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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인 줄 알았는데'…장난 아니게 몸값 비싸진 '밈(m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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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인 줄 알았는데'…장난 아니게 몸값 비싸진 '밈(meme)'

입력
2021.05.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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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시장 급성장과 함께 유명 '짤' 수억 원 판매
"현대 미술 '팝 아트'로서 가치 인정받은 것" 분석도
"NFT 등장으로 물리적·디지털 예술 경계 허물어져"

최근 대체 불가능 토큰(NFT)을 통해 고가에 팔린 온라인 '밈' 원본 이미지.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재앙의 소녀(Disaster Girl)', '집착증 여친(Overly Attached Girlfriend)', '성공한 아이(Success Kid), '운 없는 브라이언(Bad Luck Brian), '냥캣(Nyan Cat)', '그럼피 캣(Grumpy Cat)'.

최근 대체 불가능 토큰(NFT)을 통해 고가에 팔린 온라인 '밈' 원본 이미지.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재앙의 소녀(Disaster Girl)', '집착증 여친(Overly Attached Girlfriend)', '성공한 아이(Success Kid), '운 없는 브라이언(Bad Luck Brian), '냥캣(Nyan Cat)', '그럼피 캣(Grumpy Cat)'.

새로운 골드러시인가, 우연한 행운인가.

미국에서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의 소재로 활용됐던 사진 원본이 잇따라 온라인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팔려 나가고 있다.

캡처한 영상의 한 장면이나 사진을 합성·변형해 다른 의미로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 밈은 2010년대 이후 주요 인터넷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흔히 '짤'로 표현한다.

밈은 불특정 다수가 원본을 변형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예술과는 거리가 먼 단순 오락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밈의 원본이 10년 이상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셈이다.

최근 약 50만 달러(약 5억6,000만 원)에 팔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주택가 화재 현장 앞 소녀의 사진이 대표적인 예다. 2005년에 찍힌 이 사진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소녀의 묘한 미소 때문에 각종 재난 현장 사진에 합성돼 온라인에 퍼지면서 '재앙의 소녀'라는 제목까지 붙었다.

사진의 주인공 조이 로스(21)는 지난해 끊이지 않았던 재난 상황으로 재조명된 자신의 사진에 대해 "2020년을 위한 완벽한 밈"이라며 판매에 나서게 된 배경을 밝혔다.

로스의 사진이 거래될 수 있었던 것은 블록체인 기술(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장부에 거래 내용을 투명하게 기록해 여러 대의 컴퓨터에 이를 복제·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을 기반으로 한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의 등장 덕분이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하는 일종의 '원본 증명서'다. 작가와 소유권, 판매 이력 등의 정보가 담긴다.

'재앙의 소녀'는 4월 NFT 마켓플레이스 파운데이션에서 180이더에 낙찰됐다. 이더는 가상화폐 이더리움의 단위로, 당시 180이더는 약 50만 달러(14일 기준으로는 약 70만 달러)로 환산됐다.

이 거래 외에도 앞서 여러 인지도 높은 온라인 밈이 거액에 팔려 나갔다.

4월 초 '집착증 여친((Overly Attached Girlfriend)'으로 불리는 레이나 모리스의 사진은 당시 시세로 약 40만 달러(200이더)에 팔렸다. 여러 온라인 밈으로 변주돼 온 우주를 나는 고양이 캐릭터 '냥캣'은 2월 중순 당시 시세로 약 59만 달러(300이더)에 판매됐다.

이와 관련해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쿼라는 9일(현지시간) '재앙의 소녀'를 비롯한 온라인 밈 원본 단 7개가 약 177만 달러(약 20억 원)에 팔렸다고 전했다.

더 많은 복제가 행복한 NFT 시대 수집가들

비플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클 윈켈만이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만든 동영상 작품 '크로스로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모형이 패배 후 알몸으로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올해 초 대체 불가능 토큰(NFT)을 통해 660만 달러에 팔렸다. 코로스로드 영상 캡처

비플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클 윈켈만이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만든 동영상 작품 '크로스로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모형이 패배 후 알몸으로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올해 초 대체 불가능 토큰(NFT)을 통해 660만 달러에 팔렸다. 코로스로드 영상 캡처

그렇다면 NFT 수집가들은 왜 온라인에서 쉽게 내려받을 수 있는 밈에 이렇게 큰돈을 쓰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소유권의 세대교체'로 설명한다.

영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그룹 WOCA를 만든 스패로 리드는 "디지털 음원을 구입하고, 비디오 게임에서 아이템을 거래하며 성장해 온 지금의 20대 초반은 소유의 개념이 다르다"라며 "그들에게 물리적 소유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고 일간 텔레그래프를 통해 밝혔다.

