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의 예사롭지 않은 변화 흐름
기존의 낡은 지역당 이미지 털어내야
여야 넘어 혁신의 새 정치 여는 계기로
변화와 역동성은 원래 진보정파의 덕목이다. 아득한 50년 전에 이미 40대 기수들을 세우고, 가까이는 변방의 노무현을 깜짝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낸 것이 그런 바탕이다. 보수라면 변화의 위험을 무릅쓸 일이 없었다. 웬만큼 낡고 게을러도 든든한 기득권 연대가 있으므로.
그러나 달라졌다. 제1야당에서 보이는 변화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선수(選數)가 계급인 문화에서 초선들이 줄줄이 당대표에 도전장을 던지고, 제대로 선출된 적도 없는 원외 젊은이가 중진들을 앞선다. 더 이상 주류도, 계파도 없다. 전통 보수당에선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다.
그뿐 아니다. 20년 집권론을 함부로 뱉을 만큼 여권의 차기 대선 승리도 뻔해 보였다. 압도적 세력에 더해 인물에서도 훨씬 우위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야권의 자원이 갑자기 풍성해졌다. 윤석열 안철수에 최재형 김동연까지 띄워졌다. 유승민 원희룡 등 당내 중진까지 보태면 여권에 가장 인물이 많았다던 신한국당 9룡 때 못지않은 양감에 무게감이다.
돌연한 변화의 추동력은 유권자 파워의 이동이다. 20대는 고비마다 변혁의 주체였어도 일상 정치의 주류는 늘 다시 5060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렇게 커진 적은 없다. 지난 총선 보선의 판세를 가른 게 이들이었다. 무엇보다 1년 사이 선택의 급반전은 2030이 이념 따위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정치적 노마드 세대임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더 이상 현실정치에 무관심한 미래 세대가 아니라 가장 예민한 정치적 즉응(卽應)세대가 됐다. 놀랍게도 보수정당이 이 흐름을 먼저 낚아챘다.
비교되는 건 현 집권여당이다. 어느새 변화에 둔감한 기득권 집단이 된 때문일 것이다. 정치력보다는 행정능력으로 커온 이재명은 그렇다 쳐도 온건합리로 평가받아온 정세균 이낙연조차 어울리지 않는 전투 모드로 역행하고 있다. 강성친문의 포획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다. 새 지도부가 여기서 당을 빼내지 못하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국민의힘도 아직은 아슬아슬하다. 홍준표가 집요하게 복당을 요구하고, 황교안이 정치활동을 재개하고, 나경원이 당대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강경투쟁 노선에 이념적 경직성, 극우와의 연대 등으로 낡은 보수의 이미지를 형성해온 인물들이다. 개인적으로도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함으로써 정치적 평가가 끝난 이들이다.
어려울 때, 또는 사라질 위기에서 당을 지켰다는 건 공(功)이 아니라 과(過)에 가깝다. 대표 보수정당이 지리멸렬해진들 아예 사라질 리는 없다. 도리어 지도자로서 당을 그 지경으로 몰고 간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더욱이 정치에서 연공서열 주장은 턱도 없다. 젊은 세대를 더 내쫓는 행태다. 역사 앞에서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지지자들에게는 겸허하게 책임지는 모습으로, 특히 이런 국면에선 자중하는 것이 옳다.
당대표를 노리는 중진 태반이 영남지역에 기대는 모습도 여전한 구태다. 지역성과 확장성은 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지금이야 다들 강호인재들에 대한 개방을 약속하지만 지역 정서에 의존하는 체질을 버리지 못하는 한 믿을 게 못된다. 새 정치가 추구해야 하는 건 오직 공정 통합 미래 등의 시대 가치다.
지난 재·보선의 의미는 낡은 산업화·민주화 구도의 폐기임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야당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여야 정파를 넘어 우리 정치사에서 그 의미를 확인하는 전환적 계기가 될 것이다. 변화에 굼떴던 보수정당이라는 점이 여전히 생경하지만, 그래도 지금 그들의 당대표 경선을 기대하며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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