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면 의료진이 치료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경직된 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대한의사협회)
"오히려 고위험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들이 불필요한 의료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의료계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수술실 CCTV 설치법'을 두고 국회가 처음으로 관련 단체들을 불러 의견 수렴에 나섰다. 여야 간 의견 차로 21대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의료계 측은 CCTV를 설치해봐야 소극적인 진료만 부추기게 될 것이라 공격했고, 시민단체들은 대리수술이나 유령수술, 의사들의 성범죄나 의료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옹호했다.
의료계 "부작용이 더 커... 방어·소극적 진료 늘어날 것"
26일 국회에선 보건복지위원회 제1소위원회 주최로 ‘수술실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 관련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는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대리수술이 적발된 건수는 112건으로 발생률이 0.001%에 불과하다"며 "CCTV 설치로 인해 예방할 수 있는 범죄가 많지 않은데 역기능은 더 크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역기능으로는 △신체 노출로 인한 환자 인권 침해 △설치와 영상 관리에 따른 비용 문제 △경직된 수술환경 등을 꼽았다. 김 이사는 "집도의는 환자에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환자의 신체 노출을 피하기 어렵고, 의료진은 치료에만 집중할 수 없게 돼 의사들의 외과 기피 현상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CTV의 범죄 억제력도 신통치 않다. 김 이사는 "CCTV 설치를 의무화한 어린이집 통계를 봤더니 CCTV 설치 이후 아동학대가 더 늘었다"며 "불법의료행위는 수술실 내부 직원의 공익제보 등으로 이미 감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병협) 측도 중증응급의료 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오주형 병협 회원협력위원장은 "CCTV를 설치하게 되면 의사들이 사고의 위험성이 큰 수술을 피하거나, 방어적으로 소극적으로 진료할 것"이라며 "전 세계 어디에도 수술실 내부를 촬영하는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 "수술실 내 환자 안전 지키는 최소한의 조치"
반면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수술실 내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을 두고 "수술실 내 모든 범죄행위와 인권침해를 100% 예방하거나 사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수술실 내 환자의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치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공익제보 가능성도 부인했다. 그는 "수술실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어서 범죄에 가담할 경우 모두 공범이 되어 내부 제보가 쉽지 않다"며 "무자격자 대리수술은 물론이고, 성범죄·의료사고 등이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일이 반복되는 건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술실CCTV설치법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환자 및 유가족이 수술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수술과정을 녹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이다. 18대 국회 때부터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를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세 차례나 소위 안건에 올랐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개별 병원이 자율적으로 수술실CCTV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수술실 '입구'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되 △수술실 '내부' CCTV 설치는 자율에 맡기는 중재안을 내놨다. 하지만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의무화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여권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날 페이스북에 "반드시 의무화돼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수술 현장 자체를 CCTV로 보여주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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