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울분에 멍든 2030 ... 여성은 '우울', 남성은 '자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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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울분에 멍든 2030 ... 여성은 '우울', 남성은 '자살 생각'

입력
2021.05.25 04:30
수정
2021.05.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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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삼키는 '코로나 블랙']<중>목숨 위협하는 우울


"이력서를 50개 넣었는데도 연락이 안 와요.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도 안 뽑더라고요. 밤마다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길어져 결국 우울증으로 병원까지 가게 됐어요."

이아영(30·가명)씨는 병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다 나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호텔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자격증 준비도 할 참이었으나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져버렸다.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갑갑한 마음에 술을 들이켜다 어느새 병원까지 드나들게 됐다. 왜 이렇게 됐는지, 자기도 모를 일이다.

박정찬(31·가명)씨도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우다. 정규직 전환이 여의치 않았던 전 직장을 그만두고선 금세 이직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코로나19로 상황이 나빠지면서 지금은 건설 일용직 일을 한다. 그는 "직장일이 아니어도 다른 활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스트레스라도 풀릴 텐데, 그러질 못하니 제 스스로도 훨씬 예민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박씨는 '무기력'이라 정리했다.

서재훈 기자


여성은 우울하다

통계적으로 볼 때 이씨는 우울증에, 박씨는 자살 생각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보통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우울하다. 2001년부터 5년 주기로 진행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우울 장애 유병률'이 늘 2배 이상 높았다. 코로나19 2년 차에 접어든 올해,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도 20대 여성이 7.1점(총점 27점, 평균 5.7점)으로 우울 점수가 가장 높았고, 우울 위험군 비율 또한 30대 여성이 31.6%(평균 22.8%)로 가장 높았다.

이 우울증은 이미 위험한 선을 넘나들고 있다. '자살 생각'에 있어서도 남성만큼은 아니지만 여성들도 최근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 연령대에서 지난해 3월 여성의 자살 생각 비율은 9.2%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해 9월 13.1%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해 12월 13.6%에 이어, 지난 3월엔 15.1%까지 치솟았다. 연령대별로는 20대 여성(19.9%)이 가장 많았고, 30대 여성(18.7%)이 그 뒤를 이었다.

이게 단지 앓는 소리만으로 그치지 않는 게, 삶을 포기하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보건복지부의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현황'을 보면 2020년 한 해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온 자살시도자 중 20대 여성이 20.4%로 가장 많았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울분에 찬 여성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비슷할 텐데, 여성은 왜 더 우울할까. 아무래도 사회·경제적 차별로 인한 '울분'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꼭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울분을 많이 느낀다는 얘기다.

지난 4월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울분 연구팀'은 전국 19세 이상 1,478명을 대상으로 한 '2021년 한국 사회의 울분 조사' 결과를 내놨다. 해고, 이혼, 차별 경험 등 부정적인 사건 경험을 울분 유발 조건으로 간주한 뒤 지난 1년간 심하게 스트레스받은 일을 물었다. 여기에다 자신과 관련된 부정적 사건 외에도 사회·정치적 사안에 대해 울분 정도도 함께 물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안전관리 부실로 초래된 의료, 환경, 사회적 참사에 대한 여성의 울분 점수는 3.49점으로 남성 3.32점보다 더 높았다. 직장·학교 내 따돌림, 괴롭힘, 차별, 착취로 인한 울분도 여성은 3.51점으로 남성 3.42점보다 높았다. 심지어 시합이나 경기 중 오심 및 편파 판정으로 인한 울분 점수도 여성이 3.15점으로 남성의 3.03점을 앞질렀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성차별, 혐오가 일으키는 울분 점수도 여성이 2.96점으로 남성 2.75점보다 높았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울분 점수가 높았던 부분은 병역 기피나 비리 등 병역 의무 위반에 대한 사안뿐이었다.


2018년 8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진행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울분을 부르는 한국 사회

이런 차이는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반영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여성 자살률이 늘어난 '2017년'을 주목한다. 통계적으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0대 여성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4명→13.2명→16.6명으로, 30대 여성 자살률은 16.2명→18.3명→20.0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런 증가세에 대해 이 교수는 "조심스럽게 해석하자면 이는 대졸자 취업률에서 남녀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시점과 겹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고등교육기관 졸업자의 성별 취업률 격차는 2016년 2.6%포인트(남성 69.0% 여성 66.4%)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2017년 이후 3%포인트, 3.6%포인트, 3.8%포인트로 계속 늘었다. 이 교수는 "가정과 학교에서의 경쟁과 성취가 사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울분 연구에서 보듯 자기와 무관한 듯해 보이는 사회적 이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도 작용한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018년 미투 운동 등이 한 예다. 이 교수는 "이 사건들을 계기로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여성들 입장에서는 정신적으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온갖 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젠더 이슈는 여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긴다. 여성 단체인 페미당당의 활동가 심미섭(30)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페미니즘 이슈가 온라인상의 논쟁으로만 번지거나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걸 지켜봐야만 하는 여성들 입장에서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성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2030 남성들의 상황도 편치만은 않다. 자살 생각 부문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압도한다. 올해 3월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남성 평균 자체가 17.4%로, 여성(15.1%)에 비해 높다. 이 또한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계속 오르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3월 10.1%에 머물던 것이 14.5%(지난해 9월)까지 오르더니 15%를 넘겨버린 것이다. 특히 20대와 30대 남성의 자살 생각 비율은 둘 다 25.0%로, 전 성별과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성이 '우울을 호소한다'면, 남성은 그다음 단계로 바로 넘어가버리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남성의 자살 생각 증가를, 그간 닫혔던 남성들의 입이 열리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남윤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은 "예전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잘 표현하지 않거나, 못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면, 이제는 세대가 달라지면서 남성들도 자신들의 불만과 불안에 대해 어느 정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된다"며 "그만큼 정신건강 위험도가 높아진 측면도 있는 만큼 허투루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남성들에게 더 불안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과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사람이 서서히 소진되는 과정이 이어진다"며 "그 과정을 여성들은 정서적 교류를 통해 보다 쉽게 풀어내는 반면, 남성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주로 만나서 술 한 잔하는 것 같은 대면활동이 많은 편이라는 얘기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사회적 처방'을 고민해볼 때

최근 불붙는 젠더 이슈가 여성에게만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건 아니다. 남성들도 일정 정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정석 일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자살 생각의 원인에는 우울도 있지만 분노도 있다"며 "최근 '백래시' 논란이 일 정도로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에 나선 것처럼, 남성 청년들도 우리도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 블랙을 단순히 질병 치료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민아 중앙대 교수는 "코로나 블랙은 코로나19뿐 아니라 삶의 조건과 환경 전반에서 영향을 받는 일종의 사회적 문제이기에 단순 질병처럼 진단, 처방하는 건 어렵다"라며 "영국에서는 환자들에게 지역 사회가 보유한 비의료서비스에 연결해주는 '사회적 처방'을 내리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런 식의 종합적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다면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소영 기자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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