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주차 자리 뺏긴 굴삭기 기사 조치에
1심 "차량 자체 피해 없어 재물손괴 아냐"
2심·대법원은 "차량 효용 해쳐" 유죄 판단
2018년 7월 어느 날 서울 노원구 한 시멘트 공장 인근 공터에 승용차를 주차해뒀던 차주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일을 본 뒤 오후 10시쯤 주차 자리에 돌아왔는데 차량 앞에는 1m가 넘는 철근 콘크리트가, 뒤에는 굴삭기 부품이 바짝 붙인 채로 놓여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차량을 ‘봉쇄’하려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A씨는 장애물을 치우지 않고 운전을 통해 잘 빠져나가 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경찰관 2명과 함께 장애물을 옮겨 보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이튿날 새벽 1시까지 차량을 빼내려고 고군분투하던 A씨는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오전 7시쯤 구조물이 치워진 뒤에야 18시간 만에 차를 뺄 수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봉쇄 조치'는 굴삭기 운전자 B씨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그는 평소 자신이 굴삭기를 세워두는 자리에 A씨 승용차가 주차된 것을 보고, 불만을 품고 차를 빼지 못하게 장애물을 쌓아뒀다. B씨는 자신의 굴삭기나 A씨 차량에 연락처를 남겨놓지도 않았다.
B씨가 저지른 ‘보복 주차’는 형사처벌이 가능할까. 검찰은 B씨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형법 제366조의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 문서 등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법령상 ‘기타 방법’은 손괴·은닉처럼 물건 자체의 형상이나 구조,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하는데, B씨 행위로 A씨의 승용차 형상이나 기능엔 아무런 장애가 초래된 바 없다”며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차량 자체에 가해진 물리적 피해가 없으니,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2심은 “재물손괴죄에는 재물을 본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거나,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며 B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2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4일 “B씨가 놓아둔 구조물로 인해 A씨 차량을 운행할 수 없게 돼, 차량 본래의 효용을 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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