명화를 구입해 저택에 걸었던 과거와 달리 데스크톱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 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디지털 작품을 즐기는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다.

또 '밈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벤 래시스는 "밈을 현대 미술 팝 아트로 보는 수집가들이 있다고 믿는다"며 "과거에 밈으로 많이 소비됐다 하더라도 그 이미지는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높게 평가받을 것으로 믿는 이들이 있다"고 미 온라인 매체 마이크닷컴에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NFT의 등장과 함께 기존 예술과 디지털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NFT 수집가들은 공유할수록 값어치가 올라가는 디지털 예술의 특성에 주목한다는 분석이다.

기술 과학 분야 전문 저널리스트 클라이브 톰슨은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NFT 수집가들은 작가·예술 작품과의 유대 관계를 증명하는 증명서를 구입하는 것"이라며 "아무도 다른 사람들이 디지털 픽셀(이미지 단위)을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만나 본 NFT 수집가들은 자신이 소장한 예술 작품이 인터넷에 널리 복제되는 것을 기쁘게 여긴다"라며 "수백만 명이 디지털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작품의 소유 가치는 더 커지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고가에 팔린 NFT 변환 주요 '밈(meme)' (단위: 미 달러)
자료: 스태티스타


일론 머스크는 밈 도용자?… 밈 세계에도 번진 '머스크 리스크'

마일스 클리라는 트위터 이용자가 자신이 계정에 올린 밈과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을 비교하며 "머스크가 내 밈을 훔친 건가?"라고 적었다. 트위터 캡처

마일스 클리라는 트위터 이용자가 자신이 계정에 올린 밈과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을 비교하며 "머스크가 내 밈을 훔친 건가?"라고 적었다. 트위터 캡처

"온라인 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확실히 과거와 달라졌다. 이전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11일 뉴욕 매거진이 전한 한 온라인 콘텐츠 창작자의 말이다.

밈이 고액에 팔리는 '밈 경제'가 가능해진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밈의 위상 변화다. 밈은 10년 세월을 거치면서 오락거리 이상의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됐다.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도구로 떠오르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밈을 활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가상화폐 시장을 뒤흔든 '일론 머스크 리스크'가 난데없이 밈 세계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전기차업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머스크는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과 도지코인 등 가상화폐 관련 발언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며 시장을 뒤흔들었다. 그런 머스크가 트위터와 관련해 다른 사람의 밈을 자주 도용한다는 비판에도 함께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NYT는 최근 '머스크는 밈 배포자인가, 밈 도용자인가'라는 기사에서 "원본을 알지 못한 채 퍼 나르는 게 밈의 특성이라지만 최근 코미디언과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밈은 중요한 지식재산이 되고 있다"며 머스크를 향한 비판 목소리를 전했다.

NYT에 따르면 최근 다른 사람의 밈으로 수익을 올린 SNS 계정이 역풍을 맞으면서 기업이 마케팅 목적으로 밈을 사용할 시에는 소유자에게 사용 허가를 구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밈을 현대 미술로 칭하고 '밈 지원인'을 자처하며 주기적으로 다양한 밈을 SNS를 통해 공유하는 머스크가 정작 원작자에 대한 언급은 쏙 빼놓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머스크는 밈 기반 가상화폐인 도지코인 광풍을 이끌기도 했다. 도지코인이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급등락을 반복하며 가상화폐 시장의 불안전성을 대표하는 코인으로 지목되면서 밈 문화가 금융 투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자상거래 대기업도 뛰어든 NFT 시장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이베이 본사. 새너제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이베이 본사. 새너제이=로이터 연합뉴스

블록체인 활동의 전력 소비 문제와 이에 따른 NFT의 생태적 비용 문제를 거론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이 같은 밈의 수익화는 당분간 더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 이베이가 최근 약관에 NFT 판매 관련 내용을 추가했다고 밝혀 일반 대중의 NFT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일반 전자상거래 기업이 NFT 거래를 허용하는 것은 이베이가 처음이다.

조던 스위트남 이베이 북미 수석부사장은 "기술 발전으로 수집가들의 경험이 달라지고 있다"며 "늘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사고파는 목적지였던 이베이는 물리적이든 디지털적이든 수집가들의 모든 취향을 충족시키는 최종 목적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베이는 우선 검증된 일부 판매자들의 NFT 예술품 판매를 허용하고 몇 달 안에 전체 이용자들이 NFT를 사고팔 수 있는 기능을 선보일 계획이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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