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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합의 인정하고 한 발 더 내딛자"日 대표 페미니스트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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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합의 인정하고 한 발 더 내딛자"日 대표 페미니스트의 해법

입력
2021.05.27 05:00
수정
2021.05.31 17: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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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여성행동네트워크(WAN)’ 이사장

우에노 지즈코 NPO 법인 ‘여성행동네트워크(WAN)’ 이사장(도쿄대 명예교수)이 20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우에노 지즈코 NPO 법인 ‘여성행동네트워크(WAN)’ 이사장(도쿄대 명예교수)이 20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올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예상과 다른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서울지방법원은 1월과 4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또 2017년 대선 전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이 합의를 “양국 정부 간 공식적 합의”라고 인정했다.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과 명예회복의 길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ㆍ73) NPO 법인 ‘여성행동네트워크(WAN)’ 이사장(도쿄대 명예교수)은 20일 한국일보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2015년 합의로 돌아가 양국이 이를 인정하고 그다음 단계로 내딛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연구자로 손꼽히는 우에노 이사장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 때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 활동을 해 왔지만, 일본 정부에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과 일본의 지원단체나 학자들과는 결이 다른 입장을 취해 왔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한국과 한국 여성운동의 대승리"

우에노 이사장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세 가지 책임, 즉 법적 책임, 정치적 책임, 도의적 책임 중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가장 원하는 ‘법적 책임’을 얻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이상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 판결에서도 나타났지만 “법원은 법률에 쓰여 있지 않은 것을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 국회가 전후 배상을 위한 특별법 등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몇 번이나 의원 입법으로 발의했음에도 다수파의 반대로 한 번도 통과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최악이고 일본 여론도 전보다 훨씬 우경화된 상황에선 법안 통과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은 일본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1993년 고노 담화와 1994년 무라야마 담화 후 조성된 ‘아시아여성기금’이 ‘도의적 책임’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한 발 진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 국민의 세금에서 10억 엔을 출연하기로 한 것은 이전 정권에서는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획기적인 것”이라며 “한국과 한국 여성운동의 대승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베 같은 보수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국내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것이 뻔해 오히려 불가능했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베이기 때문에 우파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한계 있지만 인정하고 나아가야"

그는 위안부 합의의 한계도 인정했다. 합의 후 △더는 국제사회 등에서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 것 △아베 전 총리가 할머니들에게 사과문을 보낼 마음이 없다고 말한 것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문제 등 ‘세 가지 상처’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한 것에 비하면 작은 문제일 수 있는데, 언론 보도는 의의보다 한계에만 집중하면서 한국의 정치적 승리를 과소평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다시 위안부 합의를 양국 정부가 인정하고 그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면 ‘합의에서 책임을 인정했으니 이 내용을 교과서에 실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모관이나 전쟁책임 자료관을 만든다든지, 민간이 만든 자료관에 정부가 돈을 지원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작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하지만 합의를 부정해 버리면 갈등이 지속된 채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일 젊은 여성들, 가부장제·유교 등 비슷한 문화로 상호 이해 수월"

페미니스트로서 우에노 이사장은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여성들의 ‘연대’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젊은 여성들 사이에 트위터 등 인터넷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2월 거물 정치인인 모리 요시로(森喜朗·83)가 여성 멸시 발언으로 올림픽 대회 조직위원장을 사퇴하는 일이 일어난 것도 이 같은 움직임의 결과 일어난 변화라고 했다.

그는 양국 젊은 여성들이 이미 음악, 드라마 등을 통해 교류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가부장제나 유교 영향 등 비슷한 문화적 배경이 있어서 상호간 이해가 수월하다고 평가했다. ‘82년생 김지은’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라는 설명이다. 우에노 이사장은 WAN 사이트(바로가기)를 통한 한일 여성 간 학술 교류도 제안했다. 그는 “11년 전 처음으로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제막할 때 이를 동영상으로 찍고 일본어 자막을 붙여서 WAN 사이트에 올렸다. 우익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줄 알고 위기관리 대책도 세웠다”며 “한국과 WAN에 실을 수 있는 기사를 교환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에노 지즈코 NPO 법인 ‘여성행동네트워크(WAN)’ 이사장(도쿄대 명예교수)이 지난 20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WAN 사이트를 소개하며 한일 여성 간 연대 방안을 얘기할 때는 힘내자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우에노 지즈코 NPO 법인 ‘여성행동네트워크(WAN)’ 이사장(도쿄대 명예교수)이 지난 20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WAN 사이트를 소개하며 한일 여성 간 연대 방안을 얘기할 때는 힘내자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최근 한국에서 젊은 남성의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ㆍ반발성 공격)’가 강하게 일어나는 데 대해서는 징병제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다만 “남성들도 징병제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나라에 징병제를 없애라 하지 않고 여성을 공격하는 것은 진짜 적이 아니라 약한 쪽을 적으로 삼은 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 일부가 오히려 트랜스젠더는 배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불황으로 여성의 파이가 작아지자 서로 싸우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되고 차별을 받는 사람”이라면서 “파이 쟁탈전을 벌이지 말고 파이를 키우는 공동 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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