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을린 사랑' 30일까지 LG아트센터
연극 '그을린 사랑'은 공연 시간이 무려 3시간 30분에 달한다. 웬만한 뮤지컬이나 오페라보다 길고,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 '반지의제왕' 시리즈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예매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인터미션도 한 번밖에 없어서 긴 시간 인내심을 요구한다.
레바논 출신의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Incendiesㆍ2003)'이 원작이다. 2010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긴 공연 시간만큼 서사적인 면에서도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연극은 아니다.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한 중동 출신의 여인 나왈이 겪었던 질곡의 삶이 주제다. 그 세월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전쟁과 테러, 고문 등 한 인간이 인내해야만 했던 갖가지 수난으로 점철돼 있다. 나왈의 쌍둥이 자녀 잔느와 시몽은 엄마의 유언을 따라 여행을 하는 동안 인간이 만든 역사의 참상을 마주한다. 특히 나왈이 실어증에 걸리게 된 사건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극이어서 신화적일 정도다.
시사점이 적지 않다. 나왈을 둘러싼 난민과 민병대의 전쟁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분쟁을 똑 닮았다. '그을린 사랑'의 신유청 연출은 '우리사회가 근대를 통과하며 수많은 고난이 있었고, 그 순간 '망각'과 '기억'이 대립했다'는 소설가 황석영의 말을 인용하며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을린 사랑'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이다.
'연극계 블루칩'으로 통하는 신 연출의 작품답게 무대 구성이 독특하다. 1,000석이 넘는 대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는데도 이렇다 할 세트가 없다. 사무실 책상이었다가 벽이 되고, 무덤의 관으로도 기능하는 테이블 등 소품 몇 점이 이따금 등장할 뿐 무대는 시종일관 공허하다.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는 한지 위의 붓글씨처럼 또렷하게 다가온다. 신 연출은 "연극이란 무엇보다 잘 들려야 하고, 잘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을린 사랑'은 잘 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라고 했다. 이국적이고 시적인 대사들에 주목해 달라는 뜻이었다.
2012년 국내 초연된 '그을린 사랑'은 지난해 백상연극상을 수상했다. 30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7월에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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