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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서정’ ‘모더니즘’ ‘리얼리즘’만으론 더 이상 한국 현대시 독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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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서정’ ‘모더니즘’ ‘리얼리즘’만으론 더 이상 한국 현대시 독해할 수 없다”

입력
2021.05.10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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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오형엽 고려대 교수

제32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오형엽 고려대 국문과 교수가 6일 한국일보사에서 수상작 '알레고리와 숭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제32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오형엽 고려대 국문과 교수가 6일 한국일보사에서 수상작 '알레고리와 숭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오형엽(56) 고려대 국문과 교수 이름 옆에는 각종 직함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2018년부터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고, 월간 현대시 주간, 계간 현대비평 주간 등의 보직도 있다. 그만큼 문학비평 현장의 한가운데서 종횡무진 중인 평론가라는 뜻이다.

지난 3월 출간된 비평집 ‘알레고리와 숭고’에는 이처럼 바쁘게 뛰어온 오 교수의 발자국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신체와 문체’ ‘주름과 기억’ ‘환상과 실재’에 이어 9년 만에 낸 네 번째 평론집이다. 변화하는 시적 흐름에 발맞춰 자신만의 비평적 방법론을 구축하려 애써 온 그간의 궤적은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으로 중간 결실을 맺게 됐다.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오 교수는 “비평에 있어 기본적 태도는 동시대의 현장성으로부터 비평적 논제를 발견하는 것”이라며 “‘알레고리와 숭고’는 최근 한국 문학의 ‘윤리’와 ‘정치’ 및 ‘젠더’라는 중심 논제와 연관되면서도 시적 경향을 미시적인 동시에 거시적으로 모색하기 위한 기둥”이라고 설명했다.

알레고리가 문학의 양식ㆍ정신적 범주에 속한다면, 숭고는 문학의 미학적 범주에 속한다. 오 교수는 여기에 ‘멜랑콜리’와 ‘주이상스’ 개념까지 더해 총 네 개의 문제 틀로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의 경향을 진단한다. 이처럼 새로운 기둥을 세운 것은 기존의 한국 시를 구획해온 방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오형엽 '알레고리와 숭고'(문학과지성사)

오형엽 '알레고리와 숭고'(문학과지성사)

“지금까지의 한국 문학은 크게 ‘전통 서정시’ ‘모더니즘 시’ ‘리얼리즘 시’라는 세 개의 구도에 의해 현장이 구획돼 왔어요. 그런데 더 이상 이 분류법에 따라 해석할 수 없는 시들이 2000년대 이후 많이 창작됐습니다. 현실은 변했는데, 이를 새롭게 조명할 적절한 이론적 틀은 제시되지 않고 있어요. 동시대 시를 보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죠. 그래서 알레고리와 숭고라는 제 나름대로의 접근법으로 새로운 이론적 계보를 재구성해본 겁니다.”

'알레고리와 숭고’에 앞서 나온 평론집들 역시 일관되게 동시대 텍스트에서 개념을 도출해내는 귀납적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심사위원들은 “성실한 공부”라고 평했다. 오 교수는 “이전의 연구를 버리고 새로 출발하는 게 아니라 늘 이전 비평의 성과를 누적하는 방식으로 써오다 보니 자연히 일관성이 생기게 됐는데, 이런 점을 성실하다고 평가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문예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합평을 하다 보니 창작보다는 비평에 더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다. 1992년 김종삼론으로 데뷔해 30여 년간 동시대에 창작되는 시를 기꺼이 읽었고 성실히 연구했다. 한 심사위원은 “언젠가 한국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 같은 책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오형엽 선생이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비평의 해부’는 문학의 근본 구조를 밝혀낸 책으로 비평이론서의 전범으로 꼽힌다.

제32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오형엽 고려대 국문과 교수가 6일 한국일보사에서 수상작 '알레고리와 숭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제32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오형엽 고려대 국문과 교수가 6일 한국일보사에서 수상작 '알레고리와 숭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오 교수는 “부분과 전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구조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텐데, 이번 평론집에서는 네 개의 개념으로 동시대 문학의 전체성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비평의 해부'가 보여준 구조적 접근 방법과 유사하다고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책은 “한국 문학에서 비평의 양상은 ‘비평의 우울’이 ‘비평의 곤경’을 겪으면서 급기야 ‘비평의 죽음’이 운위되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진단으로 서두를 연다. 비평의 위기에 대한 이 같은 자기 반성은 평론가들이 맘껏 뛰놀 장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나아갔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으로 선출된 후 2019년 계간 비평전문지인 ‘현대비평’을 창간했고, 최근에는 KBS와 50부작 영상을 기획했다. 자신의 비평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이나 동료 평론가들과 제자들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눈이 빛났다. “비평이 살아나야 한국 문학도 함께 살아난다고 믿는다”는 오 교수의 열정 앞에서 ‘비평의 죽음’은 기우임이 분명해 보인다.

오형엽 교수는

△고려대 영문학과,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4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수상,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로 비평집 ‘신체와 문체’, ‘주름과 기억’, ‘환상과 실재’, 문학연구서 ‘한국 근대시와 시론의 구조적 연구’, ‘문학과 수사학’ 등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 편운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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