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두면 쓰레기 골방서 굶주리는데… 요양 신청은 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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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두면 쓰레기 골방서 굶주리는데… 요양 신청은 거부됐다

입력
2021.05.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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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노인, 열악한 독거생활 3년 만에 구조
요양보호사 도움 필요해 등급 신청했지만 
심사 담당자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

경증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조형섭씨가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의 한 이웃집에 앉아 요양 등급이 나오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조씨는 손가락이 온전치 않고 왼눈이 실명된 데다 글도 몰라 홀로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조씨가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요양 등급을 부여하지 않았다. 최은서 기자

서울 동작구의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다세대 주택. 고개를 숙여야 할 만큼 천장이 낮은 1층 복도를 따라가다가 작은 문을 여니 1평짜리 방이 있었다. 쓰레기 더미와 흙모래가 엉긴 공간은 용도가 가늠되지 않았다. 가스렌지와 싱크대는 찌든 때와 곰팡이로 뒤덮였고, 찬장에는 손톱만 한 바퀴벌레 알집이 다닥다닥했다. 이곳은 경증 지체장애를 가진 조형섭(70)씨가 불과 수개월 전까지 살던 '집'이었다.

조씨는 여기서 3년을 홀로 지냈다. 쓰레기를 밀어낸 두 뼘 남짓한 바닥에서 눕고 앉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왼손과 왼눈이 온전치 않아 복지수당에 의존해 살다 보니 소주 한 병과 라면 한 봉지로 하루 끼니를 때우는 일이 허다했다.

조씨 혼자서는 도저히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사회복지사가 노인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단번에 거절 당했다. 현장에선 당국이 형식적 판정에 치우쳐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쓰레기더미 속 3년 독거… 체중 40㎏도 안돼

조형섭씨가 생활할 당시 단칸방의 모습. 밥솥 앞에 앉을 공간을 마련해 두고 이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더미 속에서 생활했다. 김재영 사회복지사 제공

23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조씨는 젊은 시절 서울 영등포구의 석유풍로 공장에서 일하다가 왼손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지체장애 6급 판정을 받은 조씨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힘든 처지가 됐다. 한때 고물상 일로 하루 1만 원씩 월 30만 원을 벌기도 했지만, 복지수당이 번 만큼 깎여 지급되는 걸 보고 그마저 관뒀다. 설상가상 몇 년 전엔 왼쪽 눈 시력을 잃었고 심장 수술도 받았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들과 연락이 끊긴 터라 평생 독신인 조씨는 스스로를 돌볼 수도 돌볼 사람을 찾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키가 160㎝ 남짓한 조씨는 체중이 40㎏도 안 될 만큼 영양 상태가 나쁘다. 그나마 매주 목요일 장애인복지관에서 두 끼 분량의 도시락을 타오지만 치아가 전혀 없어 제대로 먹을 수 없다. 궁여지책으로 도시락에 든 밥과 반찬을 모두 밥솥에 넣고 끓여 죽을 만들지만, 맛있을 리가 없으니 몇 숟갈 들지 못하고 포기하기 일쑤다. 조씨 이웃으로부터 사정을 전해 듣고 조씨 집을 찾아갔던 동작구청 소속 김재영 복지사가 그를 구조하듯 자기집에 데려와 돌보고 있다.

장애 활동지원 못 받았는데… 요양 대상서도 제외

조형섭씨가 지난 13일 자신이 수개월 전까지 살던 단칸방을 다시 찾아 둘러보고 있다. 지금은 방이 정리된 상태로,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다. 최은서 기자

현재 조씨가 받고 있는 복지 혜택은 기초생활급여와 장애급여를 합친 월 70만 원이 전부다. 조씨에게 가장 필요할 법한 활동지원이나 재가급여 서비스는 받아본 적이 없다. 활동지원은 장애인에게 활동·목욕·간호를 도와줄 인력을 보내주는 제도이고, 재가급여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의 일환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요양보호사가 방문해 신체활동·가사활동을 돕는 제도다.

예전 장애등급 기준으로 조씨는 가장 경증인 6급 장애인이어서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 자격(1~3급)이 없었다. 2019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활동지원을 받던 장애인 중 만 65세 이상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자로 자동 편입됐지만 조씨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았다. 조씨가 보조 인력을 지원 받으려면 직접 건강보험공단에 심사를 신청하고 요양 등급을 부여 받아야 하지만, 글을 모르는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애인 복지를 노인 복지로 연계하는 과정에서 소외를 겪는 건 비단 조씨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이모(66)씨는 20대에 손가락이 절단돼 장애 5등급으로 40여 년을 살았다. 지난해 만 65세가 되고도 한동안 요양 등급 신청 자격이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았다. 이씨는 "장애를 가지고 어렵게 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늙어서도 나라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는 건 순식간"이라고 토로했다.

"걸을 수 있네요" 요양 등급 신청 퇴짜

김 복지사는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조씨를 대신해 요양 등급을 신청했다. 그런데 김 복지사에 따르면 심사를 나온 공단 관계자는 조씨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습을 보더니 "걸으시네"라고 반응했다. 이어 김 복지사에게 "못 걸어야 등급 나오는 거 아시죠? 저런 사람들 다 등급 주면 우리나라 세금 어떻게 다 내요"라는 말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공단은 대외적으로 '일생생활에서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요양 등급 산정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당사자와 공단이 상정하는 '자립'의 기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공단 관계자는 "최소한의 인지 능력이 있으면 자립 상태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가 설명한 최근 심사 사례에 따르면, 걷지 못해 방바닥에 엉덩이를 끌면서 화장실에 가는 105세 노인도 '대소변은 가릴 줄 안다'는 이유로 요양 등급 신청에서 탈락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가 요양 등급 매기기에 매몰돼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등급제에 입각해 복지 서비스를 양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라며 "지방자치단체에 노인요양 업무를 위임해 현장 공무원들이 요양 수요를 보다 질적으로 점검하도록 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복지사는 "하루 몇 시간이라도 조씨를 돌봐줄 요양사 한 명만 있으면 조씨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조씨가, 요양사가 오면 좋겠냐는 기자의 물음에 어눌한 발음으로 천천히 답했다. "좋기야 좋겠지."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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