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엄마, 레즈비언 아빠... 이들이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비혼 엄마, 레즈비언 아빠... 이들이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입력
2021.05.24 04:30
수정
2021.05.24 08:34
0 0

미디어 속 다양한 가족 모습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오랫동안 결혼한 남녀와 그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이 '정상 가족'으로 대접받아왔다. 그 외 모든 가족은 '비정상'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에 육박하고, 4인 가구 이상이 처음으로 10%대(19.6%)로 떨어진 게 현실. 미디어 속 가족의 모습은 과거와 달라진 양상을 읽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방송에서 처음으로 비혼 육아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2)와 국내 최초 퀴어 가족 시트콤인 '으랏파파'는 혼인이나 혈연 없이도 가족을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역할 또한 잘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유리는 비혼 상태에서 낳은 아들 젠과 함께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KBS 방송 캡처


비혼 출산 화두 던진 사유리 "왜 더 일찍 안 했을까..."

"우리 가족은 저와 아들 젠, 반려견 사랑과 오리코로 이뤄진 4인 가족입니다."

지난해 11월 비혼 상태에서 출산한 사유리는 이달 2일부터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를 통해 아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선보이고 있다. 아이를 원했던 사유리는 난소 나이가 48세라서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산부인과 진단을 받은 후 결혼할 남자를 찾기보다는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쪽을 택했다.

"비혼 출산으로 엄청 욕먹을 줄 알았다"는 그는 방송 활동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슈돌' 출연이 알려지자 반대하는 시청자 청원(4,415명 동의)이 올라왔다. 하지만 KBS는 "사유리의 가정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가족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며 "최근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의 하나로 사유리의 가족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답했다. 방송이 나간 후 공감과 응원의 반응 역시 잇따랐다. 아이가 잠든 틈에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수시로 아이를 들어올리느라 시큰거리는 손목에 보호대를 한 그의 모습은 여느 양육자와 다를 게 없었던 것. 사유리는 "왜 더 일찍 (비혼 출산을) 안 했을까 후회한다"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힘든 부분, 좋은 부분 다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비혼 출산에 대한 반발은 가부장제 아래 공고히 유지돼온 가족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지껏 '왜 애를 안 낳느냐' '이기적이다'라며 많은 여성을 지탄해 왔는데 이제는 낳아도 문제라는 것"이라면서 "결국 사회가 여성에게 아이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있는 가부장제를 원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황 평론가는 "사유리 이전에도 본인 선택으로 싱글맘이 된 경우가 있는데 2005년 황우석 사태로 정자 공여 관련 법이 강화되면서 10여 년의 공백이 생겼다"며 "'아버지 없는 삶을 부여해선 안 된다'는 식의 정상가족 개념은 오래전 격파됐어야 했는데 뒤늦은 감이 있다"고 평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웹드라마 '으랏파파'는 국내 최초의 퀴어 가족 시트콤을 표방한다. 연분홍치마 제공


가족이 뭐고, 아빠가 뭔데? '으랏파파' 속 퀴어 가족

"여보 저 사실 레즈예요 /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요 / 여보 저 사실 게이예요 /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요 / 엄마 저 사실 남자예요 / 한번도 여자인 적 없어요 / 아 우리 가족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가 만들고 부른 '우리 가족 LGBT'의 노랫말이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 노래를 모티브 삼은 '정통 가족 시트콤'이 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유튜브 채널 연분홍TV에 공개한 국내 최초 퀴어 가족 시트콤 '으랏파파'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물학적 여성 3명이 '가족'을 이루는 이야기다. 극 중 중년의 레즈비언 고현미(백현주)는 오갈 데 없는 10대 퀴어 혀크(강다현)와 쌀차비(문혜인)를 거둔다. 생전 처음 보호자가 된 고현미는 혀크에겐 '아빠'다. 실제로도 엄마가 아닌 아빠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게 퀴어가 기본값(디폴트)인 '으랏파파' 세계관 안에서는 자연스럽다. 동시에 비퀴어에겐 대체 가족은 무엇이고, 아빠라는 존재는 뭔지 낯선 질문이 던져진다.

'으랏파파'를 연출한 김일란 감독은 "비퀴어 사회에선 모든 드라마의 기반이 가족인 만큼 가족의 개념을 퀴어링해서 교란시키거나 틈을 벌리거나 새롭게 전유할 수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개념을 완전히 전복하긴 어렵겠지만 그것의 경계를 녹이는 건 중요하다"며 "그런 방식으로 퀴어스러운 가족 개념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권영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