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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선 민주화운동가가 범죄자"… 빨라지는 '중국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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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선 민주화운동가가 범죄자"… 빨라지는 '중국화 시계'

입력
2021.05.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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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민주화시위자 취업 어려움" 겪어
코로나 핑계 톈안먼시위 추모 또 막아
영국행 이민 신청 4개월만? 3만명 돌파

2019년 6월 홍콩 경찰본부 앞에서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2019년 6월 홍콩 경찰본부 앞에서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이제 홍콩에선 민주주의 운동가가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가 됐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한 요즘 홍콩의 상황이다. 2019년 반(反)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과 시민 수백명이 처벌을 받으면서 생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불과 2년 만에 홍콩에선 수많은 정치범이 양산됐다. 중국 정부에 충성하는 시민만 공직에 출마할 수 있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민주화 투쟁의 씨를 말리려는 ‘중국화’ 시계가 한층 빨라진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시민 2,500명이 불법 시위 참여를 이유로 기소됐고, 300명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홍콩의 전체 수감자가 7,000명인 점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 중 일부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이들이 ‘사상범’ ‘전과자’란 낙인이 찍혀 일상 복귀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반정부 시위 도중 방화 혐의로 체포돼 징역 6개월 실형을 받은 30대 남성은 NYT에 “정부는 우리에게 저항할 여지와 갈 곳을 남겨두지 않았다”며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만들어낸 의도된 결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미 라이(가운데) 빈과일보 사주가 2월 홍콩 최고법원인 종심법원을 떠나고 있다. 라이는 이날 2019년 10월 불법 집회를 조직한 혐의로 14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AP 자료사진

지미 라이(가운데) 빈과일보 사주가 2월 홍콩 최고법원인 종심법원을 떠나고 있다. 라이는 이날 2019년 10월 불법 집회를 조직한 혐의로 14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AP 자료사진

민주진영 인사들 역시 줄줄이 된서리를 맞았다. 이날 홍콩 법원은 대표적 반중 매체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에게 2019년 10월 불법 집회를 조직한 혐의를 씌워 징역 14개월 형을 선고했다. 이미 비슷한 죄목으로 14개월의 형이 확정됐는데, 처벌 수위를 두 배나 높인 것이다.

시위 참가자들의 희생이 늘수록 중국 당국의 홍콩 장악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전날 홍콩 의회인 입법회는 당국의 공직선거 출마 후보자 자격 심사 등의 내용이 담긴 선거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중국 정부에 충성하는 인사만 정치권에 남기겠다는 게 핵심이다. 법의 가면을 쓴 중국의 탄압이 계속되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중국이) 홍콩의 민주적 제도를 계속 훼손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미 중국의 하수인이 된 홍콩 정부부터 알아서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위를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ㆍ4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촛불집회는 열리지 못한다. 홍콩 시민들은 1989년 톈안먼 시위가 유혈 진압된 이듬해부터 매년 대규모 추모 집회를 개최했지만, 홍콩 정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31년만에 이를 금지했다.

올해 역시 불허 명목은 보건 위기다. 하지만 홍콩 당국의 꼼수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전날 홍콩에서는 7개월만에 코로나19 신규 확진 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최근 2주간 환자를 다 합쳐도 24명에 불과하다. 집회를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매년 추모 집회를 주최해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관계자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정부가 시민들의 합법적 권리를 억압하기 위해 감염병 핑계를 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6년 6월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톈안먼 사태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홍콩=AP 자료사진

2016년 6월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톈안먼 사태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홍콩=AP 자료사진

인권과 자유를 말살하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질려 고향을 등지는 ‘엑소더스(대탈출)’ 움직임도 거세다. 영국 내무부는 이날까지 홍콩인의 비자 신청이 3만4,0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영국이 올해 1월 31일부터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가진 홍콩인에게 이민 신청을 받기로 결정한지 4개월 만이다. 로이터통신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행에 따라 1분기 유럽연합(EU) 국적자들이 신청한 이민 건수(5,354건)와 비교도 되지 않은 규모”라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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