 모으려는 발행 업체가 결탁해 부실 코인을 상장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가상화폐 거래소들과 블록체인 협회 등이 공동으로 지분을 갖고 참여하는 공적 성격의 기관이 상장 절차를 엄격하게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공정 코인 상장에 정부가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자 정부도 가상화폐의 국내 발행을 전면 금지하는 나름의 대책을 내놓긴 했다. 하지만 이는 외국에서 발행한 부실 코인을 국내 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것을 전혀 막지 못해, 있으나 마나 한 대책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국내 거래소나 기업들이 외국에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투자자를 끌어들여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해 수십억 원의 차익을 챙긴 사례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코인 옥석 가리기에 나서길 여전히 꺼리고 있다. 정부 개입이 자칫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막는 요인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보수적인 성향의 정부가 코인 상장 심사를 진행한다면, 주요 코인 3~4개만 남고 모두 거래가 중지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사장시킨다는 비판이 크게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정부 "투자보호 상품 아냐"... 휘두를 칼이 없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작전세력'이라 불리는 사기꾼들은 부실코인을 상장시켜 시세조종이나 허위 및 부실공시 등 각종 방법으로 투자자 돈을 착취해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코인 상장 이후 단계에서도 이들을 처벌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김기흥 블록체인포럼 대표(경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주식시장이라면 이런 행위들을 자본시장법 등으로 감독하고 처벌까지 할 수 있겠지만, 가상화폐 시장에선 일상화된 불공정 행위에 휘두를 칼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선진국들 역시 가상자산을 완전한 금융자산과 동일시하고 있지 않지만, 관련 법에 따라 가상화폐를 증권 같은 금융상품으로 취급해 규제에 나선 것과도 대조적이다.

실제 미국은 연방 차원의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가상화폐에 증권 감독 규율을 적용해 관리한다. 뉴욕주는 2015년 '비트 라이선스(면허)'란 법률을 제정해 공시 의무부터 이용자 보호, 불법자금세탁행위 방지 등 규정을 담았다. 비슷한 성격의 국내 특금법이 올해 3월에서야 시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보다 6년이나 뒤처진 셈이다.

일본 역시 2016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이용자 보호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사실상 주식시장에 준하는 시장으로 인정하고 위험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달 28일 가상화폐 시장을 감독할 주무부처를 금융위원회로 정하고, 시세조작 차단 대책 등을 내놨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내용은 빠졌다는 비판이 높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금세탁이 포착되지 않는 이상 금융당국이 나서 규제하고 적용할 수 있는 법 자체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법적 지위도 없는데 금지법만... "규제입법 시급" 목소리

이 때문에 가상화폐 시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 발언 이후 3년 내내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한결같이 "인정 불가"다.

현재 가상화폐 관련해 국내 유일한 법 규정인 특금법도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에 초점을 맞춰 가상화폐 발행사의 불공정 행위 처벌이나 투자자 보호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금융당국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에 따라 3월 특금법을 시행했지만 "특금법이 가상자산의 제도화는 아니다"라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시장을 인정도 안 하면서 국제기구 지침에 따라 관련 법을 만든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셈"이라며 "가상화폐 업권법을 마련해 금융자산 등으로 정의한 뒤 세세한 거래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아름 기자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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