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총장 "성소수자는 죄인 아냐… 천주교 교리도 바뀌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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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총장 "성소수자는 죄인 아냐… 천주교 교리도 바뀌기 마련"

입력
2021.05.27 04:30
수정
2021.05.2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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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교리도 바뀔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죠. 그렇다면 기존의 입장은 바꿔야 되지 않습니까. 구약성경에 기초해서 동성애 행위를 병이나 죄라고 이해해왔지만 현대의 의학적·심리적·사회학적 연구들은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요. 인간의 신비가 밝혀질수록 교리도 다르게 재해석되고 표현될 여지가 있는 거예요. 다만 성소수자들도 교회가 느리게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서강대 총장 심종혁 신부

천주교 공식 교리서도 '동성애자는 죄인이 아니고, 그들은 타고난 성향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존재'라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 그렇지만 그들의 성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할 수 없다고도 천명한다. 결론적으로 교리는 동성애자에게 성행위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신부나 수녀처럼 인내하며 하느님 앞에서의 순결(정결)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성소수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서강대 총장인 심종혁 신부는 결국은 교리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모른다.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교리 아래서는 성소수자들이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심 신부가 번역해 이달 출판된 종교서적 ‘다리 놓기’에는 그때를 기다리는 교회와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담겼다. 성소수자를 다루는 천주교 사목 서적이 출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회와 성소수자는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5일 서울 서강대 집무실에서 심 신부를 만나 교회와 성소수자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 들어봤다.


심종혁 신부가 25일 오후 서강대 총장실에서 교회가 먼저 성소수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심 신부는 평소 피정 등의 사목활동을 하면서 성소수자 당사자 또는 그들의 부모와 만나며 고민을 상담해주던 것이 성소수자 사목 서적을 번역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교리는 성소수자는 죄인 취급 안 해

서로 이해하려면 일단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 심 신부는 "성소수자를 죄인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신교는 물론 천주교인 가운데서도 일부가 그런 태도를 드러내는데 지금의 교리로 따져도 성소수자는 죄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향이기 때문이다. 심 신부는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지금까지 동성애적 경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에게 독신으로 살라고 가르쳐 왔다”면서 “일부가 성향과 행위를 구분하지 않고 비난하는데 분명히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심 신부는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입니다만, 제가 기자한테 ‘당신 죄인이야’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지요?”라면서 “오른손잡이가 지배적 문화라고 해서 왼손잡이로 태어난 사람에게 ‘그건 병이야’ ‘너는 병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언어적 모순이죠”라고 덧붙였다.

성행위 문제삼는 교리도 언젠가는 변화

그렇다면 동성 성행위는 앞으로도 죄일까. 심 신부는 교리의 가르침을 자신이 바꿀 수는 없다면서도 변화는 분명히 온다고 단언했다. 교리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교리도 시대를 반영해 변해왔고, 변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심 신부는 교리서의 ‘객관적 무질서’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동성애가 고칠 수 있는 질병이라고 이야기하면 그 표현이 덜 불편할 수 있지만 현재 의학적으로 그렇지 않다”면서 “가톨릭 교회가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도전을 받고 있으니까 (교리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변화할 여지는 많이 있다”고 부연했다.


심종혁 서강대학교 총장 신부가 25일 오후 자신이 번역한 미국의 제임스 마틴 신부의 성소수자 관련 종교서적 '다리 놓기'를 가리키고 있다. 심 신부는 서울대교구가 인가한 책인만큼 앞으로 신부와 수도자들이 성소수자를 사목할 때 자신있게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사제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책 '다리 놓기'에선 교회, 사제, 수도자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객관적 무질서’처럼 상대방에게 적대감만 일으키는 표현을 굳이 사용할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심 신부는 “저자인 제임스 마틴 신부는 그 점에서 단호하다”면서 “예수님께서 그 시대의 따돌림받고 배척당한 사람들과 함께하셨듯이 우리 시대의 약자, 성소수자들에게 교회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 신부는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성소수자 사목에 뛰어드는 사제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책을 번역한 이후로 많은 신부와 수도자들이 좋은 자료를 내줘서 고맙다고 연락해왔다”고 설명했다.

사제들 사이에도 성소수자 있을 것

심 신부는 교회 안팎에 성소수자들이 많이 존재한다며 사제들이나 신자들이 평소에 그들을 모욕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심 신부는 1987년 사제가 됐는데 그때부터도 피정이나 세미나를 가면 성소수자나 그들의 부모들이 조용히 상담을 요청해왔다는 이야기다. 심 신부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겪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어느날 원장 신부님이 신학생들에게 성소수자에 관해서 농담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면서 "신학생들 사이에도 얼마든지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심 신부는 "차별 때문에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에도 성소수자가 굉장히 많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심 신부는 평소 사목현장에서 성소수자를 많이 접해왔다면서 평소에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신이 농담을 건네는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성소수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진탁 인턴기자


성소수자들도 기다려달라

성소수자들도 함께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심 신부는 당부했다. 사제들을 모욕하거나 교회에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그들이 변화하도록 격려하고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다. 심 신부는 “‘너하고 나하고 이렇게 갈라 섰으니 그래 그만하자’ 그러지 말라는 것”이라면서 “교회가 변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들의 반발을 불렀던 염수정 추기경의 생명주일 담화문에 대해서도 “염 추기경님은 교회의 어른이니 다소 보수적으로 사안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 청원 동참한 이유는

다리 놓기는 천주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참할 과제라고 심 신부는 강조했다. 인간의 특성을 골라내 차별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심 신부가 25일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최초 청원자 99인으로 이름을 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청원 동참자는 하루 반나절 만에 4만 명을 넘어섰다. 심 신부는 욕 먹을 각오를 했다며 웃었다.

“가톨릭 사제로서 인종의 차별, 장애로 인한 차별, 다양한 이유로 인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 내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염 추기경님과 같은 입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보통 신부니까 청원에 동참했죠. 누가 따지고 욕하면 제가 기꺼이 감당해야죠. 신부가 욕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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