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농지 투기 의혹을 취재하며 접촉한 고위공직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해명은 법을 어긴 것은 아니란 말이었다. 한국일보는 한 달 동안 '농지에 빠진 공복들'을 취재하며 주거·상업·공업지역 내에 농지를 사들인 공직자와 그 가족들을 셀 수 없이 확인했다. 그들에겐 농지취득자격증명서가 필요 없다. 농지법이 예외를 허용했기 때문에, 그 땅엔 호텔도 지을 수 있다. 상업지역에 포함되는 농지는 다른 농지와 달리 봐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심각한 문제는 고위공직자가 앞장서서 법에 있는 예외조항을 자신과 가문의 재산증식에 거리낌없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농지를 취득 목적과 다르게 이용해도 빠져 나갈 구멍이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농지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으면 처분토록 규정했지만, 선거로 공직에 취임한 자의 농지는 처분 대상에서 빠진다. 정당한 사유 없이 휴경하는 농지도 처분해야 하지만 선거로 당선된 공직자는 역시 예외다. 농지 소유자는 원칙적으로 임대할 수 없지만 선거에 따른 공직 취임자는 법조문에 적힌 '원칙'에서 빠질 수 있다.
취재 중 만난 선출직 공직자 대다수는 예외를 원칙으로 거론하며 "농지를 매입해 휴경하거나 임대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취재팀이 전국에 걸쳐 5,680㎞를 돌아다녔던 이유도 고위공직자들의 이런 인식이 멀쩡한 농지를 얼마나 훼손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고위공직자의 농지 관련 서류를 얻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한국일보 분석 결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재산을 공개한 고위공직자(1,885명) 중 절반(45.1%)에 가까운 852명이 여의도 면적 1.4배 규모인 농지(3,778개 필지)를 갖고 있었다. 3,778개 필지 분석을 위해 전국 209곳 기초자치단체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이 중 50곳은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관보에 이미 공개된 재산이건만, '논밭에 상추를 심었다'는 사실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문서보존기간이 지나 서류가 파기된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정작 담당 공무원은 보존기간이 몇 년인지도 잘 몰랐다.
고위공직자 농지 소유 실태를 취재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비(非)농업인으로 볼 수 있는 '부재지주'가 부지기수였다는 사실이다. 거주지에서 300㎞나 떨어진 곳에서 '자기 노동력'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한 도의원도 있었다. 부재지주가 농지를 갖는 순간 그 땅은 경작지가 아니다. 손해 보면 안 되는 자산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땅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지주의 상식이지, 공직자의 상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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