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들의 일과후 휴대폰 사용이 군대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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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들의 일과후 휴대폰 사용이 군대를 뒤흔들었다

입력
2021.05.17 17:00
수정
2021.05.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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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 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어버이날이 끼어있다고 주말 사이에 사흘 연속 전화를 했더라고요. 일과가 끝나면 유튜브를 보느라 후임들 괴롭힐 시간도 없다고 농담을 하네요. 어쨌든 부모로서는 자식이 어떻게 지내는지 늘 확인할 수 있어 안심입니다.”

경기도 북부의 한 육군 사단에서 11개월째 군 복무 중인 아들(21)을 둔 김정렴(가명ㆍ51ㆍ공무원)씨는 지난해부터 군에서 전면적으로 사병들의 휴대폰 사용을 허용한 일이 반갑다. 남들 다 가는 군대라지만 막상 아들이 입대할 때 걱정이 컸는데 지금은 매일 아들이 어떻게 군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김씨는 “군에 간 아들에게 편지도 받아보는 게 부모의 작은 보람인데 휴대폰 사용으로 그런 기회가 사라진 게 굳이 아쉽다면 아쉽다”고 웃었다.

2014년 4월 선임병들의 집단폭행으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 이후 가혹행위 등 병영 악습 근절 여론이 높아지면서 2018년 4월 시범 도입되기 시작, 지난해 7월 전군에 허용된 정책이 일과 후 사병 휴대폰 사용이다. 군과 정치권 일각의 강한 반대가 있었지만 사병 기본권의 신장, 병영문화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정책으로 평가된다. 반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병들의 내부 고발로 알려지는 부실급식, 불결한 위생상태 등 일부 부대의 열악한 복지 여건은 사병의 기본권이 존중되는 병영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갈 길이 먼 우리 군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병 휴대폰 사용...병영문화 패러다임의 전환

사병들이 생활관에서 스마트폰으로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육군 제공

해병대 연평부대에서 복무 중인 최동익(21) 일병은 베트남에서 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홀로 귀국해 대학에 들어간 뒤 지난해 입대했다. 최 일병은 일과 중에는 부대의 전산망을 관리하는 네트워크병으로 복무하고 있는데 일과가 끝나면 1주일에 두세 번은 가족을 이어주는 ‘네트워크’ 역할을 한다. 호찌민에 계신 어머니(52)와 경기 안산에서 홀로 살고 있는 외할머니(82) 사이에서 안부를 전하는 것의 그의 업무. 최 일병이 국제전화 거는 법이 서툰 2G폰 사용자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외할머니는 시시콜콜한 어머니 안부를 묻는다. 할머니와 통화를 끝낸 그가 호찌민으로 보이스톡을 하면 이번엔 어머니 차례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거동은 잘 하시냐, 노인정의 다른 할머니들하고 사이좋게 지내시냐” 같은 질문을 쏟아낸다. 접적(接敵)지역 도서 부대에서의 복무는 예전 같으면 단절감ㆍ고립감을 가져왔겠지만 최 일병은 요즘은 군 생활관에서 휴대폰으로 각국에 흩어진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는 가교 노릇을 한다.

대구 공군11전투비행단의 박민재(21) 상병은 1주일에 두세 번은 일과 후 휴대폰으로 전국 각 비행단에서 복무 중인 동기생들과 단체 채팅을 하거나 정부 공모전과 관련된 줌(ZOOM) 회의를 한다. 창업에 관심이 많은 그는 복무 중 여러 정부 부처에서 개최한 공모전들에 제안서를 내 수차례 입상을 했다. 교육 공공데이터 활용, 불법복제 해소 같은 정책 제안서 등을 제출해 상금도 받았고 휴가 때 학교 후배들을 위해 기부도 했다. 박 상병은 평일 일과 후에는 유튜브로 창업을 위한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주말에는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거나 독서앱 밀리의 서재를 통해 소설책을 빌려본다.

사병에게 휴대폰 사용이 허용되면서 병영에서 개인생활이 존중되는 ‘병영 개인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군 기강 저하, 보안 문제, 부대원 일체감 하락 같은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제도 시행 이후 군의 투명화, 사병 인권의 향상 등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게 군의 평가다. 사병 휴대폰 사용이 시범 실시된 2019년 4월과 전면 도입을 앞둔 지난해 2월 이뤄진 한국국방연구원의 사병인식도 조사에선 모든 면에서 긍정 평가가 높아졌다. 병ㆍ간부 소통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는 67.4%에서 88.6%로, 부대단합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는 73.5%에서 89.2%로, 전투력 향상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는 68.6%에서 87.4%로 높아졌다.

군내 사고(형사입건 기준) 건수는 6,066건(2019년)에서 지난해 5,493건으로, 같은 기간 병 자살자도 27건에서 15건으로 감소했다. 휴대폰 사용에 따른 고립감 해소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가혹행위와 같은 악습을 줄이고 있다고 군은 판단하고 있다. 휴대폰 통화를 허용한 이후 사병들의 심리를 관리하는 책임이 가족, 친구들에게 분산되며 간부들의 부담이 줄어든 면도 있다. 2003년에 임관한 해군 2함대 정완희(41ㆍ신성함장) 중령은 “병사들이 사회와 소통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이전보다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찾은 게 느껴진다”며 “다만 병사들이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전우애 함양이 어려워질까봐 단체 체육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간 사병 휴대폰 사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에 훈련병들의 휴대폰 사용 금지가 위헌적이라며 사용하게 해달라는 진정도 냈다.

