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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베르세르크

입력
2021.05.21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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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만화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겐타로의 부고를 알린 출판사 서신. 트위터 캡처

만화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겐타로의 부고를 알린 출판사 서신. 트위터 캡처

일본 만화가 미우라 겐타로가 6일 별세했다는 갑작스런 소식이 한국 아저씨 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대가의 만화 세계가 꽃을 피워야 할 나이인 55세에 생을 마친 데 대한 안타까움, 걸작 ‘베르세르크’가 결국 완결되지 못했다는 아쉬움, 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만화밖에 몰랐던 그의 노고에 대한 숙연함 때문에 팬들의 상심은 커지고 있다.

□ 1990년대 X세대 문화의 한 축은 일본 만화였다.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을 시작으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배가본드’,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H2’,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등 숱한 작품들이 한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이야 마블과 DC코믹스가 전 세계 대중문화의 주류를 차지하지만 그때만 해도 미국 만화는 한국에서 명함도 못 내밀었다. 일본 만화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부터 수입이 허용됐던 터라 한일 문화 교류의 첨병 역할도 했던 셈이다.

□ 일본 만화 황금기 중에서 미우라 겐타로는 가장 어둡고 잔인한 세계를 그려 호불호가 갈렸다. 대표작 ‘베르세르크’는 서양 중세 시대를 본뜬 가상의 대륙에서 광기어린 검사의 모험과 복수를 그린 다크 판타지물이다. 악령과 괴물이 등장하는 판타지물의 허황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면의 어두운 폭력성과 상처를 밀도 있게 풀어내고 운명과 의지, 우애와 배신 등의 주제를 웅장한 스타일로 다뤄 마니아층을 전율케 했다.

□ 그의 독특한 입지는 비단 이런 주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작품들이 인기에 힘입어 연재를 늘리다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그는 오히려 작품을 더욱 완벽한 경지에 올리는 쪽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면 하나 하나가 극사실주의 그림마냥 치밀한 터치로 그려져 놀라운 완성도를 보였다. 어느 때는 1회 연재 분을 그리는 데 1년이 걸렸다. 1989년부터 연재된 '베르세르크'가 32년째 결말을 보지 못했던 이유다. 덧없는 인기 대신 그가 택한 것은 인생을 건 완벽성이었다. 그 장인 정신에 경탄하면서도 그로 인해 작품 자체가 미완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는 쓰라릴 수밖에 없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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