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수원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엔 ‘잔디 전문가’들이 모였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잔디환경연구소 관계자 4명은 다양한 장비를 동원, 4㎠당 잔디 개체 수를 따지는 밀도를 비롯해 뿌리길이, 색상, 토양수분, 피복률, 병충해 감염 등을 면밀히 조사했다. 이날을 끝으로 22개 구장의 잔디 상태 점검이 마무리 됐다. 홍범석 책임연구원은 “수원월드컵경기장도 문제점이 있지만 다른 구장들에 비하면 그나마 잔디가 양호한 상태”라며 “각 구장의 복잡한 문제점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프로축구 K리그를 치르는 22개 경기장이 ‘잔디 건강검진’을 마쳤다. 연구소에 따르면 병충해와 잡초를 포함한 지상부 관련 6개 항목과 토양부 18개 항목(물리성 6가지ㆍ화학성 12가지)을 따진다. 최근 수년 사이 이상 기후 등으로 잔디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경기’라는 상품의 질도 함께 떨어졌는데, 이 잔디를 개선하겠다는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디딘 셈이다. 물론 ‘논바닥’을 연상케 하는 구장이 점점 늘어 선수 부상 우려까지 커지면서 구장들마다 개별적인 진단을 펼친 적은 있다. 하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전문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 구장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펼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구장 대부분이 K리그 구단 소유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또는 산하 공단들이 운영하는 터라 구단과 운영주체 간의 견해 차가 크고, 구장별 잔디 관리 여건이 천차만별이다. 연맹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고 제대로 된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이번 ‘양탄자 잔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맹 관계자는 “잔디 생육을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관리 개선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의뢰했다”고 했다.
연구소 측은 상대적으로 잔디가 많이 손상되는 여름철을 앞두고 기온이 높은 남쪽 지방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3월 26일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시작으로 1차(3~4월) 현장조사에 나선 연구소는 오는 6월부터 2차 조사를 진행한다. 연구소 관계자는 “1차 조사가 건강 진단이었다면, 2차는 구장별로 맞춤형 해결책을 내놓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1차 조사 보고서엔 사람의 ‘건강검진 결과’처럼 다양한 잔디 상태가 담겼다.
특히 전국에 걸쳐 잡초의 일종인 새포아풀 발생 현상이 또렷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남부지방 A구장의 경우 지반이 좋지 않은 데도 연간 공식 경기 횟수는 50차례가 넘어 긴급 처방이 필요한 상태였다. 연구소는 A구장에 대해 “여름철 고온에 의한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약 작업 시 고온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약제 및 자외선 차단제를 혼합할 것을 추천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A구장에 필요한 내용만 A4 용지 20매 분량에 달했다는게 관계자의 얘기다.
홍 책임연구원은 “구장 관리자들의 잔디에 관한 열정은 모두 높았다”면서도 “관리 시설이나 장비가 노후화 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엔 어려운 구장들도 많았다”고 했다. 이번 컨설팅과 맞물려 각 구장별 잔디 관리자들도 잔디 품질의 ‘상향평준화’를 고민하겠단 계획이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이승일 소장은 “K리그 잔디 관리자들이 모여 ‘잔디 스터디’를 하자는 얘기도 나왔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잠잠해지면 함께 모여 각종 케이스 스터디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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