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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집 안에 두니 창문으로 추락... 벼랑 끝 장애인 안전 

입력
2021.05.19 11:00
수정
2021.05.19 15:12
6면
0 0

<3> 안전: 하루라도 맘 편히
장애인 특성 맞춘 사고 예방·대응 체제 미비
추락 땐 4배, 화재 땐 5배 사망 비율 높아져
"교육 받은 조력자가 장애인 안전대책 핵심"

편집자주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의젓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 건 가족의 안간힘이다. 국내 장애인 규모가 등록된 인원만 해도 262만 명이니, 이들을 돌보는 가족은 못해도 1,000만 명을 헤아릴 터이다. 장애인 가족의 짐을 속히 덜어주는 것만큼 시급한 국가적 과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발달장애 1급 청소년인 정훈이(가명)가 자택 창문에서 추락했을 당시의 사고 현장과 입원한 정훈이의 모습.

지난해 발달장애 1급 청소년인 정훈이(가명)가 자택 창문에서 추락했을 당시의 사고 현장과 입원한 정훈이의 모습.

1급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정훈이(17·가명)는 지난해 경기도 자택 베란다에서 추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학병원 외래가 막히면서 평소 복용하던 주의력결핍과잉운동장애(ADHD) 관련 약을 타오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집에만 있느라 어쩔 줄 몰라하던 정훈이는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사이 순식간에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층수가 높지 않아 목숨은 건졌지만, 정훈이는 4번 척추에 골절상을 입고 곧바로 인근 병원 응급실에 옮겨졌다.

응급 수술을 받고 입원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정훈이는 어디가 아픈지 묻는 의료진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낯선 환경에 밤마다 물건을 집어던지며 소동을 피웠다. 집 아닌 곳에선 아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엄마는 입원 사흘 만에 의사에게 퇴원하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퇴원 후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정훈이는 복대를 찬 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같은 사고라도 장애인이 더 큰 피해

장애인은 신체적·정신적 한계로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사고를 당하고 더 늦게 구조된다. 2019년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에서 발표한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10만 명당 추락 사망자 비율은 비장애인의 4.1배였다. 사전 인지가 대피에 중요한 화재의 경우, 장애인 사고 피해자의 절반 이상(57.4%)이 숨졌다. 비장애인(12.1%)보다 5배가량 높은 사망 비율이다.

장애인을 위한 사고 예방 및 대응 체계가 미흡한 점도 이들의 피해를 키운다. 지난 1월 새벽 부산 금정구 주택가에서 발생한 화재로 40대 지적장애 남성 A씨가 숨졌다. 당시 A씨는 복지부에서 장애인 가정과 독거노인에게 제공하는 '응급안전알림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활동보조사 없이 홀로 살고 있는데도 "거동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A씨는 사고 당시 소방서에 신고까지 했지만 제때 대피하지 못했고, 다시 전화를 걸어온 현장 출동대원과도 원활히 소통하지 못했다.

당사자 중심 재난안전체계 마련돼야

행정안전부에서 제작한 '장애인 화재인지 교육 방법' 영상 캡처.

행정안전부에서 제작한 '장애인 화재인지 교육 방법' 영상 캡처.

정부는 2017년 마련한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을 통해 장애 특성별 대피 요령을 보급하고 건축물에 따라 대피 시설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A씨가 살았던 후미진 주택가엔 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했을뿐더러 불법 주차 차량이 즐비해 있었다. 또한 A씨 본인은 물론이고 당시 출동했던 소방대원들도 A씨 장애 특성에 맞는 대피 요령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훈이의 경우 중증 발달장애로 한 달에 130시간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집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을 땐 활동보조사가 곁에 없었다. 폭력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모두 정훈이를 기피해 활동보조사가 배정되지 않은 탓이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장애인 안전 대책의 핵심은 '조력자'다. 스스로 대피하기 힘든 장애인을 사고 위험에서 구해줄 수 있는 건 결국 교육 받은 활동보조인, 소방관, 이웃이라는 것이다. 지체장애 당사자이기도 한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코를 막고 몸을 숙이고 계단으로 대피하라는 매뉴얼은 장애인에게 무용지물"이라며 "혼자 살고 있는 장애인이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도 신속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사회복지시설이 아닌 곳에도 적합한 대피로와 대피 시설이 갖춰져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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