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1952년 이후 변한 현실 고려"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출산 인정한 셈
부부 한정, 미혼부모는 기존 방침 적용
미국 국적의 남성 동성애자 부부가 영국인 대리모를 통해 영국에서 딸을 낳았다면, 아이는 미국인일까 아닐까. 지금까지는 아이가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면 지난한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지만 이제 출생과 동시에 미국인으로 인정받을 전망이다. 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변화한 결혼과 출산 방식을 폭넓게 허용하면서다.
미 국무부는 18일(현지시간) 부부 가운데 한 명이라도 미국 시민권자일 경우 자녀가 해외에서 대리모나 정자 기증 등 '인공생식' 방식을 통해 태어났어도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1952년 이민ㆍ국적법 제정 이후 현대 가족의 현실과 발전된 인공 생식기술(ART)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수정헌법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부모의 국적에 관계없이 미국에서 출생하면 자동으로 미국 국적을 주도록 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 태어난 경우엔 60년 전 제정된 이민법을 적용, 부모와 자녀 간 ‘생물학적 혈연성’이 인정돼야 시민권을 부여한다. 혈연 관계가 아닌 인공생식 출생아는 부모의 출신지와 생물학적 연관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혼인 관계 미국인 부모의 정자와 난자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혼외자’로 간주하되, 자녀의 생물학적 부모가 최소 5년 연속 미국에서 거주한 시민권자여야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까다로운 규정 탓에 외국에서 대리모나 체외 수정 등을 통해 아이를 얻으려는 부부는 적지 않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2015년 결혼한 동성 부부이자 미국 시민인 데릭 마이즈와 조너선 그레그는 2018년 그레그의 정자와 기증받은 난자를 인공 수정해 영국에서 딸 시몬을 얻었다. 그러나 국무부는 시몬을 혼외자 취급하고, 미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생물학적 친부인 그레그가 영국 출생인데다 미국 5년 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리모가 필요 없는 여성 커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ㆍ이탈리아 여성 부부는 2019년 기증받은 정자로 각각 한 명씩 두 자녀를 얻었지만 미 정부가 미국인 엄마의 아이에게만 시민권을 주자 소송을 냈다.
유사한 사례가 빈발하자 인권단체들은 “1950년대 만들어진 법이 21세기 가족 개념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공 임신이 늘고 결혼과 가족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급변하고 있지만 정책은 과거에만 매몰돼 있다는 의미다.
바이든 행정부는 뒤늦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출산을 인정했다. 단 시민권 사기ㆍ남용 위험을 우려해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기존 규정을 계속 적용할 계획이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성(性)소수자 커플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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