공군 박민재 상병이 휴대폰으로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공군 제공


잇따르는 SNS 병영 현실 폭로…휴대폰 사용으로 가속화

군의 부실배식을 고발하는 SNS게시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캡처

‘(격리를 위해) 처음 도착했을 때 화장실은 정말 더러운 이동식 화장실만 2칸 있었습니다. 생활관 안에는 더러운 먼지, 분진가루, 각종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 침상 위와 바닥에서 굴러다녔습니다. 없던 병도 생길 듯했습니다.’(육군 1사단 예하부대 병사 제보), ‘화장실에서 씻을 때에는 항상 신발을 신고 까치발을 들어 최소한의 부위만을 씻을 수 있었습니다. 용수철이 다 망가져 잘 때마다 허리가 너무 아픈 침대, 이곳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건물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육군 25사단 격리시설 관련 제보), ‘39사단 조식 메뉴입니다. 국은 똥국입니다. 김 없습니다. 노란반찬은 계란찜입니다. 정말 억울해서라도 이렇게 제보합니다.’(육군 39사단 부실 배식 관련 제보)

지난 한 달 사이에 페이스북 홈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에 올라온 제보들이다. 육대전 홈페이지에는 휴가 복귀 후 격리된 사병들에 대한 부실 배식, 훈련병들의 위생에 대한 무관심, 장병들에 대한 간부들의 위법한 지시(갑질), 가혹행위 등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일 장병급식비 인상, 익명 고발이 가능한 앱 운영 등 대책을 내놨을 정도로 반향이 크다. 팔로워가 15만 명을 넘을 정도이고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 군에서는 ‘육대전 게시글 하나 하나에 군이 흔들린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사병들의 휴대폰 사용이 자유로워지면서 SNS를 통한 이 같은 내부 폭로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는 ‘장병 인권 및 복무 여건의 획기적 개선’을 100대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사병봉급 인상, 군 급식 시스템 개선을 통한 급식 질 개선 추진 방안 등을 제시했다. 사병복지와 기본권 확립에 상당한 관심을 쏟아왔으나 보급의 기본인 사병 배식에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체 국방 예산(2021년 기준 52조8,000억 원) 중 무기구입 비용인 ‘방위력개선비(17조 원)’보다 인건비, 급식ㆍ피복비 등 ‘전력운영비(35조8,000억 원)’의 비중이 더 크다. 올해 예산 인상률도 전력운영비가 높지만 사병들의 군내 의식주 점수는 높지 않다. 예컨대 군대에서 제공하는 식사 만족도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조사(2019년)에 따르면 2005년 56.5%였던 ‘만족한다’는 의견은 2019년 35.6%로 크게 낮아졌다.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던 병사 중 40.6%가 음식의 질이 낮다, 38.6%가 맛이 없다고 응답했다. 군의 1인당 기본급식비(8,790원)가 고등학생 급식비(1만870원)의 80% 수준일 만큼 군이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결과다.

간부들 차별 인식 바뀌어야 사병 기본권 개선 가능

열악한 부대 내 샤워실을 고발한 사진. 육대전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들은 예산 부족뿐 아니라 사병과 장교 간 차별적 문화, 사병들의 복지에 대한 간부들의 무관심 등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신세대 병사들의 높아진 권리의식, 인권감수성을 과거 군대 문화에 젖은 군 지휘관과 간부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을 지냈던 이남우 국가보훈처 차장은 “사병 복지 정책이 강화되면서 심심찮게 들었던 이야기가 초급 간부 복지에도 신경을 쓰라는 얘기였다”면서 “우리 군에선 아직 간부와 병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군 법무관 출신인 강석민 변호사는 “훈련병에게 열흘 가까이 샤워를 시키지 않았던 일이 단적인 사례"라며 "감염병 예방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병들의 고충은 생각하지 않고 군 간부들이 편의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병복지의 질이 간부들의 관심도에 따라 편차가 큰 점도 문제다. 실제로 육대전 홈페이지에는 영외 식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배식에 대한 제보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초급 간부들이 노력을 많이 한 부대는 배식이 제대로 나오고, 보통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부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군수의 기본인 배식부터 초급 간부들의 노력 여하에 의존한다면 다른 사병 복지 분야에서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믿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김광식 한국국방연구원 병영정책연구실 책임연구위원은 “간부 인사평정을 할 때 부대원들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능력만 강조하지 말고 병사들이 건강하게 생활하도록 부대관리를 잘하는 역량에 대한 평가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군 인권과 사병들의 복지와 기본권 정책을 수립할 때 군이 외부 시민단체, 전문가들과 협업을 강화하는 등 민주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긴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방부가 정책결정을 위해 주관하는 행정기관위원회는 20개로 다른 정부부처(보건복지부 35개, 교육부 33개 등)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사안보 전략을 제외한 정책분야에 대해서는 군이 외부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어야 한다”며 “평상시 외부와 소통을 안 하다가 군내 문제가 발생하면 여론의 힘에 떠밀리듯 개선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결코 높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병사 인권보장 취약요소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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