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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가게 팔게 하고 뒷돈… 자영업자 울리는 '불법 브로커' 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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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거짓말로 가게 팔게 하고 뒷돈… 자영업자 울리는 '불법 브로커' 활개

입력
2021.05.13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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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약국 생긴다" 속여 약국 팔게한 50대 입건
코로나로 매출 떨어진 자영업자 심리 악용하기도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솜방망이 처벌 "제도 개선을"

서울 중랑경찰서가 사기 혐의를 받는 브로커 A씨를 수사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랑경찰서 내부 모습. 뉴스1

서울 중랑경찰서가 사기 혐의를 받는 브로커 A씨를 수사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랑경찰서 내부 모습. 뉴스1

자영업자에게 허위 사실을 흘려 점포를 매도하게 하고, 매수자에게 중개수수료 조로 뒷돈을 챙긴 브로커가 입건됐다. 시장에선 무자격 브로커의 불법 중개 행위가 빈발해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철저한 단속과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중랑경찰서는 12일 50대 브로커 A씨를 사기,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수년 동안 약국 매물을 중개해왔지만 실제로는 공인중개사 자격이 없다.

중개수수료 노리고 거짓말로 점포 매도 유도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서울 한 약국 모습. 이한호 기자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서울 한 약국 모습. 이한호 기자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7월 평소 알고 지내던 약사를 찾아 인근에 경쟁 약국이 입점한다며 약국 매도를 권유했다. 이 과정에서 약국 입점을 추진하는 컨설팅업체 명칭 또는 입점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대가 없이 돕는 것이니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등 선의를 강조하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피해자가 결심하자 매매는 일사천리였다. 또 다른 브로커 B씨가 약국을 매수할 약사를 데려오면서 하루 만에 계약이 성사됐다. 당초 언급된 시기에 경쟁 약국이 들어서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피해자에게 A씨는 "개업 시기가 미뤄졌다" "가계약을 했다" "잔금을 치렀다" 등 계속된 변명으로 대응했다. 약국을 처분한 뒤 여러 달 무직자로 지내며 생활고를 겪던 피해자는 결국 A씨를 고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경쟁 약국이 들어설 거란 정보는 거짓이었다. A씨는 "약사(피해자)를 도와주려고 했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A씨가 중개수수료를 노려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동업 관계인 B씨에게 매수인에게 받은 중개수수료 1,000만 원 중 절반을 받아 챙겼고, 피해자에게도 100만 원의 수고비를 요구했다. 수사를 받게 된 뒤엔 피해자에게 수십 번 전화를 걸어 고소 취하를 종용하며 협박까지 했다.

코로나로 상심한 자영업자 심리 악용도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자영업계나 공인중개업계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없이 자영업자를 상대로 점포 입점이나 매매에 관여해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C씨는 지난해 3월 경기 성남시에서 가게를 인수하려다 자칭 '컨설팅업체'가 제공한 잘못된 정보에 속아 계약금 일부를 날렸다. 업체로부터 상가를 소개받고 계약금 1,000만 원까지 입금했지만, C씨는 해당 장소가 매장을 운영하기에 부적절한 구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업체에서 제공한 평면도가 상가 분양 전 자료여서 실제 평면도와 달랐던 것이다. C씨는 업체 과실이라며 계약 해지를 요구했지만 업체는 계약금을 절반만 돌려줬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하락한 자영업자의 초조한 심리를 악용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자영업계에 따르면 업주에게 높은 권리금을 제시하며 접근해 점포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한 다음 권리금을 지속적으로 깎아 결국 헐값에 가게를 넘기게 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 브로커 관리·감독 사각지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경. 협회 제공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경. 협회 제공

법조계에서는 거짓말로 피해자가 약국을 처분하게 한 A씨의 행위는 명백한 사기라고 보는 분위기다. 서초동 소재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기망을 통해 피해 약사의 재산인 약국을 처분하게 하고, 제3자인 매수자에게 재산상 이득을 준 것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를 등치는 불법 브로커가 횡행하고 있지만 처벌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적발 자체가 어렵고 고소·고발을 하더라도 관련법에 따라 피의자가 불법 중개를 여러 차례 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 탓이다.

단속 주체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공인중개사는 시·군·구 등 관할 지자체가 단속 권한을 갖고 있지만, 브로커는 사실상 일반인이라 지자체가 단속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수사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적발이 되더라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다 보니 불법 브로커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무등록 중개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 형량은 대부분 소액의 벌금형에 불과하다"며 "적발과 처벌 모두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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