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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체벌금지법 안다" 40% 불과... 훈육·학대 구분 모호 

입력
2021.05.20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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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 및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조사

'정인이' 양부모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4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정인이' 양부모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4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정인이 사건’ 등 연이어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들을 계기로 올해 1월 8일 민법 915조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다. 앞으로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체벌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자녀가 학대를 이유로 부모를 고소할 경우, 친권자라도 처벌받을 수 있게 됐다. ‘자녀체벌금지법’을 두고 아동단체는 ‘이제야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며 반기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말 안 듣는 아이를 이제 어떻게 키우지’ 하는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지난달 16~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체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 자녀체벌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잘 안착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아동학대 문제 심각" 74%, 자녀체벌금지법 찬성 74%

응답자 가운데 74%는 아동학대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다. 아동학대 심각성에 대한 높은 공감대는 자녀체벌금지법을 찬성(74%)하는 의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자녀체벌금지법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40%로 아직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자녀체벌금지법 자체를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체벌금지법에 반대하는 이유로 ’훈육을 하다 보면 체벌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응답(58%)이 과반을 넘었다. 국민 대다수가 체벌을 금지하는 법에 동의하지만, 체벌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체벌은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아니다" 56%

훈육을 위한 체벌이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일어나지 않는다‘는 응답이 56%로, ’일어난다‘는 응답(44%)보다 더 높았다. 자녀가 있고 연령대가 높을수록, ’체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현재 자녀가 있는 경우 실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체벌을 타자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일까?

그러나 부모 10명 중 8명은 ‘아이에게 큰 소리를 치거나 고함을 지른 행위’(77%)를 한 적이 있었다. 또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거나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행위’(63%), ‘맨손으로 아이의 손, 발, 엉덩이 등을 때리는 행위’(52%) ‘아이에게 때리겠다고 위협한 행위’(51%), ‘딱딱한 물건으로 아이의 손, 발, 엉덩이 등을 때리는 행위’(41%) 등이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대해 부모 10명 중 7명 이상은 훈육이 아닌 학대라고 인지했다. 학대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은 행위일수록 경험 빈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나 상대적으로 심한 체벌은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에게 애정 표현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학대라는 응답(56%)이 절반에 그쳐 정서적 방임은 학대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높았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상복을 입은 한 시민이 정인이 사진을 닦고 있다. 뉴스1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상복을 입은 한 시민이 정인이 사진을 닦고 있다. 뉴스1


어린 시절 체벌 경험 70%, 체벌의 효과성, 필요성에 공감

부모들은 왜 자신들이 한 행위가 학대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체벌에 대한 경험과 인식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부모이거나 앞으로 부모가 될 이들은 유년 시절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을 받은 적이 70%나 됐다. 그러나 체벌 경험이 있는 집단 10명 중 8명 이상(83%)은 자신이 받은 체벌이 학대가 아니라고 답해, 어린 시절 받은 체벌을 소위 '사랑의 매'로 인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사랑의 매 효과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적절한 체벌은 아이를 가르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64%가 동의하며, 체벌을 하더라도 아이는 바르게 잘 자랄 수 있고(57%), 아이가 잘못할 때는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52%)고 답해, 체벌의 효과성과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체벌 경험 집단, 체벌에 더 관대... 대물림 현상도 나타나

체벌 경험이 있는 집단, 그중에서도 이를 학대로 보지 않는 집단에서 더욱 체벌에 관대한 성향을 보인다. 자신이 체벌을 받았지만 잘 자라왔다는 자기 경험을 통해 체벌의 부작용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고 체벌을 아이 훈육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 이러한 인식은 체벌의 대물림 현상으로도 이어진다. 체벌 경험이 있는 집단에서 체벌 경험이 없는 집단에 비해 체벌 행위를 더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맨손이나 딱딱한 물건으로 아이의 손, 발, 엉덩이를 때리거나 아이에게 때리겠다고 위협하는 행동들은 체벌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 비해 2배 이상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자신들이 한 체벌 행위가 학대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체벌의 효과성과 필요성에 공감하며, 체벌을 대물림하고 있는 혼돈의 상황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훈육과 학대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 없어

체벌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떤 체벌이 학대인지 훈육인지 구분 짓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이 있고(59%), 고의성이 없는(51%) 체벌은 ‘훈육’이라는 시각이 약간 우세하다. 그러나 체벌의 빈도가 적어도(57%), 체벌의 강도가 약해도(52%) 학대라는 응답이 조금 높다. 목적의 정당성 차원 외에는 학대와 훈육을 구분 짓는 명확한 잣대가 없어 보인다.

자녀 체벌 민법개정 찬반 의견. 경기도교육청 제공

자녀 체벌 민법개정 찬반 의견. 경기도교육청 제공


'남의 가정 일'이라는 생각에 신고 꺼려

그러나 체벌의 목적이 아이 잘못을 교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훈육이라는 의견이 높다는 결과는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 준다. 실제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해자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이라는 변명이다. 실제 신고의무자들이 아동학대 신고를 꺼리게 되는 이유로도 ‘남의 가정 일이고 부모의 양육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36%)’을 손꼽았다. 대부분 아이를 심하게 혼내는 소리와 울음소리를 들어도 남의 가정사, 훈육 방식이라는 이유로 신고가 어려운 현실을 고려한 해법이 필요하다.


체벌 관련 혼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부모 교육 필요

이번 조사에선 아동학대 심각성과 체벌 금지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체벌 행위 대부분을 학대로 인지하면서도, 본인의 체벌 경험을 통해 자녀들에게 체벌을 대물림하고 있는 우리의 양가적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녀체벌금지법을 일상생활에 적용할 경우 생기는 혼란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한 대도 때리면 안 되는지‘, ’손바닥을 때리는 것도 학대로 봐야 하는지‘, ’남의 집 일에 내가 개입해서 신고해도 되는지‘ 등 체벌과 학대에 관한 여러 질문과 혼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시급하다.

또한 가정 내 아동학대 원인으로 훈육과 학대의 차이에 대한 무지(36%), 양육지식 및 기술의 부족(30%), 부모 역할에 대한 무지(28%)를 지적하고 있어, 부모 교육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8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영·유아 부모 중 부모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는 37%에 불과했다. 자녀체벌금지법이 실행된다고 체벌을 경험하고 자란 부모들이 갑자기 변화되기는 어렵다. 자녀체벌금지법은 부모교육을 통해 올바른 훈육 방식에 대한 학습과 인식개선이 함께 이루어질 때 아동학대를 근절시키는 실효성 있는 법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혜민 한국리서치 여론 2본부 부장

박진우 한국리서치 여론 2본부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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